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의 은혜는 가이 없어라 ...
지난 주에 스승의 날이 있었죠. 오늘은 만세(萬世)의 스승이신 공자께서 하신 말씀을 한 대목 보도록 하죠.
학불염교불권(學不厭敎不倦)이라고 읽어요. '배우는데 싫증을 내지 않고, 가르치는데 게으르지 않는다'라고 풀이해요.
공자가 공자일 수 있었던 그만의 특징이자 자부심을 표현한 말이죠. 사실 배운다는 것은 고단한 과정이라 싫증 나기가 쉽고, 가르친다는 것도 대부분 반복되는 것을 가르치게 되기에 게을러지기가 쉽죠. 그런데 그러한 것을 남들과 다르게 싫증내지 않고 게으르게 하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 보통 사람은 아니겠죠?
잘 알려진 것처럼, 공자는 특정한 스승을 두지 않은 채 독학했던 사람이죠. 조실부모했기에 일찍부터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야 했지만,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았죠. 그는 자신의 주변 사람 모두를 자신을 가르쳐주는 스승으로 생각했죠. '세사람이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焉)'는 공자의 말은 그런 배움의 과정을 피력한 말이지요.
공자의 제자였던 안연은 스승을 술회하면서 '선생님께서는 차근차근 잘 지도해 주신다. 글로써 견식을 넓혀 주시며 예로써 단속시켜 주시니 그 배움을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 둘수가 없다(夫子 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 欲罷不能).'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공자는 제자의 상태에 맞추어 차근차근 지도해주는 근면한 스승이었던 것이지요.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 둘수가 없다'는 안회의 말은 공자가 얼마나 노련한 스승이었나 하는 것을 보여주는 언급이에요. 이런 스승 밑에서 배우면 정말 배우는게 한없이 즐거울 것 같아요.
요즘 교육현장에 스승다운 선생님이 없고 제자다운 학생이 없다고 많이 아쉬워하지요. 뭐, 과거와 다른 시대니까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지요. 그래도 마음 한켠에 그런 것을 그리워하는 것은 공자이래의 오랜 교학(敎學)전통이 우리의 유전자에 박혀있기 때문이겠지요.
서설이 너무 길었네요. 한자를 하나씩 읽어 보도록 할까요? 배울학(學) 아니불(不) 싫어할염(厭) 가르칠교(敎) 아니불(不) 게으를권(倦), 학불염교불권(學不厭敎不倦)이라고 읽어요. 厭, 敎, 倦만 좀 자세히 알아 보도록 하죠. 다른 것은 전에 다뤘어요.
厭은 厂(언덕한)과 猒(편안할염)의 합자에요. 돌덩어리[厂: 언덕한. 언덕에는 돌덩어리가 많죠]로 무겁게 눌러놓아 안정되게[猒] 한다는 뜻이에요. '누르다'란 의미지요. '싫어하다'란 의미는 '누르다'에서 연역된 것이에요. 계속 눌려있는데 누가 좋아 하겠어요? 厭은 지금은 '싫어하다'란 뜻으로 사용하고 본래의 뜻인 '누르다'란 의미는 壓(누를압)으로 표기해요. 厭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厭症(염증), 厭世(염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敎는 爻(본받을효)와 攵(칠복)의 합자에요. 윗사람이 지도해주는[攵] 것을 아랫 사람이 본받는다[爻]는 의미에요. 敎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敎育(교육), 敎導(교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倦은 人(사람인)과 卷(굽을권)의 합자에요. 본래 '피로하다'는 의미였어요. 피로하면 숨도 제대로 못쉬고 일도 대충대충 하겠지요? 卷에 그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요. '게으르다'란 의미는 '피로하다'라는 의미에서 연역된 것이지요. 설명 안드려도 충분히 짐작하실 것 같아요. 倦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倦怠(권태), 倦色(권색, 피곤한 기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할 겸 문제를 한 번 풀어 보실까요?
1. 다음에 해당하는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싫어할염, 가르칠교, 게으를권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育, ( )症, ( )怠
3. 다음을 읽고 뜻을 풀이해 보시오.
學不厭敎不倦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내일 뵈요. 아, 한가지만 더. 스승의 노래중에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란 가사는 안연이 공자를 술회한 말중에 나온 '앙지미고(仰之彌高 )'를 따온 것이에요. 앙지미고(仰之彌高 ) -- 우러를앙(仰) 어조사지(之) 더욱미(彌) 높을고(高), '우러러 볼수록 더욱 더 높아 보인다'란 뜻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