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라테
김흥숙 지음 / 서울셀렉션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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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참 신선하고 눈이 자꾸 간다. 네 글자의 짧고 명쾌함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커피맛을 떠올리게 하는 표지 가운데의 라테 한 잔 때문인지 표지만 바라보고 있어도 마음이 깔끔해져온다. 책 제목과 커피 한 잔의 작은 사진 외에 그냥 여백상태인 미색의 표지가 한참동안이나 나의 시선을 사로잡다보니 본 내용을 읽기까지 사뭇 시간이 걸렸다.  



      '생각라테'라는 제목을 봤을 때는, 단순히 글자 그대로 '생각 + 우유'라고만 여겼다. '생각할 꺼리들로 가득한 책인가보다'라는 생각도 뒤따랐음은 두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우유'라고만 여기는 '라테'는 꼭 '소의 젖'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저자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라테는 본래 '우유'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인데,

        우리말 '우유'는 '소의 젖'을 뜻하지만

        'latte'와 'milk'는 소의 젖을 포함한 모든 '젖'을 뜻합니다.

        '젖'은 갓 태어난 아기가 다른 음식으로 영양소를 취할 수 있기까지

        그를 살리고 키우는 생명의 진액입니다.

                               - 본문 4쪽 인용 -

      저자가 말하는 '라테'의 의미가  '우리를 살리고 키우는 생명의 진액'이라는 걸 아는 순간 묘한 전율이 느껴졌다. 그저 하얀 우유, 고소한 우유, 커피 위에 멋진 작품으로 그려지는 그 우유만 생각했었는데 하루하루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되어 주는 '생명의 진액'이 담긴 생각이 이 '생각라테' 책이라고 생각하니 날짜별로 매일매일 읽게 되어 있는 글의 내용들이 허투루 읽혀지지 않았다. 마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루하루 성경말씀이 쓰여져 있는 탁상달력을 한 장씩 넘기며 그 날 말씀을 읽고 읊조리는 나의 아침 의식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책은 2012년 3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tbs 교통방송(FM 95.1MHㅋ)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의 '들여다보기' 코너에서 낭동되었던 내용들 중 발췌해서 묶어낸 책이라는데, 무려 5년이 넘는 시간동안 날마다 이렇게 가슴 따뜻한 글을 낭독했을 저자의 우직함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물론 한 편 한 편의 글들에서 얻는 감동과 깨달음도 있었지만, 5년을 한결같이 글을 쓰고 낭독한 방송원고들의 모음이라는 사실이 주는 감동은 사뭇 컸다. 이렇게 좋은 글들을 날마다 써내려갔을 저자의 수고에 감사함이 절로 느껴지기도 했다. 글을 쓴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님을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체감하고 있는데 말이다.



       1월부터 12월까지 매일 매일의 날짜 아래에 한 편의 글이 자리잡고 있는 책을 읽던 중 내 생일인 날에는 어떤 글이 있나 궁금해서 먼저 읽어보았다.

     내 생일날에 써 있는 내용이라 그런지, 더 맘에 와닿는 것 같다. 사실 나도 누군가를 위로하는 게 참 어려운 편이다. 자칫 잘못 위로하게 되면 오히려 위로하지 않는 것보다도 못한 일이 되는 경우도 생기다보니. 나이를 먹을수록 위로가 참 어렵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나 역시 누군가에게 딱히 위로의 말을 못 건네는 상황이 되면 그냥 등을 쓸어내린다던지, 어깨를 토닥거려주곤 하는데, 저자의 말처럼 그냥 안아주는 게 낫겠다 싶다. 말이 하지 못하는 일을 몸이 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요즘 날씨처럼 마음이 마냥 시리고 추울 때, 이 책을 읽으면 참 좋을 거 같다. 향 좋은 라테 한 잔 마시며 언 몸을 녹이듯, 책을 읽다보면 어느샌가 마음에 온기가 퍼져나갈 것 같은 이 느김.........   내 지인들에게도 이 따끈한 라테 한 잔.....아니 한 권을 설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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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섬으로 가다 - 열두 달 남이섬 나무 여행기
김선미 지음 / 나미북스(여성신문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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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찌는 듯이 무더운 7월의 뜨거운 한 여름날 새벽, 남춘천 산자락에 위치한 외갓집 사랑방에서 태어났다. 7살, 9살 터울의 외삼촌들과 거의 남매처럼 지내며 유년 시절을  남춘천 신동면의 산자락에서 보냈던 탓에 '춘천'은 내게 그야말로 고향같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소양댐, 닭갈비, 막국수 등등 춘천과 관련된 단어만 들어도 가슴 한 켠이 설레곤 하는데, 정작 남이섬은 모르고 살아왔다. 남이섬을 인지한 것은 한창 '겨울연가' 드라마가 유행하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결혼하고 큰 아이를 낳아 기르던 그 시절 우연히 드라마를 보고 남이섬이라는 곳이 있다는, 그 섬이 행정구역상 춘천이라는 것도 그제서야 알았으니 나도 참 헛똑똑이다 싶다.

