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들으셨으면 오늘 현판은 어느 건물의 현판인지 아시겠죠? 네, 그래요. 명성황후께서 거처하시던 건물의 현판이에요. 물론 고종 황제와 같이 거처 하시던 곳이죠. 우리 근대사의 비극을 안고 있는 장소라 마음이 숙연해지는 장소이죠.

 

그런데 사실 지난 시간에 봤던 交泰殿 뒤에는 후원(後苑)에 해당하는 향원정(香遠亭)이 있어요. 그런데 향원정의 현판이 너무 작아 카메라에 담을 수가 없었어요. 뭐, 다른데서 자료를 따다 쓸수도 있지만 그렇게 까지는... ^ ^ 그래서 바로 향원정 뒤에 있는 명성황후와 고종황제께서 사저(私邸: 개인 주택)격으로 쓰시던 건물 현판을 소개해 드리려 해요. 사진을 보실까요?

 

 

 

 

 

乾淸宮은 '건청궁'이라고 읽고, 玉壺樓는 '옥호루'라고 읽어요. 건천궁은 예서체로 썼고, 옥호루는 행서체로 썼죠. 乾은 하늘건, 淸은 맑을청, 宮은 대궐궁, 玉은 구슬옥, 壺는 병호, 樓는 다락루라고 읽어요. 乾淸은 하늘이 맑다란 뜻이에요. 宮은 진나라 이전에는 일반 가옥의 의미로 썼으나 이후에는 대궐의 의미로만 쓰게 됐어요. 玉壺는 '玉壺氷(옥호빙: 옥 호리병 속에 든 얼음)'의 줄임말로 맑고 깨끗한 마음의 비유적 표현이죠. 樓는 주변의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높이 지은 다락집을 가리켜요.

 

乾淸에는 개인의 사저이긴 하지만 임금의 사저라는 느낌이 짙게 느껴지죠. 임금은 곧 하늘이잖아요. 고종황제께선 이곳을 들어가실 때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모든 정무의 번거로움을 씻어 버리고 맑은 하늘처럼 조용히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아요^ ^

 

乾淸宮내에서도 고종황제와 명성황후께선 별거(^ ^) 하셨어요. 玉壺樓는 바로 명성황후 거처의 누각 이름이에요. 玉壺에도 번거로운 세사를 잊고 조용히 지내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어요. 아~ 그런데 여기서 일본 낭인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셨으니... 참고로 고종황제 거처의 누각이름은 추수부용루(秋水芙蓉樓)에요. 여기서도 玉壺와 유사한 뜻이 읽혀지죠.

 

자, 이제 한자를 좀 자세히 알아 볼까요?

 

乾은 본래 초목의 싹이 땅 위로 솟아 난다란 뜻이었어요. 乙은 싹이 땅을 뚫고 힘겹게 올라 오느라 구부러진 모양을 표현한 것이죠. 나머지 부분은 해가 뜰 때 처음으로 발산하는 빛을 의미하는데, 싹이 땅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다는 의미를 일부분 보충해주고 있죠. 음도 담당하고 있고요. 종합하면, 햇살이 처음 그 빛을 비추듯 새싹이 땅을 뚫고 위로 나오다란 의미가 되겠네요. 이게 왜 하늘이란 뜻으로도 사용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추측컨데, 새싹이 지향하는 것이 하늘 방향이기에 연역하여 하늘이란 뜻으로도 사용하게 된 것 아닌가 싶어요. 乾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乾坤(건곤), 乾魚物(건어물) 등이 있겠네요. 乾魚物이라 할 때 乾은 하늘이 아니라 '말랐다'란 의미에요.

 

淸은 水와 靑(푸를청)의 결합이에요. 물이 맑고 깨끗하다란 의미에요. 그래서 水를 뜻부분으로 사용했어요. 靑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갖고 있죠.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상태가 靑의 의미이거든요. 맑고 깨끗하다란 의미를 보충해주고 있는 것이죠. 淸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淸明(청명), 淸潔(청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宮은 宀(집면)과 呂의 결합이에요. 宀은 집의 전체적인 외곽을, 呂는 창호를 표현한 것이에요. 宮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宮闕(궁궐), 宮中(궁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玉 은 구슬 세 개를 하나로 꿰어 놓은 형상이에요. 一은 구슬을, 丨은 관통한 모습을 표현한 것이지요. 본래는 王(임금왕)의 형태로 썼는데, 후에 임금이란 뜻의 王과 구별하기 위해 丶를 추가해 玉의 형태로 쓴 것이에요. 玉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玉石(옥석), 玉盤(옥반: 옥으로 반든 쟁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壺는 병을 그린 것이에요. 장이나 술 등을 담아 놓는 목이 있고 배부분이 불룩하며 뚜껑이 있는 병을 표현한 것이지요. 十은 뚜껑을 표현한 것이고, 나머지는 몸체를 표현한 것이에요. 壺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投壺(투호), 壺中物(호중물: 술이란 뜻이에요)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樓는 본래 이층집이란 의미였어요. 똑같은 집을 두채 겹쳐 놓은게 이층집이죠. 겹쳐놓았다는 의미는 婁(屢(여러루)와 서로 통용해요)로 표현했고, 이층집의 가설재는 나무이기에 木을 쓴 것이지요. 婁는 음도 담당해요. 樓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樓閣(누각), 樓亭(누정)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자, 정리할 겸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에 해당하는 한자를 '허벅지에 손가락으로' 써 보시오.

 

    하늘건, 맑을청, 대궐궁, 구슬옥, 병호, 다락루

 

2. (     )안에 들어 갈 알맞은 한자를 '허벅지에 손가락으로' 써 보시오.

 

   投(      ), (      )石, (      )闕, (      )坤, (      )明, (      )閣

 

3. 여러분이 별장을 갖게 된다고 가정하고 그 별장의 이름을 지어 보시오.

 

 

고종황제께서는 왜 왕의 처소인 康寧殿을 두고 따로 乾淸宮을 지으셨을까요? 유홍준 교수님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말씀하세요.

 

"두 가지 뜻이 있었던 것 같다. 하나는 아버지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왕으로서 정통성을 확립하는 뜻이었을 것이다. 건청궁이 완공될 무렵인 고종 10년에 친정선언을 한 것으로 보아 이는 고종의 통치구상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고종이 거소만은 인간으로서의 편안함을 느끼고 싶었던 면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평생을 왕으로 살아 간다는 것은 일거수일투족이 구속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그 제왕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순조는 창경궁에 양반 가옥을 본뜬 99칸 집인 '연경당(演慶堂)'을 지었고, 헌종은 사랑채가 편안해 보이는 '낙선재(樂善齋)'를 짓고 거기에 기거했다."

 

황제의 자리는 그리 행복한 자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내일은 경복궁 마지막 현판 기행을 떠납니다. 어딜 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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