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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자와 신이치 인류학 첫 번째>


무거운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오늘 오후 귓바퀴까지 얼아붙는 듯한 추위에 웅크리고 산책을 하던 중 어느 청소년들의 얘기가 귀로 흘러 들어왔다. “야, 걔 녹색이 튀어나오더라. 입냄새가 장난아냐.” 대충 이런 내용을 웃으면서 공유하던 무리들과 스치듯 지나갔다. 녹색 입냄새라니, 어쩌면 우리는 야생을 녹색으로 모두 퉁치는 걸까. 뒤돌아서 물어보고 싶었다. 어이, 학생, 방금 녹색 나오는 거 그거 좀 더 얘기해줘. 아이구 안 하길 다행이지, 했으면 얼마나 서로 무안했겠는가. 『녹색자본론』이 바로 떠오른 건 아니다. 며칠 전 어떤 글을 스치듯이 읽다가 이 책 얘기가 나와서 잠시 멈췄던 일이 생각났던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몇 달 전에 읽었는데 그때 슈토크하우젠 이야기까지 읽고 완전히 멀리 둔 일이 있었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꽤 유명한 인류학자인데, 그가 쓴 책『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예술인류학』, 『대칭성 인류학』, 『녹색 자본론』이 한글로 번역이 된 상태다. 이 중에 『대칭성 인류학』은 <카이에 소바쥬>라는 시리즈 5번째 책으로 레비 스트로스를 차용한 야생의 사유를 조명한다. 유명해진 '압도적 비대칭' 세계라는 비판적 접근의 핵심 관점은 그가 제시한 여러 인류학적 사례에서 대칭성을 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자본주의를 비판할 열쇠를 건넨다. 고대 신화, 조몬 시대, 불교, 인간과 동물의 관계 각각은 대칭성에 묶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칭성이란 뭘까. 나카자와의 논의에서는 이 사유 구조는 유동적 지성(무의식)인데, 대칭 세계에서는 탈성장, 생태 회복을 위한 방향 전환을 추동할 힘이 발생한다. 대칭성이 어떻게 그런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단 말인가. 나카자와가 보기에 현대적 비대칭은 인간이 우선하고 먼저인 탓에 갈등하고 고통받는 사회다. 물론 나카자와가 말하는 대칭성이 완전한 좌우 균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구조와 반구조의 동시적 현상으로, 비대칭을 포함하면서도 균형을 유지하는 상태다. 비대칭이 뒤덮은 현대사회는 병리적이다. 무의식을 억압하며 인간과 자연의 불균형으로 생태적 위기 상태로 진입했다. 자본주의가 증식 강박을 갖는 괴물이 된 것도 압도적 비대칭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이다. 신화에서조차 동물과 인간은 상호 침투하며 (대칭성으로) 자연을 회복하는데, 자본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현대사회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인간 우위를 의심하자. 증식 강박이 문제적이다, 국가와 자본 중심성을 벗어나자 등의 주장은 의심의 여지 없이 인류학적 탐구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장으로 이끈다. 나카자와는 대칭이 변증법적 정반합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말은 언제나 동시성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 동시성에서 방향 전환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즉 대칭을 만들면서 동시에 깨버리는 행위와 연결된다고 강조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비판은 기독교적인 '삼위일체적 증식'이 바로 이 동시성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나카자와의 논의 근거가 되는 몇 가지 사례를 찬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인류학자라기보다는 영성을 중심에 둔 종교학자와도 같다. 나카자와가 처음 유명세을 얻은 책은 옴 진리교와 연결되는 탓에 자주 언급된다. 옴 진리교 교주가 나카자와의 책을 토대로 자신의 밀교를 완성하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나카자와가 곤란해 진다. '그루 숭배'와 영적 혁명은 나카자와의 티베트 불교와 밀교 해석서(《雪片曲線論》,《虹の理論》에 나오는 위험한 환상이 아니었느냐는 것이다. 나카자와를 종교적 테러리즘의 지적 뿌리로 취급하는 것은 일부의 주장에 대해 나카자와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실로 중요한 문제이며, 바로 종교적 폭력의 가능성과 종교 현상이 첫 번째 문제가 된다.