 

 

       큰아이가 4살이 되던 그 해 1월, 친정엄마를 모시고 남편과 아이와 함께 고향방문 겸 춘천을 찾아 여행을 하던 중 한창 유행하던 드라마의 배경지인 남이섬에도 가보자는 의견이 나와 얼떨결에 남이섬으로 향하게 되었다. 추운 겨울이라 배를 타고 들어가는 강 여기저기에는 얼어붙은 얼음덩어리들로 가득했고, 배가 도착한 선착장에는 아예 얼음폭포기둥이 우리를 반기던 모습이 내 기억을 장식하는  남이섬의 첫인상이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남이섬' 하면 추운 겨울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마치 '남이섬 = 겨울왕국'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남이섬의  4계절을 만날 수 있어서 내겐 너무 신선한 충격이었다.  남이섬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는 게 당연한 사실이긴 하지만, 정말이지 나에겐 남이섬의 겨울 이미지밖에 없으니 그런 생각을 했음도 무리가 아니지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남이섬의 4계절의 변화무쌍한 모습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나무들의 사진과 함께 그에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 역사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어서 나로서는 참 좋았다.

 

 

      '열두 달 남이섬 나무 여행기'라는 부제에 맞게 저자는 1년 내내 한 달에 한 번, 3~4일씩 꼭 남이섬에 머물면서 나무사진들을 찍고, 나무들과 대화하며, 오롯이 나무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을 보냈다고 한다.

      나무를 보려면 수목원에 가지 왜 하필 남이섬에 갔을까. 수목원은 해답이 쉽게 보이는 참고서 같았다. 남이섬은 수목원처럼 한곳에서 다양한 수종을 관찰할 수 있지만 지나치게 친절하지 않아서 좋았다. 이름표를 붙여놓은 나무도 많지 않았고, 있어도 잘 드러나지 았았다. 그렇다고 야생의 숲처럼 너무 막막하지도 않았다. 나처럼 나무에게 걸음마를 떼려는 사람한테는 안성맞춤이었다.

