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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페소아를 만나다 - 나를 묻는 밤의 독서
김운하 지음 / 필로소픽 / 2016년 9월
평점 :
김운하 소설가의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읽었던 책의 호흡을 다시 더 깊게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나와는 또 다른 관점으로 영화를 보고 감상한 사람들과 생각을 교류하고 싶어진다. 책도 마찬가지다.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비롯한 이 책에 언급된 작품들은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무게가 느껴지는 고전들이다. 김운하 소설가의 글은 단순한 감상에 그치지 않고, 깊은 호흡으로 책을 읽는 것처럼 천천히 깊이 다시 책 속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혼자서 힘겹게 읽어냈던 부분들도, 마법같이 되살려내며 책의 특정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다시 되살려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렇게 긴 이야기들을 방금 내가 다시 또 읽어낸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빅벤이 오후 3시 30분을 알리는 종을 울리자, 그 순간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던 건너편 집 노부인이 창가에서 물러났다. 클라리사는 이상하게도 그 장면에 감동을 받는다. 종소리의 여운이 아래로 아래로, 일상적인 것들 한가운데로 스며들어 그 순간을 엄숙하게 만들고 있다." (본문 263쪽)
새벽 2시,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소설의 어떤 부분을 누군가 찬찬히 읽어주는 느낌이다. 그 느낌. 그 호흡. 그것은 김운하라는 소설가가 지닌, 오랜 시간 동안 책을 정독하고 철학적 의미까지 깊이 되짚어내는 시간들의 정수가 책의 문장마다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새벽2시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절망할 게 아니라, 누군가 꼭꼭 씹어, 부드럽게 읊어주는 명작들의 울림에 귀를 기울이면 되는 것이다. 이 책을 펼쳐서, 댈러웨이 부인의 길을 다시 따라간다. 꽃을 사러 가는 그녀의 경쾌한 걸음을, 하지만 그 경쾌함 뒤에 감추어진 삶의 그늘을. 있는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