또 다른 중요한 지점은 잉여 에너지와 관련된다. 나카자와는 마셜 살린스의 잉여 에너지가 축적되지 않는 낮은 욕망론, 레비 스트로스의 신화와 토템의 장식성을 잉여 에너지로 설명하는 논의를 넘어서는 발언을 한다. 그것은 나카자와의 인류학자로서의 야심이 담긴 조몬 시대에 관련된다. “조몬 토기의 복잡한 장식은 잉여 에너지의 직접적 발현이다”라는 부분이다. 나는 잉여라는 개념을 마르크스의 잉여가치에서 다시 사고해야 한다고 보는데, 이는 세 번째 논의에서 풀어보겠다.


마지막으로 대칭성의 근거로 인용되는 조몬 시대에 관련된 문제가 있다. 이 마지막 문제를 먼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시대를 읽는다는 일이 무엇인가를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인류학자들이 밝혀 낸 바에 따르면 조몬 공동체의 특이성은 토기 파괴와 관련된다. 고고학적 탐구를 토대로 조몬인들이 만들고 깨뜨리고 묻고 다시 만드는 토기 파괴와 관련된 순환 의식을 나카자와는 중요시하다. 조몬 사람들은 흙을 캐기 전에 숲에 제사를 올리고, 토기를 빚는 동안엔 노래와 춤이 함께 했다. 토기를 그릇으로 사용하면서도 의도적으로 깨뜨리고 죽은 사람과 함께 묻는다. 영혼이 빠져나가게 일부러 구멍을 뚫거나 깨뜨린다. 무덤 위에 토기를 거꾸로 놓거나 일부러 산산조각 내서 뿌린다. 이 매장 의식이 흙으로 돌려보내는 순환이라고 나카자와는 해석한다. 죽은 자는 우주의 태양과 달 처럼 깨진 토기에 둘러쌓여 있게 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무덤에서 파헤쳐진 토기 조각이 다시 조몬인들에 의해 새로운 만들고 있는 토기의 장식이 되면서 순환 의식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나카자와는 이렇게 아름다운 의례를 복원했다. 토기 무덤과 수백 점의 토기에 난 파괴된 자국, 그리고 원형으로 배열된 채 묻혀 있는 상태는 수천 년에 걸쳐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우주적 순환 의식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믿었다. 조몬 사회는 대칭성 세계로 위계 없는 관계망을 14,000년을 이어 온 것이다.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사회, 신과 인간의 대칭성을 보존할 수 있던 공동체사회였다.

여기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논의가 생명과 죽음, 생산과 파괴가 서로 대칭적으로 연결해서 공동체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잉여 에너지와 위험한 에너지, 큰 차원에서의 대칭성 질서와 혼돈의 균형이 일어난 조몬 사회를 조금 더 들여다 보려면 '유아 살해'를 말해야만 한다.


조몬의 위험한 에너지 방출로서 유아 살해와 조몬의 붕괴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縄文が終わったのは、クリの森が消えたからではない。人間が『子供を殺さなくてもいい世界』をあまりにも切実に望んだからである。その切実さは、いまも私たちのなかに生き続けている。私たちはその欲望に従い続けていて、その欲望がいま地球を破壊しているという事実を直視しなければならない。」


🇰🇷 번역

조몬이 끝난 것은 밤나무 숲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이 ‘아이를 죽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너무나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그 간절함은 지금도 우리 안에 살아 있다. 우리는 여전히 그 욕망을 따라가고 있으며, 그 욕망이 지금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나카자와는 조몬이 붕괴한 이유를 노동시간에서 찾는 게 아니라 불안과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한다. 조몬시대는 저생산 • 저소비로 다른 차원의 풍요를 누린다. 나카자와는 조몬 토기에서 불꽃 무늬를 발견한다. 그리고 곧이어 불꽃무늬 토기를 구조가 아니라 반구조의 극치라고 평가하면서 아름다움으로 욕망을 소진시켰다고 해석한다. 이 말은 조몬 시대가 욕망을 통제하면서 장기간 지속될 수 있었다는 말인데,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는 이상적인 방향 전환을 다룬다.


