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살던 동네 이름은 '과디'였다.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후일 이 말이 원래 '구아대(舊衙臺)' 라는 걸 알았다. 옛 관청 터라는 의미였다. 살던 곳의 지명 의미를 아는 순간 우리 동네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던 동네 이름의 의미도 이해가 됐다. 그 동네는 '옥거리'라고 불렀는데, '옥'은 바로 '감옥'의 의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틀리지 않았다.

 

지명은 그 지역을 상징하는 표기이기에 의미가 담겨있다. '과디'는 아무래도 길지(吉地)의 의미가 짙고, '옥거리'는 아무래도 흉지(凶地)의 의미가 짙다. 그런데 한글 전용 매진후 지명에 스민 의미가 다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불필요한 차별이 사라졌으니 좋은 것도 같고, 의미가 사라진 채 단순 표기로만 사용되니 뭔가 허전하여 나쁜 것도 같기 때문이다.

 

사진의 한자는 '장(獐)'이라고 읽는다. '노루'란 뜻이다. 서산시의 외곽에 위치한 동네 이름이다(장동이라고 부른다). 서산에 거주하니 '장동'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장동'의 의미는 이 간판을 보고서야 알았다. 웃어야 할지, 허탈하다고해야 할지 살짝 헛갈렸다. 한자 지명이 대개 그렇듯 이곳도 원래는 한글 지명이었다가 한자 지명으로 바뀐 것 아닐까 싶다. 원래 이름은 '노룻골'이 아니었을까? 장동보다는 차라리 노룻골이 더 정겹고 의미도 있어보인다. 노루가 살던 곳이라니, 한가하고 외진 곳이란 의미가 아니겠는가. 장동은 한자로 표가하지 않는한(혹은 병기하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가 없고 그저 어느 지역을 알리는 표기에 지나지 않는다. 의미가 증발해버리기 때문이다.

 

사진에 나와 있다시피, 이 로고를 사용하는 업체는 철물을 파는 곳인데 주인이 이 곳 토박이거나 이 곳에 애정이 많은 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의 이름 의미를 한자로 분명히 명시했다는 것은 마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읽을 수 있는 이들이 흔치 않을텐데도 말이다. 침소봉대한 생각일까?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獐은 견(犭, 개 견)과 章(문채 장)의 합자이다. 노루라는 뜻이다. 犭으로 뜻을 표했다. 章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외양이 사슴처럼 아름답다는 의미를 나타낸 것이다. 노루 장. 麞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麞은 鹿(사슴 록)과 章의 합자이다. 사슴과 유사한 외양을 지닌 아름다운 동물이란 의미이다. 보다 의미가 분명하다.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獐牙(장아, 노루의 어금니. 벼의 별칭), 獐香草(장향초, 마늘) 등을 들 수 있겠다.

 

한글 전용이 대세를 이루면서 마을 이름이 단순 표기로 전락되어 생긴 우스운 마을 이름들을 소개한다. 외지인들이야 그저 웃고 말겠지만 그곳에 사는 분들은 분통이 터질 것 같다(오래된 자료이다. 지금은 변경됐을수도 있다. 감안해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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