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에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하고 오늘 할 일은 끝났구나 릴렉스 하고 있었는데... , 너무 감사합니다. 어렸을 때 제가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었는데, 영화 공부할 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그 말을 하셨던 분이 누구였냐면... 책에서 읽은 거였지만. 그 말은 우리의 위대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말이었습니다. (관객 기립박수) 일단 제가 학교에서 마티의 영화를 보면서 공부했던 그런 사람인데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도 너무 영광인데 상을 받을 줄 전혀 몰랐었고요. 저의 영화를 아직 미국의 관객들이나 사람들이 모를 때 항상 제 영화를 리스트에 뽑고 좋아했던 우리 쿠엔틴 형님이 계신데 정말 사랑합니다. 쿠엔틴 아이 러브 유. 그리고 같이 후보에 오른 우리 토드나 샘이나 제가 너무나 존경하는 멋진 감독들인데 이 트로피를 정말 오스카측에서 허락한다면 텍사스 전기톱으로 이렇게 다섯 개로 잘라서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상 수상과 함께 그의 수상 소감도 화제다. 유머와 위트 그리고 감동이 있어서다. 자신의 감독상 수상 기쁨을 홀로 누리지 않고 함께 경쟁했던 감독들과 나누면서 감동을 이끌어내는 봉감독의 수상 소감은 그것을 지켜보는 많은 이들을 감동의 물결에 젖게 했다. 그가 감독상에서 언급한 마지막 멘트도 많은 이들을 웃음짓게 했다. 기쁘다는 것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땡큐! 아이 윌 드링크 언틸 넥스트 모닝, 땡큐! (Thank you! I will drink until next morning. Thank you!)"

 

방송 매체에 등장한 한 평론가는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 봉감독에게 스피치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독설과 비아냥 그리고 냉소의 언어에서 유머와 위트 그리고 감동의 언어로 치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유머와 위트 그리고 감동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수용과 배려에서 나오지 않을까? 봉감독과 작업을 함께 했던 배우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한결같이 그의 배려와 수용 태도를 언급한다. 결코 아부성 발언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수용과 배려의 반대는 자기 중심이다. 정치인들의 언어가 독설과 비아냥 그리고 냉소의 울타리에 갇혀 있다는 것은 그들이 수용과 배려보다 자기 중심에 더 쏠려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정치인들은 저 평론가의 말을 깊이 새겨 들어야 할 것 같다.

 

사진은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 - 846)의 「청명야(淸明夜, 청명절 밤에)」란 시이다.   

 

好風朧月清明夜  호풍농월청명야   살랑살랑 봄바람 몽롱한 달빛 청명절 늦은 밤

碧砌紅軒刺史家  벽체홍헌자사가   푸른 섬돌 붉은 난간 자사 거처

獨繞回廊行復歇  독요회랑행부헐   홀로 회랑 서성이며 흥얼거리고

遥聽弦管暗看花  요청현관암간화   아득한 풍악 속 이윽토록 꽃을 보네

 

홀로 조용히 청명절 밤을 보내는 장면을 그렸다. 고고한 사군자(士君子)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목민관의 마음 자세를 그린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둘째구에 등장하는 자사라는 직명(職名) 때문에 후자 해석에 더 무게가 실린다. 백성들은 흔쾌하게 봄밤을 즐겨야 한다. 그러나 목민관은 그것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목민관의 소임이자 기쁨은 백성들이 흔쾌하게 봄밤을 즐기게 하는 것이지, 자신이 그같이 즐기는 것이 아니다. 그럴려면 백성이 흔쾌하게 즐기는 봄밤에도 목민관은 자기 성찰의 고독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이 시의 미덕은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산뜻하게 그렸다는데 있다. 목민관의 고독이나 성찰을 홀로 노래하고 꽃을 감상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 그것. 봉감독이 사용한 유머나 위트와 같다. 그래서 이 시는, 봉감독의 인터뷰나 수상 소감이 청중을 감동케 한 것처럼, 독자에게 청신한 감흥을 준다. 이러한 청신한 감흥은, 봉감독의 유머나 위트가 그의 인격과 관련깊듯, 백거이의 인격과 관련 깊다. 무지한 늙은 노파도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쓰려고 했던 이가 바로 백거이이다. 시어의 정련(精練) 이전에 배려와 수용의 마음이 있었기에 이런 시를 지었다고 말해도 대과(大過)없을 것이다. 사진은 어느 중국식 안마 업소 창문에 붙어있는 것을 찍은 것이다.

 

낯선 한자 서너 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朧은 月(달 월)과 龍(용 룡)의 합자이다. 달빛이 흐릿하다는 뜻이다. 月로 뜻을 표현했다. 龍은 음(룡→롱)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용처럼 달빛이 구름에 가려 흐릿하다는 의미로. 흐릿할 롱. 朧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朦朧(몽롱), 朧月(몽월, 흐린 달) 등을 들 수 있겠다.

 

砌는 石(돌 석)과 切(온통 체)의 합자이다. 섬돌이란 뜻이다. 石은 뜻을, 切은 음을 담당한다. 섬돌 체. 砌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砌階(체계, 섬돌), 砌甓(체벽, 섬돌에 놓은 벽돌) 등을 들 수 있겠다.

 

繞는 糸(실 사)와 堯(요임금 요)의 합자이다. 끈이나 천으로 둘러싼다란 의미이다. 糸로 뜻을, 堯로 음을 표현했다. 두를 요. 繞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繞帶(요대), 環繞(환요, 빙 둘러 에워 쌈) 등을 들 수 있겠다.

 

遙는  辶(걸을 착)과 䍃(항아리 요)의 합자이다. 거리가 멀어 왕래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辶으로 뜻을 표현했다. 䍃는 음을 담당한다. 멀 요. 遙가 들어간 에는 무엇이 있을까? 遙遠(요원), 逍遙(소요)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식에서 투자 배급을 담당한 CJ측의 이미경씨가 수상 소감을 말한 것은 그다지 적절하지 못했다는 평들이 있다. CJ측이『기생충』의 수상에 있어 든든한 뒷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서 그쳤어야 했다는 것이다. 투자 배급 관계자가 영화인들의 축제장에까지 나와 수상 소감을 밝힌 것은 그다지 좋은 모습이 아니라며 봉감독이나 주연인 송강호가 수상 소감을 말했으면 좋았겠다고 했다. 수상식을 보면서 이미경씨의 수상 소감이 뭔가 어색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전문가들의 평을 듣고 모호했던 생각의 정체를 알게 됐다. 만일 이미경씨가 봉감독이나 송강호에게 소감 언급을 양보했다면 그의 절제된 언행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을 것 같다. 이미경씨는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했다. 그러나 그 말은 하지 않으니만 못했다. 좋은 말에는 유머와 위트도 필요하지만 절제―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 까지 포함하는―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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