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시공사 헤밍웨이 선집 시리즈 2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권진아 옮김 / 시공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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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자 관계 복잡한 예술가들을 싫어한다. 괜히 자기 잘난 맛에 여러 여자들 괴롭게 만드는 것 같아서이다. 대표적으로 피카소와 헤밍웨이. 그래서 헤밍웨이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뭐랄까. 헤밍웨이는 요즘 가십의 대상이 되는 유명 연예인들처럼 그 당시 무척 잘 나가는 인간들 중의 하나였고 그의 작품뿐만이 아니라 삶도 화려하고, 그 사람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 된다. 뭐 그 정도면 작가치고 잘생겼고, 화려하게 살았으니까. 죽음조차도 나름 인상적이게. 

이런 그에 대한 편견, 굳이 책을 다 읽지 않아도 <노인과 바다>만 읽어도 그를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생각 때문에 굳이 그의 작품을 찾아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읽으며 진짜 그의 모습을 본다. 젊은 시절의 그. 물론 이 책은 소설이고 허구이지만 실제로 스페인에 투우 경기를 보러 간 경험이 담긴 소설이며 두 번째 아내가 될 폴린 파이퍼가 그 여행을 함께했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소설에 담긴 작가의 초상을 확인할 수 있다.

 

참, 초반부터 횡설수설이다.

 

1차 대전이 끝난 후, 주인공인 제이크는 파리에 머물고 있다. 제이크는 여러 친구들과 스페인에 여행을 간다. 거기서 낚시도 하고 투우도 구경한다. 제이크의 친구로는 빌, 마이크, 브렛, 콘이 등장한다. 빌은 작가이자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콘은 유대인이며 내성적이고 진지한 타입의 작가이다. 마이크는 전쟁에 참전한 영국인으로 부자였으나 파산해서 떠돌고 있으며 브렛과 약혼했다. 브렛은 영국 귀족의 아내였으나, 불행한 결혼 생활 끝에 이혼했다. 매우 아름다운 여자로 많은 남자들과 자유롭게 사랑을 나누며 과거의 상처 때문인지 스스로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며 옛날에 연인이었으나 지금은 좋은 이성친구인 제이크에게 의지한다. 제이크는 전쟁 때문에 성 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소설에서 암시된다.

 

소설은 파리에서의 자유분방한, 늘 술에 취해 세느강 주변 카페를 전전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비춰준다. 그 와중에 아름다운 브렛을 본 콘이 그녀에게 한눈에 반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뒤로 브렛은 별 생각 없이 콘과 함께 산세바스티안에 여행을 다녀오는데 브렛은 그렇다고 콘에게 애정을 느끼는 게 아니다. 콘은 브렛을 진지하게 대하고, 애정을 갈구하며 그녀의 주변을 떠돌지만 브렛은 콘에게 시큰둥하다. 그런 와중 제이크는 빌과 함께 스페인으로 먼저 낚시를 하러 떠나고 팜플로나에서 투우를 보기 위해 마이크, 브렛, 콘이 합류하게 된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파리의 밤 풍경, 스페인 시골 풍경, 팜플로나의 투우 장면 등이 정말 생생하게 다가왔다. 헤밍웨이의 문장은 도무지 지루해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는 절대로 뻔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소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순간들에 대한 간결한 묘사에 충실하다. 아마 그건 그의 소설이 머릿속이 아닌 순수한 경험에 바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이 독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읽으며 마치 실화를, 과거에 있었을 헤밍웨이의 삶의 순간을 행복하게 추측하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흔히 미국인이고 백인이면 얼마나 여행하는 게 편할까 부러워지기도 하는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제이크가 보이는 여유로운 여행 장면들은 정말이지 부러움을 자아낸다. 스페인 시골에서 스페인 농부들과 농을 하며 포도주를 함께 마시고, 깊은 숲에서 커다란 송어를 잡고 낮잠에 드는 장면 등, 그냥 막 헤밍웨이가 부러워지는 거다. 나도 저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저렇게 여행했으면 좋겠다!!! ㅋㅋ

 

게다가 실제로 헤밍웨이는 첫번째 부인 해들리, 그리고 그녀의 친구인 폴린과 투우를 보러 갔다가 콘의 실제 인물 같은 한 남자와 질투로 싸움까지 했었다고 하니 실제 사건과 소설을 오버랩시켜서 읽으면 더욱 흥미진진하다. 소설에서는 끝까지 우정으로 브렛을 대하지만 헤밍웨이는 이혼녀였던 폴린과 결혼한다.

