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허 거 참..."

 

 채제공은 김노경의 집 앞을 지나가다 말을 세우고 한 곳을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나리, 뭘 그리 쳐다 보시는지요?"

 

 삼돌이는 주인의 이상한 행동에 고기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때는 입춘. 특별한 거라면 대문에 써붙인 입춘첩 뿐이었다. 삼돌이가 보기엔 특별한 입춘첩이 아니었다. 비록 글자는 모르지만 특별하게 쓴 글씨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다만 어른이 쓴 것 같지 않고 아이가 쓴 것 같은 틔가 나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삼돌아, 김대감댁에 내가 왔다고 이르거라."  "아니, 나리, 이곳은..." "괜찮다. 내 긴히 할 말이 있어서 그러니 어서 내가 왔다고 이르거라."

 

 채재공 집안과 김노경 집안은 여러 해 왕래를 하지 않고 있었다. 당파가 다른데다 사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집에 굳이 주인이 방문을 하려하니 삼돌이는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채제공은 김노경과 마주했다. 김노경이 당황하며 물었다. "아니, 각하께선 여긴 어인 일로..." "묻고 싶은 말이 있어 왔다네. 대문에 붙인 입춘첩은 누가 쓴 것인가?" "예~? 저의 집 아이 원춘이가 쓴 것입니다." "어허, 그런가? 자네 아이는 분명 명필로 일세를 풍미할 걸세. 그러나 명필로 일세를 풍미하면 운수가 사나울걸세. 허나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한다면 귀하게 될걸세. 부디 아이가 글씨에 전념하지 않도록 하게나. 내 이 말을 해주고 싶어 들렸네. 그럼, 이만..."

 

<대동기문大東奇聞>에 나오는 이야기를 각색해 봤어요. 이야기에 나온 원춘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자예요. 이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추사 김정희 선생이 필재筆才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사진은 제가 사는 지역의 ㅇㅇ고등학교 현관에 있는 것을 찍은 거에요. 추사 선생의 글씨를 목각작품으로 만든거라고 해설을 달아 놨더군요. 제작자 이름을 보니 이 학교 교장 선생님이시더군요. 멋진 취미를 가지신 것 같아요.

 

무슨 내용인지 읽어 볼까요? "아서의조원무법我書意造元無法  차노흉중상유시此老胷中常有詩 "라고 읽어요. "내 글씨의 의경은 본시 틀이 없고, 이 내 흉중엔 늘 시가 있다네."라고 풀이해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書를 '글'로 해석하여 "나의 글은 보잘 것 없으나"라고 풀이한 것도 있더군요. 저는 書를 '글씨'의 의미로 봤어요. 글은 대개 文으로 표현하고 글씨는 대개 書로 표현하는 것을 염두에 두었지요.) 자유방달自由放達한 글씨의 경지와 내적 온축蘊蓄의 충만함을 과시하는 내용이라고 보여요. 조금 겸손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지만 도저히 흘러 넘치는 자신감을 주체하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한자를 읽어 볼까요? 나아我,  글(씨)서書,  뜻의意,  지을조造,  본디원元,  없을무無,  법법法,  이차此,  늙을로老,  가슴흉胷,  가운데중中,  항상상常,  있을유有,  시시詩.

 

 

그간 다루지 않은 낯선 한자를 좀 자세히 알아 볼까요?

 

는 心마음심과 音소리음 의 합자예요. 音은 말 소리란 의미예요. 말로 표현된 마음 속 생각, 혹은 타인의 말을 듣고 추측한 그의 생각이란 의미예요. 意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意思의사, 意見의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二와 八의 합자예요. 二는 上위상의 초기 형태이고 八은 人사람인의 변형이에요. 사람의 맨 위에 있는 것, 즉 머리란 의미예요. 이 자는 으뜸 혹은 본디라는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모두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元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元首원수, 元來원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言말씀언과 寺절사의 합자예요. 寺는 본래 관청이란 뜻이었어요. 관청에서는 치지와 피치자가 각기 자신들의 요구와 요청사항을 말하죠. 그렇듯 마음 속의 뜻을 말로 표현한 것이 '시'라는 의미예요. 시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詩情시정, 詩心시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보실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뜻의     본디원     시시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쓰시오.

 

    (    )     (    )     (    )

 

3. 다음을 읽고 풀이해 보시오.

 

  我書意造元無法  此老胷中常有詩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 목각 글씨의 원본은 흥선 대원군의 작품이라고 소개되어 있더군요(아래 사진 참조). 그래서 그럴까요, 위 사진 작품과 글자체도 다르고 내용 중에 사용된 글자에도 다른 것이 있더군요(常항상상 --> 亦또역). 이 작품은 주련으로 제작되어 운현궁에 걸려 있다고 해요.

 

위에서 소개한 추사의 작품이 원본일까요? 흥선 대원군의 작품이 원본일까요?

 

제 생각엔 추사 선생이 흥선 대원군의 스승이었으니 추사의 작품이 원본일 가능성이 커보여요. 흥선 대원군의 작품은 추사의 작품을 자신의 글씨로 옮겨 쓴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나 별달리 입증할 자료가 없어 그저 추정일 뿐이에요. 문득 위 목각 작품을 제작한 교장선생님께 여쭤보고 싶네요. "교장 선생님, 위 목각 글씨의 원본이 추사의 작품이 확실한지요? 그 근거는 무엇인지요?"

 

 

 이미지 출처: http://blog.daum.net/sis102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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