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이 재미있는 이유는 범인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숨겨진 범인이 누구일까 궁금해 자꾸 책장을 넘기게 된다. 따라서 범인을 알고 있는 추리소설은 재독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감춘다는 것은 신비감을 간직하는 것이고, 그 신비감은 사람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매력이 된다. 하나만 더 예를 들어본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나 '밀로의 비너스상'을 보면 아름다움을 느낀다. 물론 그림 자체가 훌륭하고 조각 솜씨가 뛰어난 이유도 있겠지만 감출 곳을 적당히 감췄기에 아름답게 느껴진다. 감출 곳을 다 드러낸 '비너스의 탄생'이나 '밀로의 비너스상'은 처음에는 눈길이 가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미감은 반감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여성분들이 이 부분을 읽고 불쾌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짐승 같은 놈이라고 욕하며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한시에는 당시풍과 송시풍이라는 두 작풍(作風)이 있다. 당나라에서 지어진 시를 당시라 하고 송나라에서 지어진 시를 송시라 하는데 두 시대의 작풍은 차이가 분명했고, 이후 이런 작풍을 따라 지은 시들을 당시풍 혹은 송시풍이라 했다. 당시풍은 정()을 중심으로 하고, 송시풍은 의()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사물을 접할 때 정과 의가 함께 일어나지만, 당시풍은 정에 더 중점을 두고 짓고, 송시풍은 의에 더 중점을 두고 짓는다. 그러다 보니 이를 구현하기 위한 시작법에서도 차이가 생긴다. 정에 기반한 당시풍은 대상에서 느끼는 미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정을 사물의 묘사 속에 감추어 놓는 작법을 택한다. 미묘한 감정은 드러내어 말하기도 어렵지만 말하는 순간 미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반면 의에 기반한 송시풍은 대상에서 느낀 생각을 비교적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경물은 이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한 부수적(극단적으로 말하면) 재료로 사용한다.

 

사진은 소식(蘇軾, 1036-1101)제서림벽(題西林壁, 서림사 벽에 쓰다)이란 시이다. (서림사에 있는 작품인데, 글씨는 소식이 쓴 것이 아니고 이 절의 스님이 쓴 것이다. 현대 작품이다.)

 


橫看成嶺側成峰 횡간성령측성봉    가로로 보면 산줄기 세로로 보면 봉우리

遠近高低各不同 원근고저각부동    멀고 가까움높고 낮음에 따라 제각각

不識廬山眞面目 불식려산진면목    여산의 참모습 알지 못함은

只緣身在此山中 지연신재차산중    이 몸 산 속에 있기 때문

 


이 시는 시인의 그 어떤 생각을 여산(廬山)의 모습을 빌어 표현하고 있다. 시인의 그 어떤 생각은 무엇일까?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시인이 직접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상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며, 이런 차별적 파악은 궁극의 이치를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궁극의 이치를 체득할 때라야 사물의 본질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시의 소재로 등장한 여산(서림사에서 바라 본)은 시인의 이런 생각을 촉발시킨 것이지만, 정작 여기에서 중심이 된 것은 여산이 아니고 시인의 생각이다. 여산은 시인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재료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전형적인 송시풍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질문을 해본다. 당시가 맛있을까, 송시가 맛있을까? 하나 마나 한 질문을 왜 하냐고 할 것 같다. 그렇다. 하나 마나 한 질문이다. 당연히 당시가 맛있다. 시인의 미감을 사물의 묘사 속에 숨겨 놓았기에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 궁금증을 가지고 자꾸 읽게 되기 때문이다. 숨겨 놓은 범인이 궁금해 계속 추리소설을 읽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송시는 어떨까? 그렇다. 이미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그대로 드러냈기에 별맛이 없다. 범인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추리소설을 읽는 것과 다름없다.

 

소식의제서림벽은 서림사를 소재로 한 시중에서 가장 유명한 시로 꼽힌다. 그래서 그런지 찬양 일색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저 소식이라는 유명 문인이 지었다는 것 빼고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속 빈 강정 같은 시이다. 맛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반론을 할 것 같다. 그럼, 송시풍의 시는 다 보잘것없다는 것이냐? 절대 그런 것은 아니다. 송시풍의 시는 시를 통해 교화를 이루려는 동양의 전통 문학론에 충실한 시이다. 결코 허투루 볼 시풍의 시가 아니다. 다만 도덕적인(철리적인) 면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당시에 비해 미감이 떨어지고 맛이 우러나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는 것뿐이다.

 

여담. 당시풍이나 송시풍은 시대의 사상 조류와 관련이 깊다. 당대는 불교(선종)가 성했던 시기이고, 송대는 도학(성리학)이 성했던 시기이다. 당시가 불필요한 사설을 배제하고 경물 묘사에 치중하고, 송시가 사설을 앞세우고 경물을 뒤에 놓은 까닭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당시는 한시에서 꽃에, 송시는 열매에 비유되기도 한다. 당 이전 송 이후 시가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두 시풍이 한시의 모든 것을 발화시켰고 결실을 맺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당시풍으로 지은 시서림사에서 바라본 여산의 풍경 를 위 소식의 시와 나란히 소개하면 좋았을 터이다. 당시풍과 송시풍을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 하지만 아쉽게도 그만한 시를 찾지 못했다. 과문(寡聞)한 탓이다. 없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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