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여지도 1 : 중구편 대전여지도 시리즈 1
이용원 글.사진 / 월간토마토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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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였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초등학교 5학년까지 살았던 아파트가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른 동이 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라, 그 일대가 죄다 재개발 구역에 들어갔다. 순식간에 여섯살 무렵부터 열두 살이 될 무렵까지 헤집고 다니던 동네가 사라지게 되었다.

뭉개지고 있는 아파트와 그 사이의 길, 화단들, 작은 구멍가게들...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설계된 아파트단지일 뿐이라 해도,

그곳에서 내 소중한 유년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하잘것없는 놀이터, 시민공원에 서 있던 커다란 나무, 벤치 하나 조그맣던 내가 젊은 엄마 아빠와 친구들, 오빠, 옆집 친구 아랫집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공간들이 그곳에 모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대전여지도1>은

우리 주변의 모든 길들이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다. 비록 이 책에 담겨진 대전 마을들이 내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라 해도, 사진에 담긴 골목길 풍경과 마을에 얽힌 옛 이야기들은 매 마음속에 남아 있는 추억 어린 장소들을 불러낸다. 그리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 우연한 길과 풍경들이 소소한 아름다움으로 늘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는 걸.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 길 한쪽에서 우리 모두는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한다.

 

"주택은 차지한 면적에서 최대한 창의성을 발휘해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아기자기한 그 공간 활용 지혜에 입이 떡 벌어진다. 미니어처같이 귀엽고, 비밀 벙커가 떠오르는 집도 있다. 이쪽 골목에서 보이는 저쪽 끝 집이 포근하다. 다양한 주택 형태가 무척 인상적이다. 아파트나 주택 업자가 일률적으로 지은 주택단지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획일화된 가치와 삶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숨통을 터 주는 느낌이다.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삶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평온한 휴식처일 수도 있는 곳을 감상하듯 바라보는 것이 민망했지만, 삶의 색깔과 향기를 담고 있는 공간은 떨칠 수 없는 유혹으로 계속 말을 걸었다. 회색빛 콘트리트인데 따뜻하다. (본문 40~41쪽)" 

 

솔밭마을에서 맞닥뜨린 전형적인 산동네 골목길에서 꼬불꼬불 이어지는 골목은 한쪽에는 하늘이, 한쪽이는 담장이, 그리고 저마다 개성적으로 들어앉은 주택의 모양이 보는 이로 하여금 신선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할아버지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나니 어린 시절 선망의 대상이었던 이층집이 많았다. 빨간 벽돌로 외장을 꾸민 것이 한없이 정성스럽다. 마을을 격자로 나누는 도로는 널찍했고 그 사이사이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길도 한없이 정겨웠다. 골목을 포장한 블록은 사람 통행이 드물어 거무튀튀튀한 물때가 끼어 칙칙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웃집 담장과 맞물려 만들어 놓은 골목엔 벌써 그리움이 가득했다.(본문 217쪽)"

 

재개발을 앞둔 대전 중구 대흥 3동을 저자는 돌아다니며, 텅 빈 도시의 인상에서 <28일 후>라는 영화를 떠올힌다. 고풍스러운 오랜 주택들은 꽤 오랜 세월을 품고 있지만 개발 업자들에게 그 세월이란 그닥 중요한 게 아니다. 그 과정에서 1920년대 후반 일제 강점기에 지은, 문화재로 등록된 '뾰족집' 역시 무사할 수가 없었는데(이동하여 복원하긴 하였으나 본래의 모습이 많이 훼손되었다.)나마 그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어 반갑기도 하다. 목련이 활짝 핀 사라지기 직전, 빈 집으로 가득한 마을의 풍경이란 한없이 쓸쓸하다. 혹여, 이 동네에 살았던 사람들이 이 책에서 이 사진들을 만난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싶다.

 

대전여지도 시리즈 가운데 대전 중구를 대상으로 한 이 책은, 1부 골목에서 만나다, 2부 산자락에 기댄 마을, 3부 원도심의 기억 총 3부로 나뉘어 있다. 보문산 자락을 끼고 있는 중구는 대전이라는 도시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원도심을 중심으로 한 마을들에 대한 기록, 보문산 자락 자연마을의 풍취, 골목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가파른 동네들..... 골목을 돌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듯 이 책의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주하는 우연한 풍경들은 아파트단지와 원룸촌, 일정하게 구획되어진 무미건조한 공간에 지루해진 우리의 눈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도시 곳곳에서 마주한 마을의 우연한 풍경들, 그 풍경들을 밟고 가는 내공 깊은 이용원 저자의 글과 사진들이 찬찬히 내가 지금 사는 곳도 함께 돌아보게 만든다.

 

이 책은 대전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지금 현재 대한민국을 사는 이들이 살고 있는, 살아갈, 혹은 잃어버린 그 모든 마을을 담고 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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