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7일 월요일
해 저문, 아니 ‘해 담은’에서 눈을 뜬 것은 5시 반. 앱을 켜고 금강산 콘도까지 거리를 확인하니 40km에 도보로 10시간 4분 걸린다고 나온다. 날씨를 확인하니 오후 늦게 비 소식이 있다.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다. 순대에 내용물 채우듯 꾸역꾸역 아침 식사를 한 후 간단히 세수하고 주변 정리를 한 뒤 모텔을 나섰다. 해변에 나가 아침 녘 풍경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햇빛을 바라보고 찍어서 그런지 얼핏 보면 석양 녘 풍경 같다. 보는 사람들이 알아서 판단 허겄지. 해변 위쪽에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시설이 있다. 피정의 집 같기도 하고 요양원 같기도 한. 어느 것이든 좋은 위치에 마련한 것 같다. 피정의 집이라면 다음엔 저기에 가서 묵었으면 좋겠다. 다시 올 기회가 있긴 할까?
7시 55분, 청간정에 올랐다. 표현력 없다 보니, 두 마디만 나왔다. 우와! 멋있다! 장대한 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절로 사진을 찍게 된다. 이승만 대통령과 최규하 대통령 필적이 걸려 있다. 호감가지 않는 인물들 필적이라, 감상은 패스! 택당 이식의 시도 걸려있는데 고사를 사용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외려 홍경모가 쓴 청간정 기사가 관심을 끈다. 끙끙거리며 읽어본다. (애고, 평생 한문 선생을 했는데, 실력이 왜 이리 요 모양이냐. 하긴 시계불알처럼 왔다 갔다만 했으니 뭔 실력이 있으랴. 어디 가서 절대로 한문 선생했다고 말하지 말자!)
청간정은 간성군 남쪽 45리 되는 곳에 있다. 천후산 한 자락이 뻗어 내려 바닷가에 가로로 작은 언덕을 펼쳐 놓았는데 앞에 석봉(石峰)이 있어 우뚝 솟아 층대(層臺)를 이루고 있다. 이 장소를 만경대라 부른다. 높이가 수십 길로, 위에는 구불구불한 소나무들이 얼기설기 삼면에 걸쳐 드리워져 있다. 맑은 바닷물이 부딪치며 솟구치는 소리가 웅장하다. 옛적에 이곳에 누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만경대 남쪽 2리쯤 되는 곳 시냇가에 역정(驛亭)이 있는바 이것이 청간정이다. 만경루가 없어짐에 만경대 옆으로 이 역정을 옮겨오고 만경대 편액을 걸어 놓았는데, 본시 시냇가에 있던 건물이라 세간에서는 통칭 청간정이라 부른다. 정자가 바다로부터 수십 발짝 떨어져 있을뿐더러 모퉁이에 위치해 있고 물속의 방패막이 지형이 파도를 막아줘 수해를 입지 않는다. 정자가 넓고 통창하여 거대한 바다를 내려다 보기 충분하며, 해와 달이 뜨고 지는 모습, 갈매기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풍경, 어촌의 밥 짓는 연기, 하늘과 물이 만나는 아득한 정경들이 모두 한눈에 들어온다. 소용돌이치는 물이 정자 아래 있는데 티 없이 맑아 그 밑바닥이 보이기에 머리털과 수염이 비칠 정도이다. 바람이 불어 파도의 포말이 드날릴 때는 서리와 눈이 사방에 흩날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산림에 은거하고자 하는 뜻이 생기는 바 이런 풍경은 낮에 더 보기 좋다. 달 뜨는 밤 창가에 누워 바람과 파도 소리가 창문을 흔드는 소리를 들으면 흡사 물 위에서 자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배를 타고 가다 정자에서 1리쯤 떨어진 곳에 이르면 해변에 자마석(自磨石)이란 것이 있다. 자마석은 돌무더기 가운데 있는 일(一) 거석(巨石)인데 소와 같은 모양새이다. 여기에 한 거석이 그 위에 덮여 있고 그 사이로 주먹 하나 들어갈만한 틈이 있다. 윗 돌과 아랫 돌 중간에 나 있으며 돌을 갈아낸 흔적이 있어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지역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긴다. 나도 그 정확한 내막은 모르겠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아래 세 곳 모난 데에도 모두 이런 모양이 있는바, 이는 파도가 항시 바위 틈새로 왔다 갔다 하는 고로 바람과 파도가 세찰 때 바위 또한 거기에 휩쓸려 물결과 상호작용을 하다 보니 그리된 걸 것이다. 이 이치로 보면 하나도 괴이할 것이 없다.
유래와 풍경을 세밀히 묘사해 실감난다. 끙끙거리며 읽은 보람이 있다. 잠시 앉아 풍경을 감상했다. 다시, 출발~.
