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읽어주는 여자 -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음식에 관하여
모리시타 노리코 지음, 지희정 옮김 / 어바웃어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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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나는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주부경력 16년에 비해 딱히 요리실력이라고 내세울 것은 없다. 그래도 그럭저럭 하루하루 밥은 해먹고 살고 있으니 아주 나쁜 편만은 아니다. 해가 갈수록 전업주부로 살고 싶은 맘은 간절해지는데  현실은 직장과 가사일을 병행해야 하는 워킹맘이다보니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드는 음식보다는 단시간에 상위에 올릴 수 있는 레시피 위주로 만들어야 한다는게 가슴 아프긴 하나 평소 온.오프라인을 통해 원하던 레시피를 얻게 되면 꼭 시간을 내어 만들어서 가족들 밥상위에 자랑스럽게 올리곤 한다. 그러면서 나름 '요리 할 줄 아는 여자'라고 스스로 위안 삼으며 뿌듯해 하곤 한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다고 잘 먹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몇 시간동안 부엌에서 실랑이 하느라 지친 몸에 다시 힘이 샘솟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어른들 말씀처럼 내 새끼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걸 오롯이 느끼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우리 아이들 기억속에 추억의 편린이 되어 오래오래 남아있길 잠시나마 기원해보기도 한다.

     음식을 입에 넣었을 때, 분명 사람을 그 날 그 때의 기분이나 인상을 함께 먹게 된다. 그것은 음식과 함께 입으로 들어가 몸속 깊은 곳에 축적된다. 그리고 어느 날 같은 맛 혹은 비슷한 맛과 만나면, 책 사이에 끼워둔 책갈피 끈을 잡아당겨 페이지를 폈을 때처럼 맛의 감정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 본문 239쪽 인용 -

        저자는 음식을 통해 살아온 세월들을 추억하는 놀라운 감성의 소유자다. 물론 음식에 담긴 추억과 사연들이 있어서 특별한 날, 또는 힘들고 지친 날 그 음식을 찾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음식들이 한 두 개가 아니다. 그야말로 '소울 푸드'가 무한한 멋진 사람이다. 어릴 적 먹었던 오므라이스부터 시작해서 일본 전통 음식들, 다양한 간식들, 심지어 편의점 패스트푸드까지 그녀는 미각과 후각을 총동원해 만든 추억들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녀가 소개하는 다양한 음식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고 제목붙인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죽이었다. 그녀가 중학교 2학년이던 때, 고열로 며칠을 시달리다가 사흘째 되던 날 아침 어머니가 두툼한 질냄비에 끓여 나무 국자로 떠 주신 죽........ 그녀는 그 음식이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다고 한다. 순간 코가 싸해졌다.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가득 담긴 죽이었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문자로만 읽고 있는 나에게조차 마치 그 죽을 방금 한 숟갈 떠먹은 것같은 가슴 찡함이 전해져왔다.  

      "죽은 말이야, 이걸로 쒀야 맛있어!"

     그렇게 말씀하시며 어머니께서 뚜껑을 열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나무 국자로 너구리처럼 생긴 질냄비에서 죽을 떠 밥공기에 담아주셨다. 그때 났던 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국자가 질냄비 가장자리에 닿을 때마다 "툭, 툭"소리가 났다. 금속과 금속이 서로 긁히는 날카로운 소리와는 달리 질냄비와 나무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는 둥글고 부드러웠다.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두툼한 질냄비에 끓여 나무 국자로 뜬 죽은 포근포근하고 부드러웠다. 아침 햇살이 비치는 식탁 위에서 죽 알갱이들이 반들반들 빛났다.

