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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커 (반양장) -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29
배미주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매트릭스> <배트맨> 시리즈, 그리고 근육질의 아놀드 슈왈제네거나 실베스터 스탤론 같은 헐리우드 액션 스타들이 주로 등장하는  미래도시형 SF영화를 두루 모아 놓은 듯한 청소년소설 <싱커>는 컴퓨터 게임 영상을 보는듯 그저 흘러간다. 한반도의 지하에 세워진 미래도시 시안(도시 이름의 첫 자모인 'ㅅ'과 'ㅇ'은 '서울'의 자모를 차용한 일종의 패러디이리라)과 도시 중심부에서 밀려난 난민촌 메이징 타운 그리고 폐쇄된 인공자연 신아마존을 배경으로 하여 벌어지는 청소년들의 서기 2168년의 모험이야기가 담겨 있다. 

철저히 계획되고 통제된 그리고 첨단의 시설물과 장치들이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제공하는 시안의 의 삶은 그 중심지인 파에타광장을 중심으로 영위되고 있고 오늘 우리 사회의 휘황한 네온불빛과 물질적 풍요를 상징하고 있음이다. 그리고이와 대비되어 묘사되는 이른바 각성제 등이 밀거래되는 난민촌인 메이징타운은 100년전 과거 구시대에 전자제품 유통 중심지였다고 한다. 이 설정은 나중에 시안의 수비대가 물리력을 동반한 진압작전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상세히 묘사되는 바처럼 아마도 지난해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준 '용산참사'를 기억나게 한다. 번영과 물질적 풍요를 대변하는 고층빌딩군을 만들기 위해 서민의 삶을 화염과 군홧발로 짓밟은 용산재개발 현장, 그곳은 전자상가로 유명하지 않은가? 신아마존 역시 그 존재위치가 동강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는 석회동굴군으로 유명한 영월 일대의 자연과 댐 건설 및 보존을 둘러싼 논란의 대표적 장소로 선택된 듯 싶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초국적 제약회사인 바이오옥토퍼스(이 명칭 역시 장수유전자라는 첨단기술을 상징하는 'Bio'에다가  다국적, 초국적이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Octopus' 즉 '문어발 경영'을 암시하는 그 '문어' 혹은 '유해한 세력을 떨치는 조직'이라는 단어를 조합하여 만들어졌다)가 지배하는 지하도시 시안에서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가던 마미, 그리고 다흡, 부건 같은 청소년들이 메이징타운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연하게 각성의 기회를 갖게 되고 이를 통해 단순한 버츄얼 게임이 아닌 싱크(sync, synch)게임에 접속하면서 다양한 경험과 새로운 사실을 깨우치게 된다. 이 게임은 급기야 은밀하게 청소년 사회에 널리 퍼지게 되면서 Syncher들이 급증하고 이들은 동호회 활동을 전개한다. 그런 와중에서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부건이 뛰어난 컴실력과 추리력으로 시안이라는 도시는 음모와 억압의 세력들이 자신의 기득권과 이익유지를 위해 철저히 통제하고 일반 시민들을 단순한 체제순응자로 만들고 있음을 밝혀 나간다.  

한편, 마미 일행은 메이징타운에서 비시민인 쿠게오 등과 접촉하는 동시에 싱커게임을 통한 반려수(자신의 의식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조류, 포유류 등 동물의 신체로 변이되어 그 동물의 의식체계까지 동시에 경험하게 되는 바로 '그 동물'을 말한다. 일종의 살아 움직이는 '아바타'이다) 활동 등을 하는 과정에서 부건의 이복형제이자 공동의 아버지인 장현수 박사와 그의 부인이었던 어머니가 연구하던 역진화 발생기를 완성한 칸을 만나게 된다. 이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인 '칸'의 이름도 그가 몽골계의 유려한 몸매와 인상을 지닌 것으로 묘사되면서 칭기즈 '칸(Khan)'을 연상시킨다. 