 

어떻게 보면 헤밍웨이의 작품들 중에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가 대단한 걸작으로 추앙받지 못하는 건 이 소설이 청춘 일기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 끝, 젊은이들의 여행, 얽히고 섥힌 애정 관계. 네 명의 남자와 아름다운 한 여자.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매력적이다.

뭐랄까 송어처럼 파닥파닥, 뛰는 느낌? 이제 막 20대 초반이 된 한 여행작가의 생생한 여행기 같은 느낌이 이 소설에 빠져들게 만든다. 지금이야 고전이지만 그 당시에 파격적인 젊은 작가의 소설이었다. 대중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출판사에서 많이 편집했음에도 이 소설에 담긴 실제의 은어와 저속어들 때문에 엄마한테 욕을 얻어먹었다니 알만 하다.

 

우리는 계속 걸어 섬을 한 바퀴 돌았다. 강은 어두웠고 바토무슈가 불을 환히 밝힌 채 조용하면서도 빠르게 미끄러져 다리 아래로 사라졌다. 강 아래쪽에는 노트르담이 밤하늘을 배경으로 웅그리고 있었다. 베튄 선창에서 나무 인도교를 건너 센강 왼쪽 제방으로 넘어가다가, 우리는 다리 위에서 걸음을 멈추고 강 아래 노트르담을 바라보았다. 다리 위에 서서 보니 어두운 섬 위에 집들이 하늘을 배경으로 높이 솟아 있었고 나무들은 그림자처럼 보였다.

 "장엄하군." 빌이 말했다. "돌아오니 좋구나."

우리는 다리의 나무 난간에 기대어 상류 큰 다리들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발아래에는 검은 물이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다. 물살은 다리 난간에 부딪혀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한쌍의 남녀가 우리 옆을 지나갔다. 그들은 서로 꼭 안은 채 걸어가고 있었다. (115쪽)

 

 

그리고 투우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이 소설에서 드러난다. 솔직히 투우를 직접 보지 않은 이상, 투우는 잔인한 스포츠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런데 헤밍웨이는 죽음의 위협에도 끝까지 의연한 인간의 모습, 그것을 극복하고 정면대결하는 힘, 비극적인 예술작품을 대하듯 투우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그는 다시 미소 지었다. 그는 항상 투우가 우리 둘 사이의 굉장히 특별한 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미소를 지었다. 상당히 충격적이지만 굉장히 깊은 비밀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제삼자가 보면 그 비밀에 뭔가 외설스러운 데라도 있는 것처럼 항상 웃어 보였다. 하지만 우린 그것을 이해했다.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에게는 그 비밀을 밝혀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189쪽)

 

결국 브렛은 19살 투우사와 사랑에 빠지고, 거기에 분노한 콘은 투우사를 두들겨 패고 팜플로나를 떠난다.

 

이 소설의 처음 제목은 <축제>였다고 한다. 죽음과의 유희가 벌어지는 한바탕 축제를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소들이 질주하는 골목길처럼 빠르게 진행도니다. 끝난 뒤에 탈진 상태가 찾아오는 축제 그 자체와 다르지 않다. 지루하고, 따분한 틀에 박힌 일상에 빠져, 안전한 사랑에만 길들여진 우리에게 필요한 위험하고, 신선한 소설이다. 스페인에 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스페인의 정수를 목격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소설은 그런 이들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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