                                       - 본문 8쪽 인용 -

     저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단박에 이해가 된다. 나 역시도 그랬을 것 같으니 말이다. 쉽게 잘 닦인 등산로를 따라만 가며 산을 오르는 게 아니라, 이리 저리 가보며 내가 길을 찾아서 산 정상에 도달했을 때의 뿌듯함 같은 걸 이 책의 저자도 느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입춘 무렵부터 그 이듬해 대한 즈음까지 그 계절에만 볼 수 있는 꽃들을 비롯해서 나무의 성장과정을 주욱 지켜보며 남이섬과 함께 한 저자가 몹시도 부러웠다. 마치 아이가 태어나서 1년 동안의 성장과정을 지켜보고 1년 뒤 소박한 돌잔치를 차려주며 참석한 지인들에게 아이의 성장과정을 하나 둘 풀어놓으며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엄마를 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안되겠다. 올해의 버킷리스트에 또 하나를 추가해야할 듯 싶다. 나무에 물이 오르고 봄꽇이 꽃망울을 피우는 봄이 오면 내 꼭 한 번 남이섬에 가리라. 겨울이미지로만 가득한 남이섬의 고정관념을 확실히 깨어 준 이 책을 들고 내 꼭 나무답사하러 남이섬으로 가리라. 그래서 꼭 남이섬의 봄을 만끽해야겠다. 연두빛으로 가득할 남이섬의 모습이 벌써부터 기대가 되니 이번 미션은 왠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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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
이춘기 지음, 이복규 엮음 / 학지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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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초가 되면 늘 두 가지를 준비한다. 그날 그날 스케줄을 메모할 수 있는 휴대용 다이어리 한 권과 그해 일기를 쓸 수 있는 그야말로 '다이어리' 한 권을 준비하는 게 새해를 맞이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뭔가를 끄적거리는 걸 좋아하는 습관탓에 어린 시절부터 지금껏 늘 해오는 의식이기도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1년을 꼬박 다 써 본 다이어리는 없다. 처음에는 늘 새로운 포부와 각오를 가지고 꼬박꼬박 기록을 하다가도 2월, 3월, 4월이 되어가며 계절이 바뀌어갈 때마다 점점 쓰는 횟수가 줄어들며 가을무렵부터는 급기야 다이어리가 백지상태가 되곤했다. 아예 펼쳐보지도 않게 되고 말이다. 이렇듯 일기를 1년 아니 몇 달만이라도 꼬박꼬박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수십 년 간 해오신 분이 계시니 바로 이춘기 옹이다. 1961년부터 1990년까지 무려 30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쓰신 것이다. 매일 일기를 쓰다가도 어쩌다 바쁜 농사일로 인해 일기를 빼먹게 되면 밀린 일기를 하나도 빠뜨림 없이 한꺼번에 쓰셨다고 한다. 어지간한 끈기와 인내와 없으면 참 하기 어려운 일일텐데 말이다. 그것도 그냥 신변잡기적인 일상들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지으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수입과 지출, 장거리 여행을 할 경우 타게 된 차의 시각, 열차번호, 도착 시각, 차비, 당시의 물건값, 인부들의 품삯 등 그 시대만의 팩트들을 일기에 기록해둠으로써 30년간의 물가와 경제상황 등을 짐작해볼 수 있다는 가치 또한 지니게 된 것이다.

 

 

        초반부에 나오는 부인의 투병 및 사망에 관한 일기를 읽는 동안에는 가슴이 뻐근하리만치 아팠다. 이춘기 옹의 부인은 의료기술도 열악했을 1960년 12월 무렵 발병한 암으로 인해 힘든 투병 끝에 1961년 4월 17일 끝내 눈을 감는다. 아직 어린 두 아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야 함을 안타까워하고 가슴 아파하는 엄마의 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에 그 대목에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엄마의 부재로 인해 한 가정이 점점 기울어져가는 모습 또한 일기를 통해 볼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서두르게 된 재혼과 잇따른 실패로 인해 온 가족의 힘듦이 일기의 곳곳에 묻어나옴을 보자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아! 엄마가 건강해야 하는구나. 내가 건강해야겠구나. 내가 아프거나 오래 살지 못하면 내 가족들이 고생하고 힘들어지는구나. 우리 가족을 위해서라도 내가 건강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가족들 건강만 챙겼지 내 건강은 사실 잘 못챙기기 일쑤였는데 나의 건강을 비롯해서 가족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었다.

 

 

        목련꽃 필 무렵인 4월 17일에 아내와의 사별을 맞이하게 된 이춘기 옹은 해마다 아내의 기일이 되면 하얀 목련꽃을 꺾어다 아내의 무덤앞에 놓고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아내를 그리워하곤 했다고 한다. 자신이 가지 못하면 자식을 시켜서라도 그렇게 하였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아내가 그리울 때마다 일기장에 시를 쓰기도 했으니 그 그리움이 얼마나 깊고도 절절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한 인간의 일생에 걸친 대서사시이자 한 가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 일기를 보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가족의 소중함부터 시작해서 가족의 건강, 특히나 안주인인 엄마의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지 무엇보다 크게 깨닫게 된 경험이었다.

