
그녀는 예뻤다? 아니, 그녀는 살벌했다!
신영복 선생의 책에서 ― 어떤 책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따라서 이하의 내용도 다소 정확성이 떨어져요. 그러나 큰 뜻은 틀리지 않아요 ― 어떤 창녀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요.
보통 창녀들은 이른 바 기둥 서방을 갖고 있는데, 한 창녀는 그런 기둥 서방이 없었다고 해요. 기둥 서방은 창녀를 보호해 준다는 빌미로 그녀들을 등쳐 먹고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죠. 그런데 이 창녀는 그런 기둥 서방을 두지 않았던 거예요.
그러다보니 기둥 서방을 자처하려고 그녀를 집적 거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녀를 무시하고 함부로 하려는 사내들이 나타났죠. 그녀는 그런 자들을 대할 때 마다 서슬퍼런 자해 행위를 통해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 물리쳤다고 해요.
선생은 이 이야기의 말미에 이런 여인에게 보편적 요조숙녀의 덕목이 과연 적용될 수 있겠냐는 질문을 해요. 그러면서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지 않고 내뱉는 말이나 행동은 폭력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하지요.
집 주변에 선생이 말한 그 여인과 비슷한 꽃이 있어요. 과도할 정도의 자기 방어를 하는 날선 꽃이지요. 무슨 소리냐구요? 잎새와 줄기에 가시가 있어 만지기도 어렵고 키는 야생화답지 않게 멀대처럼 크고 꽃도 짙은 보라색에다 바늘같은 모양이거든요.
눈치 채셨나요? 그래요, 이 꽃의 이름은 엉겅퀴예요. 이름도 참 그렇죠? 상처의 피를 엉키게 한다해서 엉겅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고 하여 좋은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엉킨다는 것은 순리에 어긋난다는 의미도 있고 또 엉성하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어 꼭 좋은 의미로만 봐주기도 그렇거든요. 언제부턴가 벽채 한쪽에 꽃을 피우기에 ― 엉겅퀴는 다년생이에요 ― 자라기 전에 얼른 자르거나 뽑아 버렸는데 올해는 바빠서 내버려 뒀더니 너무 커버려 손을 대기 어려울 정도가 됐어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지켜만 보게 됐죠.
그런데 이 꽃을 바라보다 문득 신영복 선생의 한 창녀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어쩌면 엉겅퀴도 그 여인과 같은 꽃이 아닌가 싶더군요. 싹을 띄우고 꽃을 피워야겠는데 어설프면 사람(동물)들이 다 뽑거나 먹어 버릴까봐 자기를 지키기 위해 가시를 돋우어 날선 모습으로 변한 것이 아닌가 싶은 거예요. 사람들의 사랑을 차지하는 순화된 꽃들과는 다른 모습을 갖게 된 것을 그의 입장에서 한 번 헤아려 본 것이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일반 사람들이 좋아하는 화초의 기준으로 이 꽃을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옳은 평가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생각이 바뀌니 이상하게 꽃을 대하는 마음도 달라지더군요. '그래, 그럴수도 있겠구나! ' 이런 마음으로 엉겅퀴를 보니 왠지 겉보기와 달리 속정이 깊은 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자료를 찾아보니 실제도 접근을 막는 가시를 빼고는 사람에게 해를 주는 것이 없더군요. 확실히 겉만 보고 이 꽃을 평가했던 제가 미숙했어요.
하여 오늘 화해(?)의 기념으로 엉겅퀴 사진을 한장 찍었어요. 재미난 건 사진을 찍는데 이 꽃이 왠지 수줍어 하는 듯한 모습으로 보이는 거예요. 그토록 날서 보였던 모습은 어디가고...
엉겅퀴는 한자로 대계(大薊), 산우방(山牛蒡), 야홍화(野紅花) 라고 해요. 계(薊)는 엉겅퀴라는 뜻이고, 우방(牛蒡)은 우엉이란 뜻이에요. 계앞에 대(大)를 붙인 것은 엉겅퀴의 키가 크다는 의미로 붙인 것이고, 우방앞에 산(山)을 붙인 것은 엉겅퀴의 뿌리가 우엉과 비슷하지만 본래의 우엉만 하지는 못하다는 의미로 붙인 거예요. 야홍화는 엉겅퀴가 피는 장소와 꽃 색깔의 특징을 표현한 이름이예요.
薊만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薊는 艹(풀 초)와 魝(다듬을 결)의 합자예요. 생선의 비늘을 다듬 듯 잎새와 줄기의 가시를 다듬어야 쓸모가 있는 풀이란 의미예요. 엉겅퀴 계. 薊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일상적인 예로는 들만한게 없고 약초의 하나인 山薊(산계, 백출의 원 재료)와 방금 나온 大薊(대계)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한자가 하나 뿐이라 굳이 정리 문제를 풀 필요는 없겠죠? 대신 민영 시인의 유명한 '엉겅퀴 꽃'을 읽어 보도록 하시죠.
엉겅퀴야 엉겅퀴야 / 철원평야 엉겅퀴야 / 난리통에 서방 잃고 / 홀로 사는 엉겅퀴야 / 갈퀴손에 호미 잡고 / 머리 위에 수건 쓰고 / 콩밭머리 주저앉아 / 부르느니 님의 이름 / 엉겅퀴야 엉겅퀴야 / 한탄강변 엉겅퀴야 / 나를 두고 어디 갔소 / 쑥국 소리 목이 메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