마미와 부건 등 주인공 청소년들은 바이오옥토퍼스와 파에타 회장 일당의 음모와 살인 등을 밝혀나가는 동시에 빙하기에서 점차 해빙기로 접어드는 지상의 세계를 소망하게 되는데, 급기야 시안 지배세력의 충실한 하수인들인 정보기관원들 즉 'Men in Black'들에게 활동이 포착되게 되고 체포되어 심문을 받는 등 곡절을 겪으면서 해방을 꿈꾸게 된다. 그러나 시안의 지배세력 또한 만만치는 않을터 급기야 메이징타운에 대한 대대적 진압 소탕 작전이 전개되고 메이징타운 폐허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이때 칸이 재생한 곰쥐떼가 시안에 까지 나타나 시안의 모든 생활을 제어하는 스마트시스템을 작동불능상태로 만들면서 결국 파에타 회장은 파멸하여 죽게 되면서 인공도시의 운명은 몰락 직전에 놓이게 된다. 결국 이들은 알지도 느껴보지도 못한 지상세계에서의 새로운 생활, 생존 가능성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칸의 권유에 따라 지상생활을 결심하고 태양이 비치는 얼음바닥으로 올라간다. '도전을 기다리는 세계'로 첫발을 내딛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늦둥이'로 지칭된다. 시안의 주류세계에서 괄시받고 모욕당하며 그저 한낱 부품 정도로만 취급당하는 철저한 비주류인 셈이다. 오늘의 용어로 하자면 '지진아' 혹은 '열등생' 인 것이다. 한마디로 '문제아들의 반란'이 이야기의 주된 요소이다. 그들이 앞장서 단합하고 대결하여 체제전복까지 만들어 낸다. 그 와중에 탕쯔칭 패거리라는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친 부자이자 권력자의 자식들과의 한 판 대결도 들어있고 싱커들의 신아마존에서의 흥미로운 경험도 영화처럼 펼쳐진다. 당연히 변화를 열망하고 '인간다운 삶'과 '자연과 동화된 삶'을 염원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지배세력과의 투쟁이 묘사되면서 촛불시위를 연상시키는 장면도 등장한다. 소설 그대로 한 편의 한국형 SF영화를 만들면 청소년들이 신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리처드 도킨스를 대표로 하는 현대적 진화론을 소개하기도 하고 구시대와 신개념을 넘나드는 과학적, 첨단기술적 지식을 군데군데 소개한다. 그리고 심지어는 현세인류의 원조인 구석기 크로마뇽인들과 그들이 만들어 놓은 알타미라 동굴벽화도 제시하면서 원시공동체의 삶에 대한 강렬한 희구를 표현한다. 이는 싱커들이 일종의 동류의식 표현으로 사용하는 상징체계인 물고기 그림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초기 기독교도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지하 카타콤에서의 생활을 하는 가운데 흙바닥에 물고기 형상을 그려 소통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 실체를 드러낸다. 열대우림을 상징하는 명칭인 인공자연 신아마존의 설정도 이런 작가의 의도를 더욱 선명하게 한다. 

이 소설은 지금의 청소년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요소를 망라하고 있다. 그들이 통쾌하게 박수치며 '동조'할 수 있겠다. 특히 성적에만 매달리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과 불만으로 보자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소설에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처음 반려수와 일심동체는 불가능할 듯 혼란을 느끼던 주인공들이 갑자기 자유자재로 의식의 혼연일체까지를 너무 쉽게 성취하는 것도 필연성이 부족해 보이고 더 큰 문제는 전체적으로 주인공들이 왜 갑자기 각성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는지에 대해 어리둥절하게 된다. 또한 싱커로서의 모험담은 영화의 장면처럼 구체적이고 길게 서술되는 반면에 나중의 투쟁, 특히 칸의 결단 혹은 곰쥐떼의 시안 습격 등은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나는 사건이며 승리 또한 쉽게 얻어내는 과정은 좀 맥이 빠진다. 그토록 첨단의 기술을 자랑하는 지배세력이 제대로 힘도 한번 발휘하지 못하고 허물어져 버리는 장면들은 시시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첨단과학기술혁명의 미래가 과연 인간에게 안락하고 편안한 삶, 오래 살고 풍요로운 삶만을 가져다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미래예측의 공통적인 염려를 청소년 주인공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관심사로 압축한 가운데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오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갈등에 대해서도 알레고리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왜 권위있는 창비의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청소년들이 잠시 컴퓨터 게임을 멈추고 이 소설을 한번 읽어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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