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까워 죽겠어요. 애써 키웠는데 못먹게 돼서."
"아녀. 봄이 되면 다시 살아나. 그 맛이 별미여."
작년 가을, 이런저런 일로 끝내 배추를 수확하지 못하고 된서리를 맞혔어요. 몇 포기 되지는 않았지만 무척 속상했어요. 들인 정성이 있었는데 그냥 버리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옆집 형님 한테서 뜻밖의 말을 듣게 됐어요. 배추가 겨울을 나고 봄에 다시 살아난다는 거예요. 정말 그러냐고 했더니, 정말 그렇다는 거예요. 하지만 속으로는 반신반의했어요. 정말 추운 겨울을 견뎌낼 수 있을까 싶었지요.
그런데, 정말 그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이 봄에 다시 살아 났어요! 우와~ 놀라와라! 기념으로 사진을 한 장 찍었어요. 비록 가을 배추만큼 풍성하진 않지만, 야무지기로는 가을 배추보다 훨씬 더 나은 것 같더군요. 배춧국을 끓여 먹으면 좋겠다고 넌지시 와이파이님께 얘기했더니, 이 양반 뭐가 그리 바쁜지 꿩 궈먹은 소식이에요. 할 수 없이 그냥 날 것으로 몇 잎 따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어요. 솔직히 맛은 별로 없더군요. 하긴 그 혹독한 겨울을 노지에서 견뎠는데 뭔 맛이 그리 있겠어요. 푸른 잎을 피운 그 자체만도 대견한데 맛까지 기대한 제가 욕심이 과한 것이지요. 미안, 배추!
인터넷을 찾아보니, 배추는 菘(숭) 혹은 菘菜(숭채)로 표기하더군요. 아울러 '배추'는 한자어 '白菜(백채)'에서 유래한 것으로 돼있더군요. 중국에서는 '百菜不如白菜(백채불여백채: 온갖 채소중 배추만한 채소가 없다)'라 해서 배추를 채소 중에서 으뜸으로 취급했다고 해요. 와이파이님께 이 성어를 말하며 다시 배춧국 좀 끓여 달라고 졸라야 겠어요.
배추의 한자 표기인 菘에 대해 좀 자세히 알아 볼까요?
菘은 艹(풀 초)와 松(소나무 송)의 합자예요. 늘 푸른 소나무처럼 잎새가 푸르며 성장 속도가 빠른 채소란 뜻이에요. 松은 음도 담당해요(송 ->숭). 菘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早菘(조숭, 이른 배추), 晩菘(만숭, 늦 배추)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이번엔 문제를 아니내도 괜찮겠지요? 전 이번 주말에 꼭 배춧국을 먹고 말 겁니다. 님들께서도 주말에 시원한 배춧국을 끓여 드셨으면 좋겠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