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은퇴자들이 독서를 취미로 꼽았다. 좀 더 다양한.”

 

언젠가 읽었던 신문 기사의 한 대목이에요. 은퇴자들의 취미가 너무 획일적이며 비생산적이라고 비판하는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이 기사를 접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옛 사대부들이 이 말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전통 사회의 지식인이었던 사대부의 일은 출사(出仕)와 독서였죠. 둘은 상보 관계를 이뤘어요. 독서를 해야 출사할 수 있었고 출사 후 역량을 발휘하려면 독서가 뒷받침되어야 했기 때문이죠.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사가독서(賜暇讀書)는 이를 방증하죠. 이런 사대부들에게 독서의 가치를 폄훼하는 듯한 저 말은 틀림없이 공분을 샀을 거예요.

 

하지만 저 기사를 쓴 분이 비판한 독서는 전통 사회의 지식인들이 했던 독서와는 다른 독서일거예요. 생산적 독서이기 보다는 비생산적 독서를 염두에 두고 비판한 것이라 생각해요. 그저 소일거리 시간 때우기 식의 독서 말이지요. 공분하는 옛 사대부들에게 저간의 사정을 말한다면 화를 풀 것 같아요. “그렇구먼. 그런 독서는 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지.” 하지 않을까요?

 

독서와 짝을 이룬 것이 출사라고 했는데, 출사의 핵심은 문장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이었어요. 보국(輔國)할 수 있는 문장을 쓰는 거였지요. 여기 문장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문학 관련 심미적 글이 아니고 전고와 설득력이 겸비된 실용적인 글이에요. 이런 문장보국의 대표적인 글은 외교 관련 문서지요. 삼국사기』「열전강수(强首) 편을 보면 문무왕이 강수의 업적을 치하하며 전쟁에서 실제 전투를 했던 장수 못지않은 공이 있다고 평가하는 내용이 나와요. 그가 작성했던 외교 문서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지요. 강수의 경우가 문장보국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어요.

 

사진은 정사문웅진세명 만고처사강성청(精舍文雄振世名 萬古處士講聲淸)’이라고 읽어요. ‘정사(학문을 연마하는 곳, 여기서는 조정의 의미로 봐도 무방할 듯)의 문호 되어선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만고의 처사되니 강경 소리 청아하네라고 풀이해요. 앞은 출사하여 문명을 날리는 모습을, 뒤는 은둔 수양하며 독서하는 모습을 그렸어요. 얼핏 보면 양자의 다른 면모를 부각시킨 것 같지만 실제는 사대부의 둘이면서 하나인 모습을 그렸어요. 출사해서는 문장보국으로 문명을 날리고, 퇴사해서는 수양 독서하는 사대부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린 것이지요.

 

은퇴한 분들이 옛 사대부의 전통을 되살려 생산적인 독서를 한다면 본인도 좋고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봐요.

  

  

낯선 자를 좀 자세히 살펴볼까요?

 

(새 추)와 厷(팔뚝 굉)의 합자예요. 厷에는 힘이 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요. 암컷에 비해 힘이 센 수컷 새란 뜻이에요. 수컷 웅. 뛰어나다란 의미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뛰어날 웅.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雌雄(자웅), 雄壯(웅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의 변형, 손 수)(의 약자, 벼락 진)의 합자예요. 타인을 구해준다는 의미에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타인을 구해주려면 벼락이 치듯 용기와 힘을 내야 가능하다는 의미로요. 구할 진. 떨치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타인을 구하여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란 의미로요. 떨칠진.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不振(부진), 振興(진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뒤져올 치)(안석 궤)(범 호)의 합자예요. 두 다리를 오므리고 안석에 앉는다는 뜻이에요. 는 음을 담당해요(). 머무를 처. 곳이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앉는 이란 뜻으로요. 곳 처.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處理(처리), 處所(처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말씀 언)(얽을 구)의 합자예요. 화해시킨다는 의미예요. 화해시킬 때는 좋은 말이 우선이기에 으로 뜻을 삼았어요. 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튼튼하게 얽어놓은 목재처럼 둘 사이를 튼실하게 만드는 것이 화해시키는 것이란 의미로요. 화할 강. ()하다란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강할 강.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講解(강해), 講和(강화) 등을 들 수 있겠네요.

 

(귀 이)磬(경쇠 경) 약자의 합자예요. 소리라는 뜻이에요. 소리는 귀에 가장 민감하게 접수되기에 로 뜻을 표현했어요. 磬의 약자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귀에 잘 포착되는 소리는 경쇠같이 크고 맑은 소리라는 의미로요. 소리 성.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音聲(음성), 聲量(성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사진은 한 식당에서 찍었는데 식당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에요(게다가 대구 내용도 약간 미흡하고 어휘나 문법도 어색해요). 타산지석으로 사용하라고 걸어놓은 것은 아닐 테고. 식당 주인 분께 미운 소리 하려다, 그만 뒀어요. 괜스레 주인 마음 상하게 할까 봐서요. 한자() 문맹이 많아지다 보니 이따금 장소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액자를 걸어놓는 경우를 봐요.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바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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