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변한 걸 보니, 죽을 날이 멀지 않았구먼.”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두고 농으로 하는 말이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인데 변했다는 것은 변고가 있을 징조고 변고의 마지막은 죽음이니, 농이긴 하지만 일정 부분 일리가 있는 말이에요. 확실히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죠. 그러나 예외 없는 법칙 없다고 그런 일반적 인식을 깨트리는 사람도 있죠.

  

조선민족의 생존을 유지하자면, 강도 일본을 쫓아내어야 할 것이며, 강도 일본을 쫓아내려면 오직 혁명으로써 할 뿐이니, 혁명이 아니고는 강도 일본을 쫓아낼 방법이 없는 바이다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끊임없는 폭력 암살 파괴 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수탈하지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일제 강점기하 유명한 독립 선언이 두 개 있어요. 기미독립선언조선혁명선언. 기미독립선언이 비폭력 무저항 정신에 기초를 둔 선언이라면 조선혁명선언은 이와 대척점에 있는 선언이죠. 상기 인용문은 조선혁명선언의 일부예요. 폭력과 저항이 왜 독립을 위해 필요한지를 극명하게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조선혁명선언기미독립선언과 다른 점은 독립을 넘어 혁명까지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에요. 독립 이후까지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죠. 독립 이후의 조선은 만민이 평등한,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어요. 비록 일제강점기 하라 해도 왕조 체제를 벗어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혁명적인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어요

  

이런 혁명적인 발상을 한 사람은 바로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예요. 그가 성균관 박사를 지냈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죠. 비록 그가 경술국치(1910) 전에 중국으로 망명하여 당시 중국을 휩쓸던 여러 신사조를 접했으리라는 것을 전제한다 해도 말이죠. 그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일반 인식을 깬 초인(超人)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사진은 단재 신채호가 북경에서 발행한 잡지천고(天鼓)에 실은 시예요(사진은 단재 생가에서 찍었어요). 천고(天鼓)조선혁명선언(1923) 두 해 전에 한문으로 발간된 잡지로, 항일 투쟁에 있어 중국과의 연합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조선과 중국 두 나라의 독자를 겨냥하여 한문으로 발간된 잡지예요. 오래 발간되지는 못했어요(7호로 종간). 

  

천고송     하늘 북을 노래하다

  

吾知鼓天鼓者 오지고천고자    나는 아네, 하늘 북 치는 사람

其能기능애이노의    능히 슬프게도 분노케도 하지

哀聲悲怒聲壯 애성비노성장    슬픈 소린 구슬프고 노한 소린 장엄하여

二千萬人起 환이천만인기    이천만 동포를 큰 소리로 일깨우지

然決死心 내의연결사심    의연히 나라위해 죽을 결심케 하고

光祖宗復疆土 광조종복강토    조상을 빛내고 강토를 되찾게 하네

取盡夷島血來 취진이도혈래    섬 오랑캐 피 깡그리 긁어모아

於我天鼓 기흔어아천고    우리 하늘 북에 바르려 하지

  

북경에는 모종신고(暮鐘晨鼓)라 하여 아침에는 북소리로 새벽을 깨우고 저녁에는 종소리로 하루를 마감하는 의식이 있었어요. 단재는 오랫동안 북경에 머물렀기에 이 소리에 익숙했을 거예요. 하여 새벽을 깨우는 장엄한 북소리에서 이 시를 착상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단재는 조선 민중의 항일 의식을 일깨우는 고수가 되기를 자임하고 있어요. 잡지 천고(天鼓)는 그 고수가 때려 낸 북소리인 셈이죠. 이 시에서 주목할 것은 마지막 두 구예요. 이 구는 의례적인 적개심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무장 투쟁 의지를 표현한 것이거든요.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두 해 후에 작성된 조선혁명선언이죠. 다소 견강부회한 생각이지만 이 시의 여섯 째 구에는 그가 조선혁명선언에서 말했던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수탈하지 못하는 이상적 조선이 은연중 깔려있다고 보여요. 이 시를 단순히 항일 의식을 고취한 시로 보는 건 단견이고, 그의 의식 발전의 최고점이 발화된 시라고 보는 것이 정견일 듯싶어요.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볼까요?

  

는 북을 치는 모습을 그린 거예요. 는 북의 장식물, 는 북, 는 북 받침대, 는 손에 북채를 든 모습을 그린 거예요. 북 고.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鼓動(고동), 鼓吹(고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입 구)(옷 의)의 합자예요. 슬피 운다는 뜻이에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해요.

  

(마음 심)(종 노)의 합자예요. 화가 났다는 뜻이에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종은 늘 불만이 있기에 화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요. 성낼 노.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憤怒(분노), 怒發大發(노발대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입 구)(클 환)의 합자예요. 큰 소리로 부르다란 뜻이에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해요. 부를 환.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喚起(환기), 喚呼(환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불땔 찬)의 약자와 (술 유)(나눌 분)의 합자예요. 조왕신에게 희생(犧牲)의 피와 술을 올리며 제를 지낸다는 의미예요. 혹은 흔종(釁鐘, 새로 주조한 종의 균열 부분을 희생의 피를 칠해 메꾸는 일) 의식을 치르며 제를 지낸다는 의미로도 봐요. 피칠할 흔.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釁鐘(흔종), 釁端(흔단, 틈이 생기는 실마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기념식사에서 약산 김원봉을 언급했다가 보수층의 뭇매를 맞았죠. 비록 항일 운동의 한 주역이요 국군의 모태가 되는 광복군의 지도자였지만 월북한 인물이었기에 현충원에서 거론하기에는 부적절한 인물이었다는 것이 주 이유였어요.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동족상잔을 겪었기에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계열의 항일 지도자에 대해서는 평가가 극히 박한 것이 우리 현실이죠. 이는 단재 신채호에게서도 마찬가지예요. 그가 복권된 것은 1990년이 넘어서예요. 그간은 그가 이승만을 적대시했던 인물이고 사회주의 성향을 띈 무정부주의자였다는 점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죠. 어쩌면 지금도 온전히 복권된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이들에 대한 온전한 평가는 통일 이후를 기다려야 할 거예요. 그 날을 위해 단재는 지하에서 여전히 천고를 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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