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일급 살인'을 보셨는지요? 아니면 '쇼생크 탈출'은요? 그도 아니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요?
어느 하나는 보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꽤 유명한 영화들이니까요. ^ ^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감옥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과 주인공이 안타까운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감옥이란 공간과 죄수라는 인물은 결코 평범한 대상이 아니죠. 하여 이들을 다룬 영화는 관심을 끌 수 밖에 없어요. 게다가 그곳에서 비상(非常)한 일이 생긴다면 더더욱 관심을 끌겠지요. 위 영화들은 이런 관심을 적당한 에피소드로 잘 버무려 내놓았기에 흥행했을 거에요.
그러나 감옥과 죄수들의 실상은 영화와는 다를 거에요. 대부분 실제 범죄를 저지르고 그 죄값에 해당하는 옥살이를 하고 있겠지요.
여기서 질문. 감옥에 갇힌 죄수들은 과연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을까요?
좀, 엉뚱한 얘기지만 데일 카네기의 이야기를 해보죠. 데일 카네기는 인간관계론으로 유명한 사람이에요. 그가 인간 관계론에서 중시하는 관점 중의 하나는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지 말라'에요. 인간은 결코 자신이 잘못했다고 반성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거죠. 데일 카네기는 그 극단적인(?) 예로 '쌍권총 크로울리'라는 인물을 들어요. 무차별 총질로 많은 사람을 살해했던 그는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까지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고 해요. 오히려 자신은 선한 사람인데 다른 이들이 자신을 자극해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대요. 그러니 일반사람이야 오죽하겠냐고, 데일 카네기는 말해요. 절대(?)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거죠. 하여 데일 카네기는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지 말라고 충고해요. 무의미하다는 것이죠. 대신 아무리 상대가 악한이라해도 최고의 신사로 대우하라고 권하죠. 그것이 그에게 영향을 미쳐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거에요.
요컨대, 데일 카네기의 견해를 빌어 말한다면, 감옥에 갇힌 죄수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좀 지나친 생각일까요?
중요한 것은 감옥안의 죄수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 -- 간수나 일반인 -- 의 태도인 것 같아요. 데일 카네기의 견해를 참작한다면, 그들이 제아무리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최고의 신사로 대우할 -- 말과 행동에서--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그런 대우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칠지도 모르지요. 잘못을 했다고 막 대하면, 인간 관계를 연구한 데일 카네기의 견해를 빌면, 되려 자신의 잘못을 방어하기에만 급급할 뿐 결코 뉘우치려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사진의 한자 獄은 (감)옥옥이라고 읽어요. 고창 읍성에서 찍은 거에요. 獄을 대하니 불현듯 감옥과 그곳에 있는 이들이 생각나 주절댔어요. ^ ^ 한자를 좀 자세히 알아 볼까요?
獄은 개 두 마리가 죄인을 지키는 곳이란 의미에요. 그곳이 바로 '감옥'이죠. ^ ^ 犭과 犬은 둘 다 개라는 뜻이에요. 음은 '견'이고요. 가운데의 言은 辛의 변형이에요. 辛은 보통 '매울신'이라고 하는데 본래 묵형이란 형벌에 사용되는 바늘을 그린거에요. 이 바늘로 묵형을 당하면 고통스럽기 때문에 '맵다'라는 의미로도 사용하게 됐지요. 아울러 묵형을 당하는 죄인이란 뜻으로도 사용하게 됐는데, 獄에서는 이 의미로 사용됐어요. 獄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地獄(지옥), 監獄(감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오늘은 정리 문제를 아니 내겠습니다. ^ ^ 최근에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죠. 데일 카네기의 견해 연장선에서 말하자면 헬조선에 사는 이들을 돕는 방법은 그들에게 헝그리 정신 운운하며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헬조선에 사는 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실제로도 그렇구요.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헬조선을 초래한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겠지요.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