        올해도 벌써 한 달이나 지나갔다. 늘 연초가 되면 마음먹고 일기를 쓰다가도 어느 순간 접어버리곤 해서 올해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데, 2월부터라도 시작해볼까 한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 지금보다 훨씬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 돋보기 안경을 쓰고 낡은 나의 일기장을 들춰보며 추억을 회상해보고 싶다. 여건이 된다면 내 자녀들에게도 물려주고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내 건강을 좀 더 잘 챙겨야겠다. 내 건강이 곧 우리집안의 건강임을 잊지 않고 건강한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나가야겠다. 이춘기 옹의 일기로 인해 좀 더 부지런하고 건강한 2018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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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컷 한국 현대사 - 빛바랜 한 장의 사진이 품고 있는 속 깊은 역사, 그 순간의 이야기
표학렬 지음 / 인문서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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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진찍기'란 내가 모델로 찍히는 사진이 아니라 내가 찍는 사람이 되어 사진찍는 것을 말한다. 아이들이 태어나던 무렵 인터넷상에서 유행했던  '**월드'라는 사이트를 활용하여 그날 그날 찍은 사진을 올리며 육아일기처럼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블로그라는 게 생겨 본격적으로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기록하게 되었는데, 점점 범위가 넓어져 다양한 주제로 사진과 글을 올리는 취미활동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매일매일의 일상을 기록하고 싶어서 그 날 먹었던 음식, 그 날의 하늘 모습, 시장에서 장본 것들, 집안 일 하기 전과 후의 모습, 아이들과 치과에 가서 뺀 치아들, 가족들과 함께 간 여행지의 모습 등 다양한 장면들을 찍어서 일상을 흔적들을 남기곤 했는데, 어떤 날은 사진만 올린 날도 많았다. 그러다 또 시들해져서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최근 들어 블로그에 서평을 쓰면서 다시 예전의 그 흔적들을 보게 되었다. 자세히 설명을 남겨놓은 날도 있지만, 어떤 날은 사진만 올려놓은 것도 많았다. 그런데 딱히 설명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진만 봐도 그 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아이가 왜 울었는지 등 그 날 있었떤 구체적인 일들이 마치 얼만 전 일들처럼 상세히 떠오르는 것이었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여행지에 가면 다들 "야~! 남는 건 사진뿐이야. 얼른 찍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책에도 사진이 여러 장 실려있다. 그것도 그냥 사진이 아니라 우리 나라 현대사의 중요 장면들을 어렵게 찍은 33장의 흑백사진들이 고스란히 실려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 자주 봐서 익숙한 사진들도 있고, 언젠가 박물관에서 개최한 사진전에서 본 듯한 사진도 있으며, 아예 처음 보는 사진들도 많았다. 흑백사진이라 그런건지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의 암울한 시대의 사진들이라 그런건지 사진들을 보다보면 마음 한 구석이 착잡해져옴이 느껴진다. 어떤 사진은 심지어 마음이 쓰리도록 아프기도 했다. 그 중 가장 먹먹했던 사진은 이봉창 의사의 마지막 기념사진이었다. 한인애국단이던 이봉창 의사가 임무수행을 위해 임시정부를 떠나기 전에 멋지게 옷을 빼입고 활짝 웃는 모습으로 찍은 사진을 보는데, 콧등이 찡했다. 자신의 죽음을 안다는 것, 남아있는 삶의 시간을 알고 준비한다는 것이 31살 청년이 감당하기에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을 터인데, 환한 웃음으로 사진을 찍은 그의 사진을 보니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1960년대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르는 초등학생들의 모습 사진이었다. 전후시대 빈곤에 시달리던 그 시절에 삶이 보장될 수 있는 방법은 좋은 대학교를 나와 출세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초등학생, 아니 당시 국민학생이던 시절부터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서울로, 대도시로 좋은 학교에 가려고 기를 썼던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모두가 가난하던 그 시절, 부모들이 가난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아 소 팔아 번 돈으로 자식 밑에 부어가며 우골탑을 쌓았던 그 시절의 모습이 지금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자녀밑에 들어갈 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아이를 낳지 않는 젊은 부부들 뿐 아니라, 아예 결혼조차 하지 않으려는 젊은 세대들이 많다고 하니 60년대 초등학생 사진을 보는 내내 역시 또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져 옴이 느껴졌다. 

     

 

      낡고 바랜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긴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 현재 살고 있는 우리들이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깨닫는 귀한 시간이었다. 저자도 강조하다시피 역사청산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과제가 아닌가 싶다. 잘못된 것은 사죄하고 반성하며 서로 협력하며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적폐청산이요, 미래를 향한 도약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전직 대통령이 최근 자신의 측근들에 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서 입장 발표를 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많은 기자들을 불러놓고 자신의 입장 발표만 하고 질문은 받지 않은 채 그 길로 차를 타고 현장을 떠나버린 것이었다. 그의 입장발표 내용은 이러했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검찰 수사에 많은 국민들이 보수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인터넷에는 입장발표하는 모습의 사진으로 도배가 되었다. 인터넷 신문들마다 사진을 올리기 바빴기 때문이다. 아마 그 날의 그 모습이 찍힌 사진 또한 현대사의 또 한 컷이 되어 남겨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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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같은 말 - 시작하는 나에게 끝내주는 한마디
정명섭 지음 / 생각의서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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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락같은 말'........ 

