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액자를 대하니 예전에 읽었던 '무소유(법정 지음)'의 한 내용이 생각나네요(오래 전에 읽은 거라 정확하진 않습니다).
더운 여름 한 철 해우소의 인분 냄새가 풀풀 풍기는 좁은 암자에서 스님은 예불을 올린 후 단정히 꿇어 앉아 화엄경 십회향품을 읽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기도 힘든 무더운 날에 인분 냄새까지 풍기는 좁은 공간에서 가사와 장삼을 걸친 채 독서를 한다는 것은 고통 그 자체지요. 그러나 스님은 외적 환경의 열악함 -- 육체적 고통까지 포함한 -- 을 이겨내며 독서에 전념합니다.
무엇이 스님으로 하여금 독서에 전념하게 했을까요? 스님의 결기였을까요? 그것도 일부분 작용했겠지만, 제가 보기엔, 스님의 독서 태도가 가장 큰 요인 아니었나 싶어요. 스님은 그 내용 말미에 이런 말을 합니다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목소리를 통해 내 자신의 근원적인 음성을 듣는 일이 아닐까?" 스님에게 독서는 자신을 확인하는 행위 그 자체였기에 결코 괴롭거나 힘든 일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액자의 글씨는 '권중대성현(卷中對聖賢)'이라고 읽어요. '책 가운데에서(속에서) 성현을 대한다(만난다)'는 뜻이에요. 독서를 성인(타인)과 나누는 대화로 인식하는 것이지요. 그 대화를 통해 확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법정 스님의 말을 가필하여 말한다면, 우리 자신의 근원적인 모습 아닐까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卷中對聖賢의 짝이 되는 글귀가 있더군요. 所言皆吾事(소언개오사) - (성현의) 말씀하신 바가 모두 나의 일이로다. 퇴계 이황 선생이 지은 시의 한 부분. 그렇다면 여기서 소개한 卷中對聖賢의 짝이 되는 所言皆吾事란 글씨도 있었을텐데… 사진을 찍을 당시 그 액자는 이상하게 제 눈에 안들어왔어요. ㅠㅠ)
한자를 하나씩 읽어 볼까요? 문서(책)권, 가운데중, 대할대, 성인성, 어질현. 밑에 있는 작은 글씨는 병자(丙子) 맹하(孟夏)라고 읽어요. 병자(丙子)는 간지인데 서기로 바꾸면 1996년이에요. 1936년도 해당되는데, 위 글씨를 1936년에 썼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맹하(孟夏)는 초여름이란 뜻이에요. 한자를 좀 자세히 알아 볼까요? 卷, 對, 聖, 賢만 알아 보도록 하죠.^ ^
卷은 㔾(무릎꿇을절)과 捲(말권)의 약자가 합쳐진 거에요. 捲은 둥글게 만든다[말다]란 의미도 있지만, 밥을 둥글게 뭉친다는 의미도 있어요. 여기서는 후자의 뜻으로 사용됐지요. 밥이 (둥글게) 뭉쳐진 것처럼 허벅지와 종아리가 붙게 무릎을 꿇었다는 의미에요. 문서라는 의미는 본 뜻에서 연역된 거에요. 무릎을 꿇은 것처럼 말아놓은 문서라는 의미로요. 卷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卷末(권말), 書卷(서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對는 丵(떨기풀착)과 寸(마디촌)과 士(선비사)의 합자에요. 떨기풀처럼 잡다한 문의에 대해 해당자[士]가 그 문의마다 알맞게[寸] 대답한다란 의미에요. 對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對答(대답), 對策(대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聖은 耳(귀이)와 呈(나타낼정)의 합자에요. 呈은 음을 담당해요(음가가 조금 변했죠. 정-->성). 聖의 본래 의미는 '통하다'란 의미에요. 대상의 말(소리)을(를) 듣고 대상의 실상을 잘 이해한다란 의미지요. 이순(耳順, 공자가 자신의 생애를 회고하며 한 말로 60대에 이르러 耳順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고 했지요. 귀가 순해졌다는 뜻인데, 타인의 말을 가감없이 그대로 이해하게 되었다란 의미에요)과 같은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아요. '성인, 성스럽다'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에요. 聖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聖人(성인), 神聖(신성)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賢은 堅(굳을견)의 약자와 貝(조개패)의 합자에요. 지조가 굳고 재물[貝]처럼 귀하게 쓰이는 인재란 의미에요. 이런 이를 가리켜 '어질다'고 하지요. 賢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賢人(현인), 賢明(현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보실까요?
1. 다음에 해당하는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문서권, 대할대, 성인성, 어질현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말을 손바닥에 써 보시오: 神( ), ( )策, ( )明, 書( )
3. 다음 ( )안에 들어갈 말을 써 보시오: 내게 독서란 ( )이다. 왜냐하면 ( ) 때문이다.
비가 오네요. 삼여(三餘, 세 가지 여유 시간. 밤 · 비오는 날 · 겨울을 지칭)에 가장 하기 좋은 일은 바로 '독서' 아닐까요? ^ ^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