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 힐은 프랑스 식민지 시대 와인 저장소로 개발된 곳이다. 고온다습한 저지대에서 와인이 상하자 저온소습한 이곳에 와인 저장소와 휴양 시설을 건립한 것. 특출한 운송 시설이 없던 시절, 해발 1,500 m 되는 고지대에 와인 저장소와 휴양 시설을 만들었으니, 이 공사에 동원된 베트남 사람들이 혹심한 고생을 했을 것은 불문가지다. 그래서 통일이 이뤄졌을 때 한동안 이곳엔 파괴 광풍이 불었다 한다. 그럴만도 하지 않은가! 그러다 식민지 시대의 유산을 남겨놓는 것도 역사적 의미가 있다 판단하여 중지했다고 한다. 바나는 베트남어로 '신성한 여인'이란 뜻이라고 한다(힐은 영어로, '언덕, 산'이란 뜻). 신성은 범상(凡常)을 뛰어넘을 때 가치가 있다. 식민지 유산을 과감히 품은 것은 산 이름에 걸맞은 조치였다고 할 만한다. 

 

 이곳에 와인 저장소 겸 휴양 시설을 만든 프랑스 식민지 관리들은 중심지에 성당도 지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지만, 당시는 그게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종교와 무력을 앞세워 식민지를 개척했으니, 휴양 시설 중심지에 성당을 짓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이제 베트남 사람들은 성당 위 바나 힐 정상에 불교 사원을 세웠다. 린퐁 티엔투 사원이다. 베트남인 대다수가 불교 신자인 점을 생각하면 성당 위에 이 사원을 세운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저들 식민 제국주의 정신의 총아인 카톨릭을 자신들의 종교인 불교로 제압하겠다는 의지 아니겠는가.

 

 사진은 린퐁 티엔투 사원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세워진 주문(柱文, 기둥에 새긴 글)중 하나이다.

 

 法有萬殊正道同歸應有八(법유만수정도동귀응유필) - 불법엔 만갈래 길이 있으나 그 모두는 정도로 귀결되나니, 여덟가지를 지켜야 한다.

 

 여기 8가지는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념(正念), 정정진(正精進), 정정(正定)이다. 불교 수행에 관한 내용이다. 위 문구를 굳이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불교 수행에 관한 문구이지만 베트남과 제국주의 세력(프랑스와 미국)과의 관계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제국주의 세력이 베트남을 종속시키거나 종속시키려 그토록 애를 썼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고 베트남은 통일된 독립을 되찾았으니, 이게 바로 사필귀정 아니겠는가 싶은 것이다.

 

낯선 殊와 應, 두 자만 자세히 살펴보자.

 

殊는 歹(死의 약자, 죽을 사)와 朱(붉을 주)의 합자이다. 목이 잘려 죽었다는 의미이다. 歹로 뜻을 표현했다. 朱는 음(주→수)을 나타내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목이 잘려 죽으면 붉은 피가 땅을 흥건하게 적신다는 의미로. 죽을 수. 지금은 본뜻에서 연역된 '다르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한다. 다를 수. 殊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特殊(특수), 殊常(수상) 등을 들 수 있겠다.

 

應은 心(마음 심)과 雁(기러기 안)의 합자이다. 뜻이 모아진다는 의미이다. 心으로 의미를 표현했다. 雁은 음(안→응)을 담당햐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흐트러짐없이 무리지어 나르는 기러기처럼 뜻이 모아졌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합할(응할) 응. 應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應接(응접), 相應(상응)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바나 힐은, 현재 유원지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식민지 시절 유산을 활용하여 돈을 벌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것처럼 바나 힐 정상에 불교 사원을 지은 것을 보면 단순히 돈만을 위해 이곳을 유원지로 만든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먼 후일 베트남이 더 이상 외부 재원(財源)에 목마르지 않을 때 이 식민지 시절 휴양 시설들은 철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이 진정한 사필귀정 아닐까? 린퐁 티엔투 사원 종각에서 찍은 바나힐 전경 사진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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