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감정술사
이원정 지음 / 양양하다 / 2026년 9월
평점 :
읽는 내내 마음이 가라앉았다.
슬프고, 우울하고 어두운 느낌.
처음 책을 받았을 때 띠지에 적힌
“사랑과 슬픔의 끝에서 인간다움을 묻다”
라는 문장을 보고 왠지 슬픈 예감이 들었는데,
읽고 나니 그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
비가 와도 젖지 않는 남자와
물속에 잠겨 있는 아이,
죽은 자의 피를 증류하는 연금술사와
달빛 아래 잠 못 드는 외톨이.
현실과는 조금 떨어져 있는 듯한 인물과 설정인데도
그들이 품고 있는 감정은 이상할 만큼 생생하다.
상실, 외로움, 후회, 고통, 사랑.
사람이라면 한 번쯤 마음 한구석에 품어봤을 감정들
작가는 책 속에서
허구의 배경과 인물과 사건을 만들어냈지만
그 안의 감정만큼은 자신을 기록한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스스로 못마땅하게 여겼던 감정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폭로당하고 싶은 슬픔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그 슬픔을 견뎌낼 힘이 생겼다는 작가의 말이 오래 남았다.
그래서였을까.
이 책은 슬픔을 없애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슬픔을 똑바로 바라보고 이름 붙이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읽는 동안에는 자꾸 가라앉고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그 깊은 곳에서 결국 마주하게 되는 건 사람이다.
상처받고 흔들리고 무너지는 사람들,
그럼에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끝내 인간다움을 놓지 않는 사람들.
밝고 유쾌한 책은 분명 아니다.
읽고 난 뒤에도 한동안 마음이 무겁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무거움이 싫지만은 않다.
슬픔을 품어본 사람이라서야 알 수 있는 마음,
그리고 그 슬픔의 끝에서 남는 인간다움.
『감정술사』는
읽고 나서 마음이 환해지는 책이 아니라
한동안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혀 놓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