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이미 6부를 정하고 나서 이를 반씩 둘로 나누어 왕의 딸 2명으로 하여금 각각 부() 내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무리를 나누어 편을 짜서 가을 716일부터 매일 아침 일찍 대부(大部)의 뜰에 모여서 길쌈을 하도록 하여 밤 10시 무렵에 마쳤는데, 815일에 이르러 그 공이 많고 적음을 따져 진 쪽은 술과 음식을 차려 이긴 쪽에게 사례하였다. 여기에서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가 모두 벌어졌으니, 그것을 일러 가배(嘉俳)라고 하였다. 이때 진 쪽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추며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회소(會蘇) 회소(會蘇)”라고 하였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도 아름다워 후대 사람들이 그 소리에서 말미암아 노래를 지으니, 회소곡(會蘇曲)이라고 이름 지었다.” (삼국사기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

  

한 번쯤 들어봤을 추석의 유래다. 그런데 여기서 눈에 띄는 특별한 구절이 있다. “진 쪽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추며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회소(會蘇) 회소(會蘇)”라고 하였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도란 구절. 진 쪽에서 내뱉는 탄식이니 슬플 수도 있겠다 싶지만,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가 벌어지는 잔치마당인데 너무 안 어울리지 않는가? 그리고 또 그 슬픈 탄식조의 회소란 말은 무슨 뜻인가?

  

김성호(비류 백제와 일본 국가 기원의 저자)는 추석이 신라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북방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그 근거로 위 기사에서 추수감사의 성격이 짙은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가 모두 벌어진 것과 회소(會蘇)”를 향찰 표기로 봤을 때의 의미를 든다. 추석 즈음의 절기는 추수가 일찍 끝나는 북방에서는 추수감사제를 열 수 있는 절기이나, 남방에서는 아직 수확이 이루어지는 시기가 아니기에 추수감사제를 열만 한 절기가 아니다. 따라서 추수감사제 성격의 추석은 북방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며, 그 풍속을 가져온 북방 사람들은 진시황의 탄압을 피해 남으로 내려온 이들일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 이주 시기에 가족과 헤어진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은 해마다 북방에서 행하던 추수감사제 성격의 추석을 남방에서 행할 때 헤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는 가무를 행했을 것이며, “회소(會蘇)”는 그때의 가무에서 발한 탄식일 것으로 본다. 그러면 회소(會蘇)”란 의미는 무엇인가? 그는 회소(會蘇)”를 향찰 표기로 보면 왔소가 될 것으로 본다. ‘()’에는 오다라는 뜻이 있기에 그 의미로 쓴 것이고, ‘()’는 음만 빌려 쓴 것으로 보는 것. 부연하면, ‘그리운 그대, 왔소이까?’ 정도의 의미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서는 당연히 애절하지 않았겠냐고 말한다.

  

추정이지만 논리적 정합성이 있는 추정이다. 이 추정이 맞느냐 틀리냐를 따지는 건 무의미할 터이다. 논리적 정합성이 있다 해도 추정은 추정일 뿐이니까. 다만 삼국사기의 기사에서도 그렇고, 추정에서 살펴본 내용도 그렇고 추석의 본질이 무엇이냐를 살피는게 중요할 것이다. 추석의 본질은 무엇일까? ‘만남아닐까? 그것이 이루어져서 즐겁든, 이루어지지 못해서 슬프든 말이다. 갈수록 만남이 희소해지고 있다. 심지어 가족 간에도. 만남이 사라지는 추석은 무의미한 추석이 될 것이다. 즐겁든 슬프든 어쨌든 만나야 추석이라 할 터이다.

 

추석을 추석답게 보내고 계신지, 껍데기 추석만 보내고 계신지들 궁금하다. 부디 추석을 추석답게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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