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왔어요!”     



조나라의 예고된 공격에 전전긍긍하다 묵가 집단에 성의 수비를 의뢰한 양성의 성주. 그러나 간절한 양성 성주의 기대와 달리 묵가 집단에선 혁리 한 사람만이 양성을 찾을 거라 통보한다. 조나라의 공격이 목전에 다가온 날 혁리는 양성을 찾는다.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양성의 코앞에 이른 조나라 군대를 보고 혁리는 잠시 하늘을 쳐다본 뒤 햇빛을 등지고 조나라 군대 대장을 향해 화살을 날린다. 그 화살이 자신을 향하는 줄 모른 채 밝은 햇빛 속에 날아오는 화살을 찡그린 눈으로 바라보는 조나라 장군. 화살이 예기치 않게 자신의 투구에 맞자 방심했던 조나라 장군은 중심을 잃고 말에서 떨어진다. 순간 조나라 군대는 술렁거리고, 예기를 꺾인 조나라 장군은 잠시 퇴각을 명한다. 영화 「묵공」의 첫 장면이다.     



전쟁하는 나라들의 시대, 세상을 풍미했던 묵가의 사상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겸애주의(兼愛主義)’였다. 좀 더 쉬운 말로 바꾼다면 박애와 평화주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현실에서 실천하기 위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직접 전쟁에 참여하여 성의 수비를 맡거나 전쟁 자체를 무산시키는 유세를 펼쳤다.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던 약소국들에게 그들의 존재는 메시아와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풍미했던 묵가는 전쟁하는 나라들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영화 「묵공」의 마지막은 혁리가 조나라 군대를 물리쳤지만 양성 성주의 배신으로 따돌림을 당하고 이후 전쟁고아들을 데리고 양성을 떠나는 장면인데, 묵가 집단의 소멸을 오버랩시키는 장면이다. 강대국들이야 묵가의 사상을 옹호할 이유가 없고 약소국들도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묵가 사상을 옹호하여, 전쟁의 시대가 종언을 고할 때― 더구나 무력으로 ―묵가의 사상은 발붙일 곳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묵가의 사상은 태생적으로 소멸의 운명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겸애주의란 너무도 이상적인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금이 흔적 없이 사라져도 대상에 스며들어 그 맛이 지속되듯, 묵가의 사상 또한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지만 그 의미는 이후 다른 사상들에 스며들어 지속됐다고 본다. 일례로, 유가의 이상인 ‘평천하(平天下)’ ‘대동(大同)’을 겸애주의와 완전히 분리시켜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진의 한자는‘박애(博愛) 화평(和平)’이라고 읽는다. 묵가 ‘겸애주의’의 다른 버전일 터이다. 베트남에 갔다 화상(華商)들의 모임 장소인 ‘광조회관’에서 저 문구를 본 적이 있는데, 사진의 간판 역시 화상들의 모임 장소에 붙인 간판이 아닐까 싶다(사진은 군산에서 찍었다). 상인들이 내건 박애와 화평이란 아무래도 그 의미가 본래의 취지에 부합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무자비하게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한 허름한 간판에서 소금물처럼 스며든 묵가의 사상을 읽는다. 묵가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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