               - 본문 231쪽 인용 -

  

       이 책의 저자 역시 바쁜 직장일로 인해 제대로 요리를 할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늘 어머니께 부엌을 맡긴 채 지내오다가 저자가 50대 중반이 된 어느날, 어머니가 건강상의 이유로 부엌일을 그만하셔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늘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그 맛들을 글로 풀어낼 줄만 알았지, 직접 만들어본 적이라고 없는 저자는 그동안 다양한 음식들을 먹어 본 경험들을 떠올려 하나 둘 만들기 시작하며 어머니께 대접하게 된다. 어머니가 맛있게 드시는 모습에 용기를 얻은 저자는 자신이 만든 음식을 누군가가 기쁘게 먹어준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새삼 깨닫게 되며 점점 요리의 세계로 한 걸음씩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럼으로써 그동안 먹고 비울 줄만 알았던 그녀가 재료의 신선도, 조리법, 계절 변화 등 음식 맛을 좌우하는 미묘한 차이도 터득하게 되었다니 이제 맛 칼럼니스트에서 요리사로 거듭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저자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와 함께, 음식에 관한 묘사 및 설명, 음식의 역사 등 다양한 상식들을 소개하고 있어 얼핏 보면 음식도감같은 책이기도 한데, 한 권을 다 읽고 나니 상식이 쌓인 것보다 마음 한 켠이 따뜻해져오는 묘한 느낌이 든다. 마치 누군가 나를 꼬옥 안아주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읽다보면 먹고싶어져서 책 커버에 써있는 문구처럼 이 책은 '한밤중에 읽으면 위험한 글'이긴 하지만 마음이 외롭고 누군가에게 마냥 의지하고 싶은 날,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난 후 이 책을 읽으면 금방 치유가 될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이제 이 책을 서재에 잘 보이는 책꽂이에 꽂아두어서 마음에 탈이 나는 날이면 언제든 꺼낼 수 있는 나만의 비상약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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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 일의 철학 - 철학이 없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피터 드러커 지음, 조지프 A. 마시아리엘로 엮음, 피터 드러커 소사이어티 옮김 / 청림출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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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서재 책꽂이 한 쪽에는 유기성 목사님의 '예수님의 사람'이라는 제목의 365 묵상 캘린더가 놓여있다. 말그대로 캘린더, 우리말로 달력이다. 매일 매일의 날짜만 나와 있는 일반적인 캘린더와 달리 매일의 날짜 아래에 그 날 묵상할 수 있는 성경구절이 함께 씌어있다는 게 여느 캘린더와  다른 점이다. 그래서 하루하루 한 장씩 넘기며 매일 새로운 성경구절을 묵상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에 우리같은 크리스천들에게는 참 요긴하게 사용되는 캘린더이다.

       이 책을 읽는데 꼭 그 캘린더 같았다. 탁상에 세워놓을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는 것만 다를 뿐, 기독교 내용이 아니라는 내용만 다를 뿐 그야말로 1년동안 매일 읽고 묵상할 수 있는 내 서재의 캘린더 같았다. 매일매일 새로운 말씀구절을 그날의 양식처럼 하루종일 씹어 소화하며 내 삶속에 적용하는 크리스천들의 캘린더처럼, 이 책 역시 1년 동안 피터 드러커의 철학들을 하루에 한 페이지씩 날마다 묵상하며 내 삶 속에 적용시킬 수 있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의 주옥같은 저서들의 핵심 내용들, 그야말로 '알짜배기 '들로만 모아서 묶어놓았으니 저자에게 있어서도 독자에게 있어서도 귀한 책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썼던 글들 중에서 핵심이 되는 문장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다음 그에 대한 설명과 논평을 몇 줄 정도 언급했다. 이 책들의 주제들은 나의 저서들에서 논의한 대단히 많은 영역을 아우르는데 경영과 비즈니스, 세계경제, 변화하는 사회, 혁신과 기업가정신, 의사결정, 변화하는 노동력, 비영리 단체와 그들의 경영 등이 될 것이다.

                    - 서문 인용 -

 

       이 책은 달력의 열 두 달처럼 크게 열 두 개의 주제로 나뉘어져 있다.

