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선 자리. 생각보다 멋진 남자가 나왔다. 살짝 호감이 가는데, 남자도 내게 호감이 가는지 말수가 많아졌다. 처음부터 말수가 많으면 안 될 것 같아, 남자의 말에 적당히 호응을 보이며 미소만 지었다.

 

그런데 남자가 갑자기 무슨 유머를 꺼냈는데(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려 크게 웃고 말았다. 순간, 남자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속으로왜 그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남자의 어두워진 얼굴빛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남자는 말수가 차츰 줄어들더니 급기야 급한 약속이 좀 있다며 자리를 떴다. 내심 저녁을 사주길 기대했는데 실망이 컸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맞선 상대는 어땠냐며 물었다. 시큰둥하게 그냥 그랬어.”라고 말한 뒤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었다. 문득 정면의 거울을 보며 아까 그 남자 앞에서 웃었던 웃음을 지어봤다. 그 남자가 나의 웃음 끝에 얼굴색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앞니 사이에 빨간 고춧가루가 끼어 있었다!

 

실화가 아니다. 하지만 일어남직 한 일 아닐까? 이 경우 고춧가루는 옥에 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티의 옥이라고 할 것이다. 옥에 티는 웃음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티의 옥은 웃음으로만 치부하기엔.

 

사진은 부여 무량사에 찍은 극락전 주련 해설 내용 중 하나이다. 우리 말 풀이 극락당에 해당하는 한문 원문은極樂堂으로 써야 한다. 극락당이 건물이기에 집이란 의미의 을 써야 하는 것. 잘못 쓴 은 마땅하다는 의미이다. 옥에 티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내게는 티의 옥으로 보였다.

 

고찰의 주련에 잘못된 해설 내용을 붙이는 것은 여인의 이에 낀 고춧가루를 보는 느낌이 든다. 주련에 대한 매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고찰 전체에 대한 이미지도 떨어뜨리는 것. 차라리 붙이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련의 내용은 정확히 모르지만, 왠지 모를 신비감이라도 간직하게 말이다. 과도한 생각일까?

 

문제가 된 을 자세히 살펴보자.

 

은 밭(: 밭 전)과 밭이 서로 맞닥뜨리고 있다는 의미이다. 은 음()을 담당한다. 당할 당.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應當(응당), 該當(해당) 등을 들 수 있겠다.


(흙 토)(숭상할 상)의 합자이다. 토석의 기반 위에 높고 크게 지은 중심 건물이란 의미이다. 집 당. 높고 큰 중심 건물이란 의미에서 연역하여 당당하다란 의미로도 사용한다. 당당할 당.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堂上(당상), 堂堂(당당) 등을 들 수 있겠다.

 

서양 건축 문화유산과 달리 우리 건축 문화유산에는 기록물이 많다. 건물마다 붙어있는 현판과 주련이 그것. 현판과 주련은 건물과 일체를 이루는 기록물이라 그 내용 이해는 건물 감상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 기록물을 읽지 않고 건물만 감상하는 것은 맨살을 만지는 것이 아니라 옷 입힌 살을 만지는 것과 같다.

 

그런데 문제는 현판과 주련이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다는 점. 한글로 번역된 것을 붙여놓고 읽는 것도 좋겠지만 원문 그대로를 보는 것이 더 좋은 감상법일 터이다. 얼마간의 노력을 기울여 한문을 익히고 우리 건축 문화유산을 제대로 감상하는 것, 필요한 일 아닐까?

 

아쉬움을 표했던 주련의 본모습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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