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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
꽃 꺾어 술잔 세며 한없이 먹세그려
죽은 후엔 거적에 꽁꽁 묶여 지게 위에 실려가나
만인이 울며 따르는 고운 상여 타고 가나 매한가지
억새풀, 속새풀 우거진 숲에 한번 가면
그 누가 한잔 먹자 하겠는가?
무덤 위에 원숭이 놀러와 휘파람불 때
뉘우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호탕하면서서도 허무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송강 정철의 <권주가>에요. 오늘은 이 시와 어울릴 듯한 각자(刻字)를 보도록 하겠어요. 이름하여 醉石(취석)이에요. 취할취(醉) 돌석(石), 취하여 눕는 돌(곳)이란 의미지요. 각자(刻字)의 돌을 보면 취객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 ^ ^ 이 글씨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에요.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에 있어요. 음암면 유계리에는 세칭 한다리 김씨라고 불리는 경주 김씨 세거지(世居地: 대대로 사는 곳)가 있어요. 김정희 선생은 이 가문 출신인지라 이곳을 자주 왕래했다고 해요. 이 각자(刻字)는 그 와중에 남긴 것이고요.
취석(醉石)은 동진(東晉)의 시인 도연명(陶淵明)과 관련이 있어요. 그가 거처하던 율리(栗里)에 큰 돌이 하나 있었는데, 도연명은 술에 취하면 종종 이 바위에서 잠을 잤다고 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 바위 이름을 취석이라고 명명했지요. 도연명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세간과 거리를 두고 은자적 생활을 했던 사람이지요. 그래서 일까요? 취석이란 말에서 탈속적이고 허무적인 냄새가 짙게 느껴져요.
날도 좋겠다, 정철의 권주가를 핑계삼아 술 한잔 기울일까요? 그리고 아무 돌이나 취석삼아 누워 하늘 한 번 보고요. ^ ^ 그나저나 추사 선생은 이 취석에서 취하여 잠이 든적이 있었을까요?
오늘은 醉 한 글자만 보면 되겠네요. ^ ^
醉는 酒(술주)의 약자인 酉와 卒(마칠졸)의 합자에요. 주량대로 한 껏 마셔 취했다란 뜻이지요. 醉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滿醉(만취), 醉客(취객)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오늘은 문제는 아니내도 되겠지요? ^ ^ 대신에 정철의 <권주가>와는 또 다른 삶의 슬픔을 말하는 공광규 시인의 <소주병>을 읽어 보도록 하시죠. 내일 뵈요~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 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 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