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한낮) '화엄경' 독송을 마치고 시냇물에 몸을 씻을 때는 날아갈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만족 지연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욕구는 즉시보다 지연시켰을 때 충족감이 더 크다는 것. 인용문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나오는 일절들인데(책을 분실해 정확한 인용은 아니다), 스님은(이라서 그런지) 이 법칙을 체험적으로 터득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일반인도 조금 나이를 먹으면 이 법칙을 자연스럽게 터득한다. 다만 실천이 어려울 뿐.
아침마다 스마트폰과 전쟁을 벌인다. 아침 독서를 방해하기 때문. 2시간 '통감절요' 읽는 것을 아침 중요 일과로 정했는데, 약간 방심해 스마트폰을 켜면 그날 아침 독서는 물 건너간다. 당연히 즉각적 만족감은 있지만 풍족한 만족감은 느끼기는 힘들다. 오늘, 힘겹게 스마트폰의 유혹을 물리치고 아침 독서를 끝내 흡족한 마음이 들기에 몇 마디 주절거렸다. 축하해 주시라! 여담. '무소유'에서 인용한 첫대목은 70년대 고관대작들이 골프를 취미로 삼는 것에 일침을 놓는 가운데 한 말이다. 모두가 먹고살기 힘든 시절, 서민의 아픔을 공감해야 할 고관대작들이 현실과 괴리된 '골프'라는 고상한 취미를 갖는 것에 스님은 동의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다소 자학적이기까지 한 저 멘트에서 시대를 걱정하는 지성인으로서의 스님의 면모를 읽을 수 있다. 나는 골프가 대중화된 듯한 지금 현실에서도 스님의 일갈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고 있다. 두번째 인용 대목은 스님의 독서기에 나오는 것인데, 스님은 더위서 어떤 일도 하기 힘든 시기인 여름이야말로 독서에 제격이라며 무더운 여름날 좁은 방에서 가사장삼을 입은 채 비지땀을 흘리며 화엄경을 읽었던 경험을 들려준다. 나도 스님을 흉내 내 무더운 여름날 좁은 방에서 단정히 앉아 독서를 해본 적이 있는데, 현기증이 일어 죽는 줄 알았다. 하라. 법정 스님이었기에 가능했던 독서라는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