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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나나 - 2010 제18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형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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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서의 두 소설집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 <자정의 픽션>을 읽으면서 작가가 꽤나 심각한 이야기를 심각하지 않은 방식으로 말하고 인문학적, 혹은 사회과학적으로 정제된 논리를 서사구조에 깔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소설 <새벽의 나나>에서 작가 박형서는 자신의 글쓰기 스타일에 변화를 주고 있는 듯하다. 이를테면 리얼리즘이 한층 강화되었다고나 할까? 하기야 <새벽의 나나>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기조를 두고 '리얼리즘'이라는 한 용어로 규정짓기는 어렵다. 그래서 굳이 진단을 하자면 꿈과 전생의 인연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점으로 미루어 일종의 환상의 리얼리즘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싶다. 

이야기는 마흔살의 한국인 레오가 7년동안의 결혼생활을 접고는 태국을 다시 찾아 휘황한 네온 불빛 아래 술과 마약과 매매춘이 난무하는 방콕의 거리에서 매춘부(작가는 굳이 '매춘부'라는 그럴듯한 용어보다는 같은 의미를 지니지만 보다 노골적이고 혐오스런 용어인 '창녀'를 사용한다. 이는 주요 등장인물들을 비하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이리라) 라노를 수소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과거 그 일대에서 겪은 수이 식스틴의 많은 인물들과의 진한 인연을 추억하는 것으로 전개된다. 태국 방콕의 한 거리 수쿰빗 소이 포(우리식으로 하면 '종로3가' 정도 될 터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네 현실 역시 3~4십년전 지금의 허리우드 극장 근처 그리고 파고다공원 뒤편 종로3가 일대가 이른바 '종3'이라 불리는 유명한 집창촌이었고 청량리역 주변, 미아리 길음동 일대 등이 '588' 식으로 불리는 집창촌 이었음이 상기된다), 일명 '나나' 거리에서 레오는 유명한 매춘부로 이름을 드날리고 있다는 라노를 찾으면서 모두 세번에 걸친 나나거리에서의 경험과 사랑 아닌 사랑을 추억, 반추하고 있다. 그 자신이 지금 파탄난 결혼생활에서 도망쳐 나온 실패자이듯 과거 그가 관계를 맺은 소이 식스틴의 파란만장한 인물군상 역시 실패자들이었음을 전편에 걸쳐 보여주는 것이다. 

처음 레오는 스물다섯의 청년으로 아프리카행 여행을 목적으로 중간 환승 기착지인 태국에 며칠 머물게 되면서 우연찮게 국수 한 그릇을 먹는 노점에서 소이 식스틴 거리의 유명한 창녀 플로이를 만나게 되고 몇마디 말을 주고 받는 동안 '필'이 꽂힌다. 다음날 앞날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레오는 무작정 플로이를 찾아가고 그곳 어두침침하고 음침한 분위기의 좁은 플로이의 집에서 '플로이의 식구'가 된다. 리싸, 똠, 아팡, 수진, 욘, 나왈랏 등 창녀, 그리고 커텐 업자였다가 마약상으로 변모한 샨네 가족, 유산으로 먹고 마시고 피우는 생활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우웨 등 하류인생들의 비참하고도 너절한 생활에 동참한다. 본시 레오가 플로이를 찾은 것은 전생에서 부부였을 정도로 자신과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의 끈으로 맺어졌다는 강한 확신이 들어서였고 당연히 플로이가 자신의 여자라고 생각하며 그니의 애정을 갈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소설의 가장 중심된 인물인 플로이는 레오의 이런 강한 열망을 무시한 채 오로지 자신의 매춘생활과 동료 창녀들의 생활에만 관심을 가지고 레오에게 냉랭하게 대한다. 레오는 틈날 때마다 플로이의 애정을 갈구하면서 아프리카행 여행경비를 마치 곶감 빼먹듯 야금야금 사용해가며 플로이네 식구들의 생필품 구입, 군것질 비용, 마약 구입 비용을 전적으로 부담한다.  

