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보, 괜찮아요?"
"으음, 상처가 좀 심하긴 하지만 그런대로 견딜만... 으으윽."
박인일과 부인 채씨는 합천에서 왜구에게 붙잡혀 왜국으로 이송중이었다. 인일은 승선한 왜구의 인원이 의외로 적은 것을 알고 탈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일은 채씨에게 자신의 계획을 귓속말로 전하며, 왜구를 상대하는 동안 잘 숨어 있으라고 당부했다. 채씨는 평소 남편이 담대하고 주밀한 것을 잘 알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일은 왜구들이 한눈을 파는 사이 손목 포승줄을 풀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때 한 왜구가 인일 가까이 다가와 뱃전에다 오줌을 지렸다. 왜구는 인일에게 등을 보였다. 인일은 즉시 옆에 널부러져 있던 각목 하나를 들어 왜구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오줌을 지리던 왜구는 외마디 소리하나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인일은 넘어진 왜구의 허리춤에서 칼을 빼내 들고 다른 왜구들을 향해 돌진했다. 7~8인 정도를 예상했는데, 생각지 못했던 왜구들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왔다. 15명은 족히 되었다. 순간 인일은 당황했다. 그러나 바로 정신을 차리고 왜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4~5인을 제거하고 나머지 인원과 일진인퇴를 벌였다. 힘겼게 다 물리치고 남은 한 왜구와 대치했다. 왜구는 두려운 기색을 보이면서도 인일이 지친 것을 알고 요리조리 피하며 계속 인일을 힘겹게 만들었다. 그러다 한 순간 인일이 헐떡일 때 인일의 왼팔을 칼로 내치쳤다. 인일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왜구는 인일에게 다가와 칼을 높이 쳐들었다. 분노로 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순간 왜구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인일은 가까스로 자신에게 넘어지는 왜구를 피했다. 쓰러진 왜구 뒤에는 처 채씨가 피묻은 장도를 든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채씨는 얼른 칼을 버리고 남편에게 다가갔다.
"여보, 괜찮아요?"
"으음, 상처가 좀 심하긴 하지만 그런대로 견딜만... 으으윽."
인일은 혼절했다. 깨어나보니 배는 바다에 표류하고 있었다. 채씨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인일을 쳐다 보았다. 인일은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정박할 곳이 있나 살펴 보았다. 그러기를 한식경 드디어 육지가 눈에 보였다.
육지에 내려 지역 이름을 물으니, 서주(瑞州, 현 서산)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낯선 두 사람을 경계하면서도 안돼 보였는지 폐가 하나를 주선해 주었다. 생면 부지의 땅에서 두 내외는 굶기를 밥먹듯하며 생활했다. 그 와중에 채씨는 아이를 갖게 되었다. 인일은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너무 몸을 사리지 않고 일을 한 탓인지, 나아가는 듯 보였던 팔의 상처가 다시 도져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내가 일감을 찾겠다고 했지만 인일은 차마 아내에게까지 일을 시킬 순 없다며, 관아를 찾아가 관전 50냥을 어렵게 빌렸다.
1년을 기한으로 관전을 갚기로 했으나, 50냥을 약값과 얼마간의 생활비로 쓰고난 후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인일로서는 도저히 기한내에 돈을 갚을수 없었다. 그사이 아내는 만삭이 가까와졌다.
관가에서는 기한내에 인일이 빌린 돈을 갚지 않자 사령을 보내 인일을 끌어오게 했다. 사령이 인일의 집에 도착했을 때 만삭의 채씨가 허옇게 뜬 얼굴로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주인장은 어디 갔는가?"
"이틀 후에 오겠다며, 출타하셨는데요."
"빌린 돈을 갚을 기한이 한참 지났는데, 왜 아니 갚는가?"
"그게, 나리도 보다시피 저의 집 사정이..."
"자네네 사정 딱한 줄은 알겠지만, 나도 그냥 돌아갈 순 없네. 자네라도 데려가야 겠네. 차비를 하게."
"제가 홀몸이 아니라..."
"이 사람아, 자네만 어려운게 아닐세. 나도 어려워. 어서 채비를 허게."
채씨는 더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 사령을 따라 나섰다. 사령을 따라 힘겹게 따라가던 채씨는 인지(仁旨) 즈음에 이르러 산기를 느꼈다.
"나리, 제가 몸을...."
사령은 순간 당황해하며 채씨를 길옆 우물가 근처로 데려 갔다. 채씨는 사령에게 풀을 좀 뜯어다 달라고 부탁했다. 사령이 풀을 뜯으러 간 사이 채씨는 아이를 해산했다. 사내 아이였다. 풀을 뜯어온 사령은 눈쌀을 찌푸리며 산모에게 풀을 건넸다. 채씨는 풀위에 저고리를 벗어 놓은 뒤 아이를 눕혔다. 아이는 힘차게 울었다. 잠시 넋을 놓고 쳐다 보던 사령이 채씨에게 말했다.