             ( 혁신이 시작되다, 다른 각도로 보라, 혁신은 사소한 곳에 있다, 리더는 어떻게 인재를 관리하는가,

               지속적으로 학습하라, 일을 완성하는 힘, 실패는 위기가 아닌 기회다, 비즈니스 잠재력을 찾는 법,

                자신의 시간을 경영하라, 올바른 결정과 잘못된 결정, 업무에 적합한 조직을 찾아라, 경영과 사회)

      그리고 각각의 주제 아래에 29~31개의 작은 소주제들이 한 페이지씩 제시되어 있어서 매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맨 아래에는 피터 드러커가 독자들에게 묻는 질문들이 하나씩 있는데 일반 직장인들 뿐 아니라 한 기업을 이끌어가는 경영 리더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좋은 발문들이다. 질문에 대한 답은 책 어디에도 소개되어 있지 않다.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은 저자가 서문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답대로 실행해보고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최종적으로 나만의 경영철학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야말로 피터 드러커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원하는 바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경영철학이다. 그런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어나가다보면 모든 분야의 직장인들에게 두루 적용됨을 알 수 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에게도,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도 심지어 좌판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인 이유이기도 하다.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비롯해서 시장 및 산업의 구조변화, 정보를 다루는 방법, 부가가치, 벤치마킹 등 현대사회의 모든직장인들이 한 번쯤은 꼭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은 주제들로 빼곡히 갖추어져 있음에 이 책의 독자들은 누구라고 딱 꼬집을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아침마다 서재의 말씀 캘린더를 한 장 넘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 하루 내가 묵상해야 할 성경구절을 읽고 또 읽으며 오늘 하루 이 말씀들을 어떻게 적용시킬지 묵상하며 하루의 문을 여는데, 이젠 하나 더 해야할 일이 생겼다. 이 책을 묵상 캘린더 옆에 두고 하루 한 페이지씩 읽으며 피터 드러커의 경영 철학의 핵심내용들 또한 내 삶에 적용시켜야겠다. 이제 아침이 더 바빠질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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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서 밤새 읽는 유전자 이야기 재밌밤 시리즈
다케우치 가오루.마루야마 아쓰시 지음, 김소영 옮김, 정성헌 감수 / 더숲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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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뉴스를 보다가 안젤리나 졸리에 관한 기사가 나왔는데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졸리가 자신의 유전자 검사를 했는데,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게 나와서 미리 예방차원으로 유방절제술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 기사를 읽었을 당시에는 졸리가 너무 성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정기적으로 검사하고 혹시나 발병하면 초기에 수술하면 되지, 일반인도 쉽게 결정하기 힘든 유방절제술을 유명 여배우가 결정했다는 게 그야말로 놀랍고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유전학이 얼마나 발전했으면 내가 그 병에 걸릴 확률을 알 수 있는 것인지 경이롭기도 했다. 그 무렵부터 유전학이라는 학문에 조금씩 관심이 있었는데, 마침 제목도 흥미로운 '재밌어서 밤새 읽는 유전자 이야기'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다케우치 가오루라는 일본의 과학전문작가가 쓴 책으로서 '재밌어서 밤새 읽는 소립자 이야기', '무섭지만 재밌어서 밤새 읽는 과학이야기'에 이어  '재밌어서 밤새 읽는' 시리즈의 3탄이다.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Part 1 '재밌어서 밤새 읽는 유전자 이야기'에서는 유전자의 이름, 복제동물, DNA 수사, 암과 유전자의 관계 등을 다루고 있고, Part 2 '알수록 스릴 넘치는 유전자 세계'에서는 유전자 검사와 치료, 인간 게놈과 유전자 재조합의 진실, '우리가 품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의문들에 관한 답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Part 3 '유전학과 DNA를 둘러싼 모험'에서는 멘델을 시작으로 DNA와 염색체 등 유전의 역사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들이 실려있다. 

