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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컷 한국 현대사 - 빛바랜 한 장의 사진이 품고 있는 속 깊은 역사, 그 순간의 이야기
표학렬 지음 / 인문서원 / 2018년 1월
평점 :
평소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진찍기'란 내가 모델로 찍히는 사진이 아니라 내가 찍는 사람이 되어
사진찍는 것을 말한다. 아이들이 태어나던 무렵 인터넷상에서 유행했던 '**월드'라는 사이트를 활용하여 그날 그날 찍은 사진을 올리며
육아일기처럼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블로그라는 게 생겨 본격적으로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기록하게 되었는데, 점점 범위가 넓어져 다양한 주제로
사진과 글을 올리는 취미활동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매일매일의 일상을 기록하고 싶어서 그 날 먹었던 음식, 그 날의 하늘 모습, 시장에서 장본
것들, 집안 일 하기 전과 후의 모습, 아이들과 치과에 가서 뺀 치아들, 가족들과 함께 간 여행지의 모습 등 다양한 장면들을 찍어서 일상을
흔적들을 남기곤 했는데, 어떤 날은 사진만 올린 날도 많았다. 그러다 또 시들해져서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최근 들어 블로그에 서평을 쓰면서
다시 예전의 그 흔적들을 보게 되었다. 자세히 설명을 남겨놓은 날도 있지만, 어떤 날은 사진만 올려놓은 것도 많았다. 그런데 딱히 설명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진만 봐도 그 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아이가 왜 울었는지 등 그 날 있었떤 구체적인 일들이 마치 얼만 전
일들처럼 상세히 떠오르는 것이었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여행지에 가면 다들 "야~! 남는 건 사진뿐이야. 얼른 찍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책에도 사진이 여러 장 실려있다. 그것도 그냥 사진이 아니라 우리 나라 현대사의 중요 장면들을 어렵게 찍은 33장의
흑백사진들이 고스란히 실려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 자주 봐서 익숙한 사진들도 있고, 언젠가 박물관에서 개최한 사진전에서 본 듯한 사진도 있으며,
아예 처음 보는 사진들도 많았다. 흑백사진이라 그런건지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의 암울한 시대의 사진들이라 그런건지 사진들을 보다보면 마음
한 구석이 착잡해져옴이 느껴진다. 어떤 사진은 심지어 마음이 쓰리도록 아프기도 했다. 그 중 가장 먹먹했던 사진은 이봉창 의사의 마지막
기념사진이었다. 한인애국단이던 이봉창 의사가 임무수행을 위해 임시정부를 떠나기 전에 멋지게 옷을 빼입고 활짝 웃는 모습으로 찍은 사진을 보는데,
콧등이 찡했다. 자신의 죽음을 안다는 것, 남아있는 삶의 시간을 알고 준비한다는 것이 31살 청년이 감당하기에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을
터인데, 환한 웃음으로 사진을 찍은 그의 사진을 보니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1960년대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르는 초등학생들의 모습 사진이었다. 전후시대 빈곤에 시달리던 그
시절에 삶이 보장될 수 있는 방법은 좋은 대학교를 나와 출세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초등학생, 아니 당시 국민학생이던 시절부터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서울로, 대도시로 좋은 학교에 가려고 기를 썼던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모두가 가난하던 그 시절, 부모들이 가난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아 소 팔아 번 돈으로 자식 밑에 부어가며 우골탑을 쌓았던 그 시절의 모습이 지금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자녀밑에
들어갈 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아이를 낳지 않는 젊은 부부들 뿐 아니라, 아예 결혼조차 하지 않으려는 젊은 세대들이 많다고 하니 60년대
초등학생 사진을 보는 내내 역시 또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져 옴이 느껴졌다.
낡고 바랜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긴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 현재 살고
있는 우리들이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깨닫는 귀한 시간이었다. 저자도 강조하다시피 역사청산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과제가 아닌가 싶다. 잘못된 것은
사죄하고 반성하며 서로 협력하며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적폐청산이요, 미래를 향한 도약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전직 대통령이 최근 자신의 측근들에 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서 입장 발표를 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많은 기자들을 불러놓고 자신의 입장 발표만 하고 질문은 받지 않은 채 그 길로 차를 타고 현장을 떠나버린 것이었다. 그의 입장발표 내용은
이러했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검찰 수사에 많은 국민들이 보수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인터넷에는 입장발표하는 모습의 사진으로 도배가 되었다. 인터넷 신문들마다 사진을 올리기 바빴기
때문이다. 아마 그 날의 그 모습이 찍힌 사진 또한 현대사의 또 한 컷이 되어 남겨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