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함묵에
안으로만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 <바위>, 유치환 -
도솔암에서 내려오는 길에 찍은 바위 사진이에요. 문득 청춘의 한
시절에 읊조렸던 청마 유치환의 시 <바위>가 생각나 찍었네요. 사
실 청마 선생은 이영도 여사와의 러브레타로 잘 알려진 다정다감한
분인데 어이 이런 시를 지었는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자신의 그 다정
다감함이 싫어서 조금은 냉정해지고 싶어서 이런 시를 지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청마 유치환의 시는 강한 남성성이 특징인데 어쩌면 그
것은 자신의 강한 여성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이 들어요.
시에 어려운 한자들이 많죠? 애련(愛憐), 희로(喜怒), 억년(億年),
비정(非情), 함묵(緘默), 원뢰(遠雷). 이 한자들의 뜻을 알면 이 시
의 이해도 훨씬 깊어질 것 같아요. 같이 한 번 자세히 알아 보실까
요? 전에 다룬 愛, 喜, 年, 情, 默은 빼도록 하겠어요. ^ ^
憐은 忄(마음심)과 粦(도깨비불린)의 합자에요. 도깨비불(시신의
뼈에서 나온 인이 발하는 불빛)을 보면 놀랍고 슬픈 생각이 들듯 마
음이 놀랍고 슬프다란 의미에요. '불쌍히여길련'이라고 읽어요. 憐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憐憫(연민), 哀憐(애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유치환의 시에서 애련은 愛憐이고 哀憐이 아녜요. 愛憐
은 '사랑과 연민'이란 의미이고, 哀憐은 '연민, 슬픔'이란 의미에요.
怒는 奴(종노)와 心(마음심)의 합자에요. 늘 질책받아 마음이 항시
불만에 차있는 종처럼 마음에 분노가 차있어 언행이 거칠다란 의미
에요. '성낼노'라고 읽어요. 怒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憤怒
(분노), 怒濤(노도, 거친 파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유치환의 시에
나온 喜怒는 '기쁨과 노여움'이란 의미에요.
億은 亻(사람인)과 意(뜻의)의 합자에요. 의사(意思)가 만족스럽다
(편안하다)란 의미에요. '편안할억'이라고 읽어요. 지금은 이 뜻보다
숫자의 단위인 '억억'으로 더 많이 사용하죠. 숫자의 의미인 '억'은
본뜻에서 연역된 것으로 보여요. 편안하려면 '억'은 있어야 된다는
의미로요(정확하진 않습니다). 億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億劫(억겁), 億丈(억장, 썩 높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유치환 시의
億年은 1억년의 세월 즉, '오랜 세월'이란 의미에요.
非는 새의 양 날개를 그린 거에요. 양 날개가 서로 다른 방향을 향
한다는데서 반대/부정의 의미를 갖게 됐어요. '아닐비'라고 읽어요.
非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非理(비리), 是非(시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유치환 시의 非情은 '인정이 없다'란 의미에요.
緘은 糸(실사)와 咸(다함)의 합자에요. 상자 전체를 끈으로 묶었다
란 의미에요. '봉할함, 묶을함'이라고 읽어요. 緘이 들어간 예는 무엇
이 있을까요? 緘口(함구, 입을 다묾), 緘封(함봉, 편지나 상자같은 것
을 봉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유치한 시의 緘默은 '입을 닫고 침묵
을 지킨다'란 의미에요.
遠은 辶(걸을착)과 袁(옷길원)의 합자에요. 옷이 길듯이 걸어서 왕
래할 길이 멀다란 의미에요. '멀원'이라고 읽어요. 遠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遠近(원근), 疎遠(소원, 관계가 멂) 등을 들 수 있
겠네요.
雷는 雨(비우)와 田의 합자에요. 田은 우레가 구름속에서 우렁대는
모습을 그린 거에요. 비올 때 구름 속에서 우렁대는 우레(천둥)를 표
현한 글자에요. '우레뢰'라고 읽어요. 雷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
까요? 落雷(낙뢰), 附和雷同(부화뇌동)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유치환
시의 遠雷는 '멀리서 울리는 우레(소리)'라는 의미에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보실까요?
1. 다음에 해당하는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불쌍히여길련, 성낼노, 억억, 아닐비, 봉할함, 멀원, 우레뢰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落( ), ( )丈, ( )憫, 憤( ), ( )口, ( )近, 是( )
3. <바위>를 눈을 감고 암송해 보시오.
최근 친일 논란이 크게 부각되었는데, 청마 유치환 선생도 자유롭지
못한 것 같더군요. 슬픈 일이에요.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