 

 

          제목답게 재미있고 흥미로운 유전학 상식들이 많이 실려있어서 정말 책이 술술 넘어갔다. 마침 평소 궁금했던 노새에 관한 이야기도 실려있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수나귀와 암말의 교배로 태어난 노새는 부모의 염색체 개수가 서로 다른데도 교배에 성공한 케이스다. 당나귀의 염색체가 62개인데 말은 64개인데도 노새가 태어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노새는 불임이라고 한다. 그리고 고양잇과의 대형도물인 호랑이, 사자, 재규어, 퓨마, 표범은 모두 각각 38개의 염색체를 가졌는데 자연계에서 이들이 서로 교배하는 일은 없으나 설사 교배해서 태어나더라도 그 개체는 불임이라고 한다. 언젠가 책에서 본 기억이 난다. 노새는 과거도 미래도 없는 슬픈 동물이라고.......

         그리고 우리가 실수로 많이 사용하는 말에 관한 소개도 있었다. 범죄관련 뉴스에서 자주 들리는 말 중에 "DNA가 일치한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이는 틀린 말이라고 한다. "염기배열 패턴의 일부가 아주 비슷하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새롭게 하나 알게 된 건강상식도 있었다. 담배보다 더 위험한 물질에 관한 소개였다. 우리가 알다시피 담배 연기에는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포함돼있다고 한다. 이 벤조피렌은 P53유전자를 변이시켜 암을 발생시키게 되는데 이것보다 더 무서운 발암물질이 우리 주변에 있다고 한다. 바로 곰팡이독이란다. 그 중 '아플라톡신'이라는 물질의 발암성이 아주 높은데 이 곰팡이는 땅콩류나 곡물에 생기며 조리할 때 쓰는 열로는 분해되지 않기 때문에 한 번 곰팡이가 핀 식품은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고 한다. 더 무서운 것은 '그럼 곰팡이가 핀 땅콩이나 곡류등을 안먹으면 되지!'라는 생각만으로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곰팡이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곰팡이도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빵이든 땅콩류든 개봉하고 나면 바로바로 먹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한다.

         중세 귀족들의 초상화에 얽힌 이야기에 관한 소개도 기억에 남는다. 중세 귀족들은 초상화를 많이 남겼는데 당시 초상화가들 사이에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얼굴의 마맛자국은 그리지 않는 것'이었다고 한다. 천연두를 앓고 난 후의 흉터인 피부의 울퉁불퉁한 자국들을 그리지 않는 것이 규칙이었다니,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천연두를 많이 앓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평소 궁금했던 생물학적 지식들을 비롯해서 유전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 놓은 이 책 덕분에 나의 상식수준이 한층 업그레이드 된 기분이다. 뿐만 아니라 책의 뒷부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과학자들에 관해 자세히 소개하는 코너도 있어서 중학생인 딸아이에게도 권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려운 단어는 괄호 안에 따로 부연설명이 되어 있어서 과학적 상식이 없는 과학초보자들에게도 누구나 쉽게 읽혀지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어서 4탄도 출간되기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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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사람이다 - 그 집이 품고 있는 소박하고 아담한 삶
한윤정 지음, 박기호 사진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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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때 유행어 중에 영화 속 대사였던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말이 있었다. 영화속에서 이제 막 애정이 싹튼 두 연인이 헤어지면서 아쉬운 마음에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에게 건넨 대사였다. 사전적인 의미만 따져본다면 말그대로 '우리 배고프니 라면 같이 먹자'라는 말이지만, 그 말에 담긴 심오한 의미는 이제 막 사랑이 싹튼 두 연인이 사랑하는 사람과 자기집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이었으리라. 비단 사랑하는 사이가 아닌 친구사이에서도 이런 일들은 있었다. 어린 시절 친한 친구가 생기면 꼭 하는 말 중에 "우리집에 갈래?"라는 말이 있었다. 이 말 한 마디로 친구집에 초대를 받아가면 그 날부터 그 친구와 더 친해진 것 같고, 마치 둘만의 비밀이 생긴 것 같아 마냥 뿌듯하고 행복해하던 추억들이 누군가에게나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집'이라는 공간은 살고 있는 사람의 삶 자체인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집에 가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속으로 들어가볼 수 있는 일종의 프리패스를 얻는 셈인 것이다. 