소나무 우거진 길을 벗어나 잠깐 큰 도로로 나가려는데 갑자기 이인(異人)이 나타났다. 작은 손수레 같은 것을 허리춤에 매어 끌고 오는데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하고 옷은 꾀죄죄하지만 눈빛은 형형하다. 풍기는 아우라가 만만치 않아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 수인사를 했다. “여행 중이신가 봐요?”(하나마나한 멍청한 질문. 보면 모르나?) “네~” “저는 해남에서 왔는데, 어디로?” “동파랑길 따라가고 있습니다.” 손수레 같은 것은 무엇이냐고 물으니, 숙박 장비라고 했다. 손수 제작했단다. 200여 일 넘게 전국을 일주하고 있다고. 식사는 어떻게 하시냐니, 주로 사 먹으며 어쩔 수 없을 때는 라면으로 때운단다. 가본 곳 중 혹시 추천해 주실 만한 곳이 있냐니, 제주의 한라산 둘레길과 탐모라질 길을 추천해 준다. 숙박비가 너무 많이 들어 여행하기 힘들다고 했더니, 동조하며 그래서 자신은 숙박 장비를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잠시 이것저것 더 얘기를 하는 중 이인에게 전화가 왔다. 통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더 얘기하기는 뭐해 작별 인사를 했다. 도보 여행을 나오면서 막연히 길에서 만날 그 어떤 인연을 기대했는데, 이 이인으로하여 충족된 느낌이다. 확실히 이번 여행은 하늘이 점지해 주신 게 틀림없다. 오,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아멘, 아미타불,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알라 알라 기타 등등.
큰 도로를 따라 걷는데 옆으로 걷기 좋은 산책길이 있다. 짤막한 게 아니고 지금 걷고 있는 도로와 병행하는 긴 길이다. 굳이 큰 도로로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걷던 길을 바꿨다. 큰 도로와 산책길 중간에 꽃나무를 심어 경계선을 만들어 놓았는데 무지막지하게 타고 넘어 들어갔다. 운전자들이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산책길 옆으로 펼쳐지는 호수가 장관이다. 무슨 호수일까? 앱을 켜고 살펴보니 ‘송지호’다. 바다도 멋진데 이런 멋진 호수까지. 고성은 복 받은 고장인 것 같다. 이곳만 여유 있게 걸어도 하루 여행 일정이 될 듯해 보였다.
어찌어찌하야 다시 해변 길을 걷는다. 시계를 보니 12시. 점심때이다. 적당한 식당이 있으면 한 끼 사 먹고 싶다. 이런 내 마음을 하느님이 알아차리신 것일까, 근사한 식당이 눈에 띈다. 이름도 멋지다. ‘금강산도 식후경.’ 고성 최고의 맛집이란다. 최근에 지었는지 건물이 산뜻하다. 입간판에 메뉴를 소개해 놨는데, 물회가 눈에 띈다. 더구나 물회가 전문이란다. 그려? 한 번 먹어볼까? 그런데 가격이 세다. 만육천 원. 까짓 거, 막판인데…. 이제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 주인이 창가 쪽 1인 테이블 석으로 안내해 준다. 주문은 키오스크로 받는다. 점점 자동화되는 음식점. 나중엔 음식 배달도 로봇이 해줄 것 같다.
창가에 앉아 해변을 바라보는데, 두 젊은 남녀가 바다를 거닐고 있었다. 물컵을 근경에 두고 바닷가 두 젊은 남녀를 카메라로 바라보니, 물컵은 거대한 수조처럼, 두 젊은 남녀는 미미한 사물처럼 보인다. 물컵의 물을 두 사람에게 쏟으면 물에 빠져 허우적 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거리에 차이에서 비롯되는 유머러스한 미감. 재미있는 사진이 될 것 같아 한 장 찍었다. 스토커 아닙니다~.
물회가 나왔다. 내 생애 처음으로 먹어보는 회다. 말 그대로 차가운 물에 담긴 회인데, 고춧가루와 식초가 많이 들어가 맵고 시다. 국수가 함께 나왔는데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그냥 물회에 넣어 함께 먹었다. 더운 참에 맛있게 먹었는데 먹고 나와 뱃속이 불편해 한참 고생했다. 너무 빨리 먹어 소화가 안된 탓도 있지만, 물회가 너무 차가워서 그랬던 것 같다. 차가운 음식이 불편한 걸 보면 나이를 먹긴 먹은 모양이다. 다시, 출발.
자전거 도로가 잘 돼 있어 확실히 그간 지나온 길들에 비해 마음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게 이쪽 길이다. 게다가 자전거 도로가 대부분 해변을 끼고 나 있어 바다 감상까지 하며 걸을 수 있기에 더 좋다. 신나게 걷고 있는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쓰레기를 만났다. 오토바이. 세상에, 오토바이까지. 관광 강원 얼굴에 먹칠하는 물건이다. 진태 씨, 신경 좀 써주셔~. 아니 그런데 이건 또 뭐냐? 금방 자전거 도로를 칭찬했는데, 자전거 길 통행금지 띠를 둘렀네. 뭐여, 내 허락도 안 받고 언제 저런 거를 한 겨. 진태 씨, 정말 이렇게 할 겨~. 자전거 도로를 따라오던 자전거 여행자들이 무척 당황할 것 같다. 빨래 보수되기를!
