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장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5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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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고선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바로 연달아 두 번을 읽었다. 이제서야 감이 잡혀 써내려가는 독후감.

《K의 장례》에는 K라는 인물과 얽힌 두 여성이 등장한다. 그 중 한명인 희정은 희정이라는 이름 뒤에서 K의 대필을 받아 살아가는 인물이며, 다른 한명인 재인은 K의 딸로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인물이다.
이 소설은 K의 진정한 죽음과 각자만의 장례를 통해 얻게되는 진정한 자유를 말한다.

📝 "우리 둘 다 언제 벗어나고 싶어질지 모르는 이 인생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봅시다." (p.41)

희정에게 존재를 빌려달라며 제안하는 정체모를 노인네의 말이 왜이렇게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걸까.

📝 죽음은, 이별은, 소멸은 간단히 추억으로 교환된다. 갈등과 분노는 안타까움과 위무의 기도에 침윤된다. 소멸한 자의 슬픔과 번뇌에 목소리가 주어진다. 죽은 자가 죽기 전에 쌓은 악덕에 가장 설득력 있는 서사가 부여되고, 그의 죄는 그와 함께 소멸한다. 남은 자들의 고통은 재갈을 물고 신음한다. 책임을 묻거나 싸울 수 없고, 소멸을 되돌릴 수도 없어서, 영원히 해소될 수 없는 통증 같은 것을 귀중한 보물처럼 안고 살아가야 한다. (p.73)

불친절한 설명과 진행방식에 불만을 가지게 되는 책들이 왕왕 있다. 《K의 장례》 또한 배경이 상세하고 서술이 아주 친절하다 할 순 없지만, 그 또한 이 책의 매력이라 느껴진다.
왜 K는 자신의 첫 번째 죽음을 꾸며냈을까? 무엇이 그를 숨고싶게 만들었을까?
그의 시체를 정리해준 인물은 누구일까?
왜 사람들은 어떤 인물에게 수식어를 붙이고 싶어할까? 등 물음표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게 하는 점이 좋았다.

이야기의 끝에서 영주와 재인이 진정한 자유를 얻었길, 더이상은 K의 그늘에 있지 않도록 각자 장례를 잘 치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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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요정 -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요정님이 전하는 하찮은 삶의 지혜
정세원(OOO)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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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가 착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태도라 했었지. 노래 가사에 걸맞게 사랑스럽고 깜짝한 그림들에 뼈대 있는 내용이 좋았던 만화책. 어렵다고 느껴지는 주제들을 만화를 통해 가볍게 풀어내는 것이, 그러면서도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책 제목과 같이 인생의 요정 뿐 아니라 세상 온갖 요정들이 다 나오는데 전부 개성있고 귀여운 캐릭터들이라 좋았다. 우리가 망해가는 걸 초롱한 눈으로 지켜보기만 하는데도 (어차피 망하는 건 인간이고 요정은 아니니까!) 미워할 수 없다.

읽은 내내 작가님은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주 독특하고 창의적이었으며 교훈을 주기도 했던 책! 아주아주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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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들리 러블리 - 로맨스릴러 단편선
배명은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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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휘파람을 불면, 나는 그곳이 어디든 간에 발톱을 세우며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갈 것이다. (p 93)

📝 "우리는 먼 곳에서 흘러왔고 또 먼 곳으로 떠밀려 갈 거에요." (p 169)

📝 함께 장미빛 종결을 맞아요. 우리의 마지막을 기대해요. (p 267)

총 아홉 작품의 로맨스 스릴러 단편들로 이루어진 소설집 《데들리 러블리》. 책 제목에 걸맞게 치명적이게 사랑스러운 작품들이 빼곡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단편은 <폭풍의 집>, <로흐>, <소원의 집>, <오만하고 아름다운>이었고, 이 중에선 <로흐>가 가장 좋았다.

<폭풍의 집>은 왜 이렇게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 건지, 일어나야만 했던 건지 궁금하다. 소영의 가족들은 왜 죽어서도 그녀를 괴롭히는지, 도진은 왜 소영의 곁에 머무는 건지, 사실은 소영이 그들을 찾는 건 아닌지 알고 싶은 점이 계속 생겨난다.

<로흐>는 22페이지 남짓한 짧은 소설이지만 그 여운이 220페이지는 되는 느낌이다.
소설 속 로흐의 모습은 과연 어떨지, 비로소 하루를 통해 자신을 완성한 모습은 또 어떨지 궁금하다.
예상치 못했던 오랜 이별의 끝에서 그들은 결국 재회할 수 있었을까. 로흐의 여섯 번째 감각이 무어라 알려줬을까. 정세랑 작가님의 《지구에서 한아뿐》이 생각나는 소설.