레오 자신은 할 일 없이 우웨의 방을 드나들며 동네 남자들과 어울려 마약 흡입, 음주로 일관하며 무위도식의 파탄난 삶을 이어가고 간절한 소망과는 달리 플로이는 여전히 레오의 '사랑'에는 무관심하다. 이런 절망적인 삶을 이어가던 레오는 급기야 돈이 바닥날 즈음 더 이상의 타락과 방종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귀국한 레오는 새로운 일자리를 얻어 3년정도 일에 열중하지만 소이 식스틴과 플로이의 잔영이 수시로 찾아오는 가운데 뭔가를 잃어버린 듯한 먹먹한 생활을 한다. 그러던 중 대구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잠깐 잃는 가운데, 마치 신기루처럼 소이 식스틴과 플로이가 보이고 급기야 훠이훠이 다시 방콕행을 결정한다. 3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소이 식스틴은 변함이 없다. 여전한 거리 모양새, 여전한 삶들이 기다리고 있는 플로이의 거리....레오는 다시금 3년전 플로이네 생활을 반복한다. 물론 비참한 하류인생들의 삶에 어찌 아무런 변화가 없기야 하겠는가? 누구는 죽어나가고 누구는 삶의 방식을 바꾸고 누구는 더 비참해지고 또 누구는 그런 와중에서도 나이들어 성장하고....하지만 그런 자잘한 변화가 이들의 삶을 전체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한채 꾸역꾸역 삶을 이어가는 것에는 하등의 변화가 없는 것이다. 물론 플로이는 레오를 다시금 식구로 받아들이면서도 예전의 '거리두기'는 계속한다. 

이번에도 레오의 생활 역시 다람쥐 쳇바퀴 돌듯 예전의 그대로이다. 억울하게 죽어나가는 인물들의 비참한 모습을 목격하기도 하고 하류인생들끼리 돈벌이를 두고 아귀다툼하는 모습도 보며 마약과 술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거듭하던 나는 이번에도 3년전과 다름없는 초라한 몰골로 나나거리를 빠져나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다 다시 4년만에 이번에는 플로이의 어이없는 죽음 소식에 급거 방콕으로 날아와 플로이의 장례를 치른다. 지난 4년여동안 소이 식스틴은 독점자본과 외국자본이 밀려들어와 이른바 '재개발'하면서 사실상 해체되어 버리고 창녀들은 주변부로 다시 밀려나 더 비참한 인생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목격하면서 레오는 주저하지 않고 소이 식스틴을 떠난다. 이번에는 자신이 영어를 가르친 어린 소녀 라노가 아마도 나나 일대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할 것임을 예감하면서..... 

이 소설은 레오와 플로이의 인연과 애증을 밑자락으로 하면서 나나 거리의 비참한 하류인생, 비극적 군상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플로이는 그 거리에서 이른바 '큰 언니' 역할을 하는데, 이는 자신을 거두어 준 지아의 후계자 역할이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는 매춘부와 게이들의 사회에서 플로이는 일종의 정신적 지주이자 갈등 조정자이며 삶의 애환을 같이 나누는 상담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로이는 동질의 그들에게 군림하지 않는다. 그저 몸으로 마음으로 모든 걸 감수하고 겪어낼 따름이다. 그들만의 사회에서 플로이는 일종의 '권위'이다. 이런 플로이를 향한 레오의 연정은 플로이로부터 '가식과 허위'로 비난받는다. 레오의 애정어린 시선을 플로이가 감내하지 않고 용납하지 않는 이유는 레오가 단지 국외자로서 일시 머무는 '딴 사람'일 따름이며, 그들과 어울려 살면서도 그들을 '판단하고 가르치려 하는' 제3자일 뿐 결코 그들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플로이는 레오보다 더 진한 삶의 질곡을 겪으면서 그걸 체득하였고 플로이 개인이라기 보다는 소이 식스틴 사회 그 자체인 반면, 레오는 오직 자신의 감정만을 앞세운 개인 레오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레오는 7년의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두번의 플로이 식구되기 생활을 경험하면서 서서히 그걸 깨닫지만 이미 플로이는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하기야 레오가 그런 뒤늦은 깨달음에 도달했다고 해서 플로이가 레오를 '연인'으로 받아들였을 리는 없겠지만.... 

