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에 대한 글1. 나는 바리새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2. 그런데 나는 바리새인이었다. 내가 바리새인이라고 깨닫게 되는 부분이 내가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시간 지키는 것에 목숨을 거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같이 모임을 하는 사람 중 항상 늦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그 사람을 어느새 판단하고 있었다. 그 사람에게는 어떤 환경과 사정이 있고 나는 그것을 다 알지 못함에도 말이다. 3. 이 책은 나에게 위로와 자유를 주었다.4. 위로와 자유를 주었던 포인트는 은사 투영에 관한 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은사를 가질 수 없는데 나는 나에게 없는 은사를 갈망하고 또 없는 것에 죄책감을 가졌던 것 같다. 나에게 있는 은사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을 비판했던 것 같다.5. 래리 오스본 목사님의 유머가 재미있고 핵심을 찌른다.6. 종합적으로 이 책은 나에게 큰 은혜를 주었다.
그러나 당신은 죄의 더러움이 죄가 용서받을 때 제거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것이다. 죄의 더러움은 죄사함을 통해 제거되지 않는다. 다만 성화와 바르게 함을 통해 제거된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의 위로가 있다. 여기에 감미로운 약속이 있다. 죄를 사하셨을 때 하나님이 심판에 이르게 하는 죄악을 제거하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성경을 가지고 말해야 한다. 의롭다 하심을 입은 모든 성도는 절뚝거리며 천국으로 가야 한다.
내주하는 죄라는 족쇄와 속박을 지닌 채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들판을 지나 영광의 문까지 가야 한다. 우리는 매일 더러워지고 그리스도는 매일 우리를 씻어 주신다. 바로 은혜가 은혜 되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모를수록 사람들은 사랑하지 못한다.
원수는 하와와 세상 끝 날까지 계속 이어질 하와의 경건한 모든 후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언약의 원인이 인간에게 있는 가치나 위엄,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순전한 자비, 사랑, 은혜라는 것이다.
언약의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 하나님과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단절된 뒤 중재자 안에서, 중재자를 통하지 않고는 어떤 언약도 둘 사이에 이루어질 수 없으며 어떤 화목도 기대할 수 없고 어떤 죄사함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언약의 상대방은 죄로 타락한 인간이다. 우리의 첫 번째 조상들의 타락이 이 언약을 가져왔다. 하나님은 타락을 허용하셨다. 바로 하나님의 풍성한 자비를 인간의 회복을 통해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언약의 형식은 하나님 편에서는 죄사함, 거룩함, 행복에 대해 값없이 은혜롭게 약속을 주시는 형태로 나타난다. 인간 편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은혜와 자비로 인간이 감당하게 될 의무들을 다시 규정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인간에게 요구되는 조항들은 죄에 대한 회개와 약속에 대한 믿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며 순종하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한다면 얼마나 더 그리스도를 닮아 가기를 갈망하겠는가!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 하는 그리스도의 형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거룩함과 행복이다.
화가이고 노래를 좋아하시고 글도 잘 쓰시는 목사님 폴 트립.교리를 그림으로 표현하시고 그 교리를 삶과 연결하여 설명하셨다. 상담가이기도 하셔서 교리와 삶을 연결할 때 상담 사례를 들어 설명하신다. 창조 교리를 설명하실때 누구라도 알아듣기 쉽게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잘 표현해주셔서 좋았다.교리를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이 삶으로 드러날때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 보여주신다.벽돌만큼 두껍지만 가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