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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니치 코드
엔리케 호벤 지음, 유혜경 옮김 / 해냄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다빈치코드> 이후 세계적으로 밀어닥친 이른바 '팩션열풍'은 지금도 여전한 듯 하다. 스페인의 카나리아 제도에 있는 천체물리학연구소의 상임연구원으로서 다양한 기고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저자 엔리케 호벤은 자신의 과학적 전문지식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한 편의 과학팩션을 선보이는, 바로 이 작품, <보이니치코드>이다. 

우리에게 케플러의 법칙으로 잘 알려진 과학사상 위대한 인물인 요하네스 케플러와 그와 비견되는 스승 튀코 브라헤를 둘러싼 천문학적 발견의 내용과 브라헤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 그리고 예수회의 탄생과 발전, 그에 얽힌 종교적 굴곡, 마지막으로 책의 제목으로 등장한 수수께끼의 책 <보이니치 필사본>을 둘러싼 의혹과 탐구 등 사실에 근거한 많은 이야기들이 종횡무진 등장하지만, 결국 저자가 우리에게 던지고자 하는 주된 내용은 해묵은 논쟁인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과 해석이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인 예수회 신부인 액토르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우주학자 존, 그리고 개신교도로서 신에 대한 믿음이 남다른 미모의 멕시코 아가씨 후아나가 문제의 미스터리 고문서인 보이니치 필사본의 해석에 매달리는 가운데 새로운 과학적, 고고학적, 역사적, 종교적 진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케플러와 튀코의 관계, 중세 이래 계속되어온 연금술과 각종 수비학을 비롯한 신비주의에 대한 탐구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나열된다. 

전세계적 동호인 그룹이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보이니치 필사본에 내용은 해독이 어려운 상형문자와 각종 그림으로 좀체 그 진실을 드러내지 않는데, 주인공들은 이것이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루돌프 2세, 그리고 그의 왕립수학자를 역임한 스승과 제자인 튀코와 케플러에 의해 뭔가 해석의 단초를 찾았으리라 믿으며 탐구를 계속해간다. 또한 케플러가 예수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만큼, 보이니치 필사본에 대한 해석의 실마리를 남긴 후 이를 예수회측에 넘겼고, 예수회는 관련 문서 혹은 필사본의 일부분을 보관해 왔으리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이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단순히 보이니치 필사본의 해석이라는 진실찾기게임보다는 창조론을 대변하는 미국의 종교적 우익세력에 협조할 의도로 참여한 후아나가 마지막 무렵 뜻하지 않은 사고로 죽음을 맞고 후아나를 지원하던 단체와 세력이 액토르 신부에 접근하여 필사본 해석의 중요한 단초들을 내놓으라는 협박을 하는 가운데 사건전개는 일단락을 맞는다. 즉, 보이니치 필사본에 대한 완전한 해석은 여전히 미완인 채로 작품은 종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종결부분에 액토르가 바티칸의 천문대에 근무하게 됨을 알리면서 그의 역할이 또다른 케플러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즉, 창조론과 진화론의 오랜 대결 속에서 진실을 찾아나서는 임무를 액토르 신부가 하게 될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너무도 많은 과학지식이 숨가쁘게 등장하는 이 소설은, 그래서 독자들이 자칫 방향을 잃고 헤매게 하는 난삽함도 적지 않다. 더구나 바로 그 점때문에 정작 중요한 주제적 관심사인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결에 대한 해법찾기에는 지면 할애를 제대로 못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저자는 과학자인만큼 다윈과 오늘날의 신진화론--특히 리차드 도킨스로 대표되는--에 일정 정도 무게를 두고 대화 혹은 논지를 전개하므로써 우리에게 '진실'에 대한 힌트를 주기도 한다.     

과학적 사실과 역사적 진실을 밑그림으로 한 이 소설은 단순한 추리의 흥미가 아니라 소설읽기가 우리의 앎을 넓히는데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웅변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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