<소원의 집>은 나름의 반전과 전개가 흥미진진했던 작품. 최근 사랑에 관한 앤솔러지를 읽었는데, '이런 맹목적이고 사이코스러운 사랑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오만하고 아름다운>은 '데들리 러블리'라는 제목에 딱 걸맞은 소설이지 않을까 싶다. 정체를 숨기고 지낸 푸른 털의 소녀와 흡혈귀. 마지막 '그대와 나는 서로의 치사량이었다'라는 말이 인상깊다. 서로를 죽일 만큼 사랑하는 관계, 어느 노래 가사처럼 서로를 부서지게 하고 또 껴안는 관계, 그야말로 애증의 관계를 판타지 소설로 잘 표현한 작품.

단편소설이라 전체적으로 설명이 조금 부족하고, 급하게 전개되는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스릴러를 좋아하는 나에겐 아주 만족스러웠던 단편선.
스릴러 처돌이라면 꼭 읽어보길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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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자이언트 픽
이유리 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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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북스의 사랑에 관한 글을 담은 소설 앤솔러지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앤솔러지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를 읽으며 '사랑은 도대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 연인을 사랑하는 마음,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전부 사랑이지만 분명 다르다. 사랑에는 이렇게 종류가 많은데 이 모든 것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연인1을 향한 사랑과 연인2를 향한 사랑을 같다 할 수 있을까. 왜 사랑은 소설 처럼 그렇게 전이시켜버려도 계속 계속 생겨나는 걸까.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마구 만들어주는, 아주 흥미로우면서도 어딘가 허탈했던 작품.

<수브다니의 여름 휴가>에서 '녹슬고 싶다'는 수브다니의 말이 궁금하다. '죽고 싶다'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한 걸까?
수브다니는 왜 녹슬고 싶었을까. 어떤 마음이 그를 녹슬고 싶게 만들었을까.
가끔 살면서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딘가부터 슨 녹이 시나브로 퍼져나가 그렇게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 어쩌면 수브다니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싶다.

<뼈의 기록>에서 장의사 로봇 로비스가 모미를 위하는 마음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모미가 불을 싫어함을 기억하고 그녀를 우주로 보내 죽어서라도 소원을 들어주는 것, 사랑이 아니면 과연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주체가 사람이 아닌 로봇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혼란을 겪게 된다.
과연 사랑은 학습되는 것일까, 자연적인 걸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책에 등장하는 작품들의 주제가 되는 죄책감, 그리움(미련) 또한 사랑이 기반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너무 사랑해서 증오하기도, 보호하기도, 집착하기도, 놓아주기도 한다. 앤솔러지 작가들이 말하는 사랑이란 뭘까.
천선란 작가님의 작품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해 사랑을 정의해본다.

📝 사랑이란 모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모두에게 다르며, 볼 수 없는 존재의 삶을 끊임없이 보고 있는 뼈의 아름다움과 같은 것이로구나.(p 277)

사랑은 나를 힘든 출근길에 등떠밀면서도 버거운 하루를 견디게 하고, 더할나위없이 행복하다가도 좌절하게 만든다.
노래 제목 처럼 나는 사랑을 아직 모르지만 분명 나는 사랑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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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언어가 될 때 채석장 그라운드 시리즈
이소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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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먼 과거부터 지금까지 여성은 보편자가 아니었고, 될 수 없었으며, 따라서 따라서 자신의 존재 그 자체로 존재를 인정받을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p 31)

📝 그들은 페미니즘의 항복을 받아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들은 성폭력이 권력의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그저 나를 궁지로 몰아 '남성은 여성에 비해 성욕이 크다'는 등의 구닥다리 논리를 페미니스트의 입으로, 페미니스트의 목소리로 들어냄으로써 항복을 받아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p 76)

《경험이 언어가 될 때》는 여느 페미니즘 도서와 여성학 도서처럼 주입적이고 보수적인 교육에서 자란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는 점들을 지적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경험해온 일들을 소개하기도,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나타내기도 한다.

작가는 이 책을 시작하며 쉬우면서도 사람들이 어렵다고 느끼지는 않을 만큼 어렵게 썼다고 한다. 그리고 마무리하며 이 책이 쉽게 쓰여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란다고 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쩌면 나는 작가가 말하는 보편적인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는 제법 읽기가 까다로운 책이었는데 그 이유를 아래에 적어본다.
우선 주석이 너무 많았다. 그중에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도, 너무나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도, 주석의 길이가 상당해 본문 읽기에 방해가 되는 것도 있었다.
또, 파트와 소주제들이 나눠져있기는 하지만 종종 내용들이 개연성 없이 이어진다고 느껴지기도 했으며 전체적으로 한 문단이 너무 길고 매끄럽지 못해 집중하기 어려웠다.

분명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도서임은 틀림없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고 앞으로 작가의 행보는 응원할 테지만, 어쩌면 정말 내가 작가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 이 책에 녹아들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 페미니즘 도서를 적지 않게 읽어왔는데 그중에선 조금 복잡하게 느껴졌고, 가슴 깊이 공감하기 어려웠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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