4시 40분. 화진포의 김일성 별장과 이기붕 박마리아 별장을 들렸다. 사실 별 매력 없는 인물들의 별장이지만 한 때 역사의 틀을 짜고 권력의 못을 박은 자들이라, 어떤 곳에서 자빠져 자고 밥을 먹었는지 궁금해 들려보기로 했다. 김일성 별장은 외국인 선교사의 집이었던 것을 김일성이 자신의 별장으로 쓴 것인데, 1948년부터 1950년까지 사용했단다. 관광객에게 실감 나는 관광을 하라고 당신이 지금 딛고 있는 계단이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이 댓살 때 사진 찍은 장소라며 당시 사진을 계단 벽면에 붙여 놓았다. 별 재미없는 실감. 별장에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았다. 김일성은 바다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잠시 복잡하고 힘든 정무를 뒤로하고 쉬러 왔을 테지만, 시대 상황을 두고 보면, 왠지 마음 편히 쉬며 바다를 감상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나저나 이 사람아, 자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땅에서 죽었는가. 자네는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여. 이제 지상을 떠난 지금, 그곳에서 평생을 X 잡고 반성하며 민족의 제단 앞에 사죄토록 하게나.
이기붕 박마리아 별장은 숙소까지 가야 할 시간이 촉박해 그냥 지나칠까 하다 입장료가 아까워 잠깐 들렸다. 이(李)와 박(朴)은 굥과 김(金)의 본보기 같은 인물이다. 역사는 진보하는 줄 알았는데 되풀이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쓱 한 번 훑어보고 나왔다. 박마리아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현대사의 많은 추악한 일에 관련된 인물이다. 이화여대를 나오고 미국 피바디 대학에서 석사까지 받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 가득했던 건 오로지 돈과 권력이었다. 남편 이기붕은 그녀의 손에 놀아난 꼭두각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고. 에고, 그만하자, 입만 더러워진다. 댁들도 지상을 떠난 지금, 그곳에서 평생 무릎 꿇고 두 손 든 채 민족의 제단 앞에 사죄토록 하시오!
5시 31분. 날이 점점 흐려진다. 간간 빗방울이 던진다. 길가에 민박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왜 이리 청량리 588 같은 느낌인지 모르겠다. 흐려진 날씨에 후주글한 외양 바쁜 발길이 그런 느낌을 자아내게 한 것 같다. 비가 쏟아질 듯 해, 금강산 콘도를 포기하고 어느 한 군데에 들어갈까도 생각했는데 기분이 영 내키질 않아 그만뒀다. 드디어 비가 쏟아진다. 우산을 꺼내 들었다. 저 멀리 금강산 콘도가 보인다. 6시 5분, 금강산 콘도에 도착했다. 방을 달라니, 전망 좋은 곳은 없다며 5만 원이란다. 이미 안복은 충분히 누리고 온 터, 전망이 무슨 상관이랴. 방에 들어갔는데, 시설이 많이 노후돼 있다. 씻고 정리하기 전에, 우선 따뜻한 밥부터 먹고 싶어 콘도 내 편의점에서 사 온 햇반 1개를 전기밥통에 넣은 뒤 취사 스위치를 눌렀다. 금방 밥이 됐다. 찬장에 있는 밥공기를 꺼내 밥을 퍼 담았다. 잠시 두 손으로 밥공기를 잡고 따뜻한 밥 냄새를 맡아본다. 이게 얼마 만에 맡아보는 밥 냄새냐. 편의점에서 사 온 깻잎을 반찬으로 정신없이 밥을 먹었다. 샤워를 하고 나머지 제반 저녁 행사를 치렀다.
한동안 부질없이 티브이를 켜고 이것저것 보다가 불현듯 치킨 생각이 나서 콘도 내 치킨집에 내려갔다. 주인이 밥을 먹고 있었다. 튀김 치킨 가격을 보니 1만 9천 원이다. 부담스럽다. 트라이를 해보는데, 통하지 않는다. 주인도 ‘진강원’ 주인이 아니고 나도 이미 밥을 먹었기에 절실하지 않아 그랬던 것 같다. 그냥 나올까 하다, 실질적인 여행 마지막 날이라 자축 겸해 주문을 했다. 술도 한 잔 할까 하다, 그건 아닌 것 같아 그만뒀다. 방에 가지고 와 먹는데, 역시나 부담스럽다. 1/3 정도만 먹고 나머지는 싸서 화장실에 갖다 놨다. 방에 냄새가 밸까 봐. 다시 이빨을 닦고 침대에 기대 TV를 켜고 아우성치는 애들 머리를 고루고루 쓰다듬어 주었다. 얘들아, 이제 자야 할 것 같다. 너희들도 그만 자렴. 뭔가 극적인 밤이어야 할 것 같은데, 비가 와서 그런지, 힘들어서 그런지, 비(非)극적인 밤이다.
내일은 통일 전망대를 거쳐 서울 익선동으로 간다. 익선동은 초등학교 시절 대부분을 보낸 곳. 처음엔 갈 생각이 없었는데 왠지 여행 막바지에 이르니 가고 싶어졌다. 회귀본능일까?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