   책제목인 '집이 사람이다'와 함께 책표지에 명시되어 있는 '그 집이 품고 있는 소박하고 아담한 삶'이라는 부제에서도 이미 알 수 있듯이 이 책 역시 '집=삶'. '집=사람'이라는 공식을 증명해보이는 다양한 집들을 네 가지의 테마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다.

         - 제 1장.  소박한 집

         - 제 2장.  시간이 쌓인 집

         - 제 3장.  예술이 태어나는 집

         - 제 4장.  공동체를 향해 열린 집 

    그 중 제 1장에 소개되어 있는 건축가 김재관의 '살구나무집'이 참 인상적이었다. 만약 이 책에 나오는 집들 중 하나 골라보라고 한다면 이 집을 선택할만큼 평소 내가 꿈꿈던 집의 모습이었다. 이 집의 대부분은 소나무 목재로 사용하여 만들어진 목재가옥이라는 점이 맘에 들었고, 무엇보다 집안 내부에 물건이 거의 없다는 점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친환경적인 나무로 만들어진 집에 여백이 가득한 아늑한 집안 분위기에 걸맞게 마당에는 살구나무 한 그루가 오롯이 서있는 시골집같은 그의 집은 이리봐도 저리봐도 매력적이었다. 그야말로 '소박한 집'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집을 고르라고 한다면 독문학자 전영애의 '책의 집'인 '여백서원'을 꼽고 싶다. 자신의 부모님의 책들부터 비롯해서 독일 유학시절 가르침을 받은 스승의 책들, 자신이 쓰고 번역한 책, 그의 제자들이 만든 책, 여백서원을 다녀간 사람들의 책등 다양한 책들이 쉬고 있는 '여백서원'은 정말 꼭 한 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전영애 교수는 여백서원의 존재 이유로 좋은 책의 보관과 함께 좋은 사람들의 보존을 든다. 제자들, 책과 문학을 사랑하는 시민들, 한국에 대해 알고 싶은 외국인들 누구에게나 여백서원은 열려 있다. 그들이 험난한 세상에서 마모되지 않고 양심을 지키며 정직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여백서원에서 삶의 여백을 찾도록 해주고 싶다.

         - 본문 290쪽 인용 -

    삶의 여백을 찾도록 해주고 싶다는집주인의 마음 씀씀이에 가슴 한켠이 따뜻해져 온다.

 

 

         책을 읽고나니 우리집의 여기저기를 둘러보게 되었다. 우리집은 과연 어떤 집인지 곰곰히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고 나니 여기 저기 어수선한 곳들, 정리되지 않은 곳들이 또 눈에 들어온다. 내가 꿈꾸는 집의 이상향은 소박한 집인데 우리집은 아무래도 소박함과는 거리가 있어보인다. 책을 읽는 내내 집이 곧 사람이라는 명제에 길들여져왔는데 막상 내 집을 보니 '내가 이렇게 어수선한 사람이야?'라는 반성도 들며 여기저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온 가족의 쉼터인 거실부터 시작해서 하루 3번은 꼭 이용하게 되는 주방 식탁주변, 그리고 누구보다 내가 제일 많이 사용하는 싱크대, 조리대 주변을 깔끔히 치우고 정리했다. 정리하는 김에 구조도 바꾸고 싶어 식탁의 위치도 한 번 바꿔보니 이전보다 훨씬 더 사용하기도 편리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들어보인다. 발동걸린 김에 이번 주는 집안 구석구석 정리를 해볼까 한다. 그래서 우리집만이 품고 있는 소박하고 아담한 삶을 앞으로도 만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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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 라이프 - 일상 속 스마트한 선택을 위한
알리 알모사위 지음, 정주연 옮김 / 생각정거장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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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표지가 참 산뜻하고 따뜻해보여서 내용을 보기도 전에 우선 합격점(?)을 주었다. 이런 식으로 편파적인 점수를 주면 안되는 걸 알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취향으로 구성된 표지라 그런지 맘이 가는 걸 어쩔 수가 없다. 무엇보다 책표지에 있는 캐릭터 그림이 영화 'UP'에 나오는 주인공 할아버지 느낌같아서 더 친근함이 들었나보다. 아무래도 자칫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알고리즘'에 관한 책이라 선뜻 책장을 넘기기가 힘든 독자의 마음을 간파한 저자가 준비한 '신의 한 수'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따뜻한 표지와 친숙한 이미지의 캐릭터로 장식된 책 표지는 책을 금방 펼쳐볼 수 있게 한 일등공신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알고리즘'!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익숙한 것 같은이 단어는 학창시절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우던 시절 오며 가며 귀동냥으로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나의 고정관념 속에는 '컴퓨터 프로그램=알고리즘'이라는 내 나름대로의 공식이 떠억허니 자리잡고 있다. 알 듯 말 듯 아리송한 '알고리즘'이 과연 무슨 뜻인지 우선 사전적인 의미부터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 방법, 명령어들의 집합'이라고 설명되어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순서'를 말하는 것 같았다. 이렇듯 '알고리즘'이 무엇인지 슬쩍 감을 잡고 난 후 서둘러 책을 펴보았다.