"이제, 일어 나게!"
"예에...?"
"못들었나, 일어나라고!"
"아이는 어떡하고요?"
"쑥이 해충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하니, 아이에게는 쑥을 덮어 주면 될 것일세."
채씨는 어이가 없었지만, 사령의 말을 안들을수도 없었다. 주변에서 쑥을 뜯어 아이에게 덮어준 후 사령을 따라 나섰다. 관청에 도착하여 사령이 군수에게 인일 대신 처자를 데려왔다며 보고했다. 군수는 인일의 아내가 좀 이상해 보여, 연유를 물었다. 채씨가 울면서 오는 도중에 해산을 했다는 얘기를 했다. 군수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네 이놈들, 당장 이 산모를 가마에 태우고 아이 있는 곳으로 가지 못할까!"
혼비백산한 사령들이 채씨를 가마에 태우고 아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사령과 채씨는 신비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학이 아이를 자기 새끼인냥 품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 기척 소리가 나자 학은 공중으로 날아 올라 너울너울 춤을 추다 사라졌다. 아이는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
사진의 한자는 무학대사기념비(無學大師紀念碑)라고 읽어요. 무학대사는 잘 아시죠? 조선 건국과정에 깊이 관여했던 승려로 태조 이성계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분이죠. 위에 쓴 이야기는 무학대사의 탄생 이야기에요. 이 분의 탄생을 기념하여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어요. 그런데 기념비 옆의 해설판 내용이 너무 소략하고 문장도 이상해서 제가 소설 형식으로 바꿔 보았어요. 무학 대사는 불가에 입문하기전 이름이 '舞鶴(무학, 춤추는 학)'이었어요. 학이 보듬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죠. 그런데 불가에 입문한 뒤에는 승명을 '無學(무학, 아는 것이 없다)'이라고 했어요.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舞鶴이라는 본래 이름의 외피는 빌리되 내용은 전혀 다르게 표현함으로써 출가(出家)의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출가함으로써 겉은 舞鶴이라는 사람이지만 속은 전혀 다른 無學이라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말이죠.
여기 기념비에 사용된 글씨체는 전서체에요. 다른 것은 그럭저럭 알아볼만 한데, 왼쪽 첫번째 나온 無(없을무)의 전서체 글씨는 알아보기 어려우실 것 같아요.
한자를 한 자씩 뜻과 음으로 읽고, 자원도 좀 자세히 알아 보도록 하죠. 無는 없을무, 學은 배울학, 大는 큰대, 師는 스승사, 紀는 적을기, 念은 생각념, 碑는 비석비라고 읽어요. 無, 師, 紀만 자원을 알아 보도록 하죠. 다른 것은 전에 다루었거든요.
無는 사진에 나와있는 전서체를 가지고 설명해야 자원을 알 수 있어요. 전서체의 無는 林(수풀림)과 大(큰대)와 卄卄의 합자에요. 卄卄은 卄(스물입)이 두 개 합쳐진 것으로 숫자가 많은 것을 의미하죠. 따라서 無는 본래 나무들이 크고 무성한 숲을 의미하는 글자였어요. 지금은 이 의미를 廡(무성할무)로 표현하죠. 無가 '없다'라는 의미로 사용하게 된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추측컨대, 나무들이 워낙 무성해서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다는 의미로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은 아닐까 싶어요. 無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無知(무지), 無謀(무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師는 본래 주나라때의 군대 단위를 가리키는 말이었어요. 2,500명의 군사를 師라고 불렀죠. 師의 왼쪽 부분은 阜(언덕부)의 줄임 형태이고, 오른쪽은 匝(둘레잡)의 초기 형태에요. 높이 쌓아 올려지고 둘레가 물샐틈없이 면밀하다는 의미였는데, 군사가 많고 기강이 엄밀하다는 의미로 전이되었죠. 후에 '스승'이란 의미로도 사용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많은 군사를 지도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사용하다 점차 보편적인 의미로 남을 지도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어요. 師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師團(사단), 師範(사범)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紀는 糸(실사)와 己의 합자에요. 본래 각 실이 하나로 통합된 모양을 나타낸 것이었어요. 己는 그 실이 꼬인 모양을 나타낸 것이에요. 실이 통합되면 꼬인 모양을 하지요. '적다(쓰다)'란 의미를 갖게 된 것은, 문자가 없던 시절, 실을 꼬아 의사를 표현한데서 나온거에요. 결승문자를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紀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紀綱(기강), 紀事(기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보실까요?
1. 다음에 해당하는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없을무, 스승사, 적을기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範, ( )事, ( )知
3. 위에서 소개한 이야기의 뒷 이야기를 이어 창작해 보시오.
3번 문제 해보셨나요? 인터넷을 찾아 보시면 무학대사 탄생기가 나와요. 한 번 대조해 보시면 재미 있을 것 같아요. ^ ^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