이 소설은 단순히 주인공들의 사랑, 혹은 곡절의 인연을 그리고자 하지 않는다. 태국이라는 개발도상국, 전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매춘과 마약을 탐하는 이지러진 모습,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문어발을 뻗치며 민중의 삶을 갉아먹고 탐식하는 거대자본의 논리를 소이 식스틴의 하류인생의 거친 삶과 변모를 통해 여실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소이 식스틴에 위용도 당당하게 건설되고 있는 호텔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비루한 삶의 환경을 바꿔주리라 기대하며 화제거리로 삼는 소이 식스틴 주민들의 즐거운 표정을 일컬어 "강간범의 씨앗이 자라나는 배를 자랑스럽게 어루만지는 철없는 계집아이 같다"고 암울한 심정을 토로한다. 레오가 두번째로 떠나 다시 플로이의 죽음으로 잠시 방문한 시기에 발견한 소이 식스틴의 변모는 바로 그런 작가의 예측과 진단이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사실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등장하는 많은 창녀--태국의 딸들, 캄보디아의 딸들, 미얀마의 딸들, 그리고 혼혈의 다국적 딸들은 모두 어린 시절 한결같이 남성들, 특히 가까운 친척 남성들로부터 겁탈, 추행, 강간을 당하는 등 성적인 착취와 억압을 겪거나 지독하게도 무지하고 가난한 시골 출신으로서 생존을 위한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한 사정을 지니고 있다. 더구나 이즈음 전 지구적 화두인 세계화로 인한 제3세계 민중의 열악해져가는 삶의 단면들이 여기 소이 식스틴에 고스란히 모여 있는 것이다. 

우리도 그와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동두천 일대를 중심으로 하여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던 주한미군과 연결된 집창촌, 이른바 기생관광으로 이름붙은 일본 관광객을 상대로 한 매춘행위, 그리고 신흥자산가들의 일탈행위를 충족하기 위한 도시 변두리의 매춘 등등 1970년대 산업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외화벌이'에 직간접적으로 동원될 수밖에 없었던 비참한 '누이와 딸들'의 암울한 성적 착취가 횡행하던 시대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사회의 '산업'으로 자리잡은 '성 산업'이 분명 존재하기는 하지만 여성들이 인격 자체를 담보로 자신의 몸을 헐값에 넘겨야 했던 그런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이른바 <영자의 전성시대>로 대표되는 그쪽 방면의 소설문학이 판을 치던 시대가 바로 그런 우리의 현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새벽의 나나>에 등장하는 태국의 그녀들이 남이 아니고 먼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닌듯 느껴지는 것이다.  

작가는 나나 거리의 그녀들을 결코 미화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그녀들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이 처절한 자본의 논리. 암울한 남성 중심의 사회 아래서 당할 수밖에 없는 그녀들의 삶을 지켜보며 그들의 삶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고 나름의 운행법칙이 있으며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이 최악의 상황에 내몰린 그녀들이 자신들만의 희노애락을 나누는 방식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쳐다본다. 그래서 레오의 입을 통해 말한다. 지아의 뒤를 이은 플로이가 그랬듯 이번에는 라노가 역할을 이어받아 소이 식스틴, 나나 거리의 참된 주인이 누구이며 밟혀도 밟혀도 결국은 부는 바람따라 다시 몸을 일으키는 잡초처럼 그녀들의 삶은 끈질기게 계속될 것임을. 

군더더기 별로 없는 빠른 흐름, 전생의 인연과 현실의 삶을 연결시키는 환상적 서사구조, 작가의 체험을 반영한 사실감 넘치는 현장 묘사 등으로 이 소설은 순식간에 읽힌다. 후일담 혹은 가벼운 일상사, 그리고 세태를 반영한 신변잡기, 첨단의 정보통신을 무기로 한 게임식 이야기 등이 난무하는 이즈음의 소설계에 드물게 묵직한 주제를 리얼리즘으로 그려낸 이 작품이야말로 단연 돋보인다 하겠다. '플로이 이야기'인 이 작품에 이어 작가의 '지아 이야기' '라노 이야기'도 기대된다. 만약 3부작이 탄생한다면 그저 장편식의 동일한 이어짐이 아니라 그 방식과 서사구조는 모두 다른 것일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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