     저자인 알리 알모사위는 여러 가지 일상적인 사례들을 통해 이 알고리즘이 우리 일상생활속에서 얼마나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의 목표는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문제의 다양한 해결방법을 제시하고 그 방법들을 비교해 어떤 것이 효율적인지 찾아보면서 알고리즘적 사고방식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다.

              (중간생략)

     이 책은 거실, 양복점, 백화점 같은 익숙한 장소에서 맞닥뜨리는 12가지 상황을 제시한다. 상황마다 해야 할 작업이 정해져 있다. 각 장마다 해결해야 할 상황을 제시한 후, 그 상황과 알고리즘적 개념을 연관 지어 설명하고 적어도 2가지 이상의 해결방법을 비교하여 살펴볼 것이다. 결론적으로 둘 중 하나가 더 빠른 해결법이다.

               - 본문 9~10쪽 인용 -

     

 

 

      이 책은 저자의 편집의도대로 일상에서의 사례 12가지를 제시하며 생활속에서 알고리즘을 현명하고 지혜롭게 사용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산더미처럼 쌓인 양말 짝을 맞춰라', '폭탄세일 셔츠를 쓸어 담아라', '장보기 횟수를 최소한으로 줄여라', '빠르게 미로를 탈출하라', '쏟아진 우편물을 주소에 따라 정리하라' 등의 흥미로운 제목과 함께 독자로 하여금 각각의 미션을 수행하게끔 이끌어간다. 그렇게 흥미롭게 시작을 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결해 볼 수 있는 힌트도 제시해주면서 독자가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게 한다. 그런 후 이 상황에 맞는 전문적인 용어를 자연스럽게 설명하며 우리가 어떤 선택을 했을 좀 더 현명한 의사결정을 한 것인지 스스로 판단해볼 수 있게 한다. 마치 저자와 독자의 문답형 전개라고나 할까? 끝까지 독자의 흥미를 떨어뜨리지 않고 적당한 질문과 재미를 곁들여가며 독자가 깨달아야 할 중요한 사실도 놓치지 않도록 저자는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는다. 자칫 이런 류의 책들은 무겁고 어려워서 중간에서 포기하기 쉬운데 다행히도 책은 술술 잘 넘어간다. 한 챕터마다 소개하고 있는 중요 개념들은 굵은 활자로 표기하는 친절함과 함께 괄호 속에 원어 그대로 써둠으로써 독자들이 개념이해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저자는 강조한다. 우리가 파악할 틈도 없이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 속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알고리즘을 생활속에서 잘 활용하면 삶 속에서의 복잡한 문제들이 쉽게 느껴지고 간단히 해결될 것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평소 나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의 탓에 일처리가 좀 느린 편이라 그런지 상당히 와닿았다.  마치 저자가 내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삶을 좀 더 단순하게 바라보고 해결과정을 명료화하라!"

      그래야겠다. 집안 살림만 미니멀하게 줄여갈 게 아니라, 머릿속 생각까지 줄일 수 있는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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