    책 제목이 참 인상적이었다. 학창시절을 한참이나 지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벼락'이라고 하면 시험기간에 벼락치기로 공부하던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걸 보니, 해마다 꼬박꼬박 나이를 먹긴해도 마음은 아직 철들려면 멀었나보다.

    이 책에서의 '벼락'은 책표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늘에서 내리치는 벼락을 의미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빛의 속도로 언제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벼락처럼 언제 어디에서 우리의 뇌리를 스쳐지나갈지 모를 깨달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이놈아! 정신차려!"

     호통과 함께 벼락처럼 어깨에 떨어지는 죽비가 해답인지도 모른다.

                         - 본문 4쪽 인용 -

    한 장면이 떠오른다. 심심산중에 있는 조용한 산사에서 가부좌를 한 채 명상에 잠긴 여러 스님들 사이를 거닐고 계시는 노스님 한 분........ 그 분의 손에 들려있는 죽비 하나.......   고요한 가운데 노스님이 거닐며 내는 옷깃 스치는 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어느 순간 '딱'하고 누군가의 어깨를 내려치는 죽비소리....... 죽비 한 차례를 맞은 스님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 다시 명상에 잠기고.......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서 돌아보니 '벼락같은 말' 속에 담긴 뜻은 바로 이것이었다. 바쁜 세상사에 치여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있는 현대인들에게 '벼락같은 말'이 깨달음으로 다가와서 몸과 마음을 추스릴 수 있는 여유를 찾길 바라는 저자의 간절함이라고나 할까? 그런 간절함을 담고 있으면서도 저자는 은근히 밀당을 하고 있다. "이 책에는 옛 스님들의 이런 이런 좋은 말씀들도 있어. 읽어볼래? 아님 말구!"하며 말이다.

      이 책이 옛 스님들의 말씀에 얽힌 이야기를 짜깁기한 그저 그런 책이 될지 아니면 운명을 바꾸는 시작점의 역할을 할지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 본문 5쪽 인용 -

    

 

 

      이 책은 4가지 주제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 그 4가지는 사랑, 도전, 노력, 반성인데 옛 스님들이 하신 말씀 한 마디를 먼저 소개한 후 그 말씀을 뿌리삼아 줄기와 가지가 뻗어나간다. 그래서인지 은근히 불교적인 색채가 묻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크리스천인 내가 읽기에 그다지 부담스럽다던가 불편함을 느낄 만큼 힘든 내용들이 아니라 누구나 수긍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 읽는 내내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 중 제일 와닿았던 내용이 있어서 따로 메모를 해서 책상 유리안에 끼워두었다.

       우리는 왜 눈앞의 행복을 제대로 보지 못할까?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돌아보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얽매여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삶이 지니는 무게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면 내가 지금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사랑이 시작되면 내가 얼마나 간절히 기다려왔는지 깡그리 잊어버리고,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들을 머릿속으로 꼽는다. 자신의 욕구가 채워지면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것을 원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갈등과 다툼이 생기고, 결국은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사랑에 목말라한다.

               - 본문 36쪽 인용 -    

       이 문구를 처음 읽는 순간 정말 내게 '벼락같은 말'로 다가왔다. 마치 아까 그 노스님한테 죽비로 어깨죽지를 한 대 맞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눈 앞의 행복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늘 더 받길 바라고, 더 많은 걸 원하는 내 모습을 야단치시며 정신차리라고 호통하시는 것만 같았다.

       

 

 

        삶에 찌들려 하루하루 그냥 달력을 넘기며 사는 현대인들에게 꼭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종교를 떠나 나 자신을 좀 더 돌아볼 수 있고, 내 마음 속 여유공간을 점검해볼 수 있는 시간을 얻기에 참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운명을 바꾸는 시작점의 역할을 할지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라고 저자가 힘주어 말했는데, 다행히 나는 시쳇말로 '한 몫 건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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