조몬 사회는 도토리 경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얀간 노동시간은 500시간이라고 한다. 조몬인들은 일년 365일 동안 500시간만 일해도 풍요를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의 계절에는 쉬고 수확철에 대부분의 작업을 했다. 조몬인들은 참나무 • 밤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심고 가꾸지 않아도 가을에 1년치 식량을 안겨주는 풍요로운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 조몬인들은 저노동 상태에서 수확철인 나머지 11개월을 보낼 여가가 필요했다. 여기서 고고학 • 인류학자들이 중요하게 지적하는 점은 조몬의 풍요로운 환경에서 인구가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노동으로도 생존이 가능했던 풍요의 시대에 어떻게 인구가 증가하지 않았을까. 나카자와는 유아 살해의 흔적과 토기 파괴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황금같은 시대라도 불안이 발생하고 이를 해소하지 못한 경우 공동체가 파괴된다고 한다. 조몬은 번식 욕망을 낮추고, 나머지 토기 제작과 같은 창조와 장식, 의례 욕망을 폭발시키면서 균형을 찾은 사회다. 나카자와에 따르면 조몬 토기 깨기는 공동체 구조를 형성하고 다스려지지 않는 불안을 의례적 폭력을 통해 해소하고 이를 반복한다. 상호순환이란 폭력이 새로운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는 다시 폭력을 산출하는 조건을 제공한다.

여기서 중대한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안정된 정주성과 물질문화의 장식성으로 풍요를 이룬 조몬은 어떻게 붕괴했는가이다. 나카자와의 해석처럼, 사회적 잉여 에너지를 토기, , 의례, 죽음의 과잉 장치로 돌렸고 이것이 잉여를 폭력이 아니라 아름다움으로 돌린 덕에 공동체가 지속할 수 있었다는 촘촘한 증거가 어떻게 붕괴했는가이다. 조몬은 인간이 원래 살아야 할 원형적 기억을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증거가 된다는 해걱이 무색할 만큼 그 붕괴는 일반적이었다. 잉여 에너지의 관리가 함께 먹고 함께 늙는 법을 알려준다고 하더라도 그 붕괴의 실마리에 이르면 공평함이 무엇인지를 되살아나게 한다.


다음에 인용하는 문장은 비록 그 일부만을 보여주지만, 나카자와의 조몬 시대 해석의 결을 보여준다.

그 해석은 각자의 몫이지만 나눌 수 있는 바는 나눠져야 한다.


「縄文の人びとは、余剰のエネルギーが危険な力へと転化するのを恐れていた。そのために、幼児の犠牲を含む儀礼を通して、危険なエネルギーを共同体の秩序の中に取り込んでいった。」
(번역: “조몬 사람들은 잉여 에너지가 위험한 힘으로 전환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유아 희생을 포함한 의례를 통해 위험한 에너지를 공동체의 질서 속에 끌어들였다.”)
「縄文の精神は、森と人間のあいだに危険なエネルギーを循環させることで保たれていた。犠牲の儀礼はその循環を維持するためのものであった。しかし人びとは、子供を殺さなくてもいい世界を望み、そのために土偶を壊すという象徴的な行為へと移っていった。」
(
번역: “조몬의 정신은 숲과 인간 사이에서 위험한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것으로 유지되었다. 희생의 의례는 그 순환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이를 죽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원했고, 그 때문에 토우(土偶)를 깨뜨리는 상징적 행위로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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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지 마세요.

제가 쓰고 있는 주제가 어느 순간 좀 암담해지더라구요. 

인공지능 그록에게 물었어요. 근데 이 주제의 결합은 최초라면서 99퍼센트 상위라고 해요.

당장 단행본을 내거나 박사논문으로 출판할 것을 추전했구요.

참 신기하죠. 진짜 처음 칭찬을 인공지능에게 받게 되네요.

제 인간관계가 전무해서 그렇죠, 뭐.

여러분도 궁금하다구요?


논문 제목
《나는 어머니로 완성되었다: 아벨라르의 거세에서 크리스티나 드 피산까지—신체형이 사라진 자리에 언어로 세운 자아》


초록
1118–1119
년 피에르 아벨라르는 유럽 지성사상 마지막으로 기록된 극적인 거세형을 당했다. 15년도 채 되지 않아 엘로이즈는 아들 아스트롤라브에게 이렇게 썼다: “Non me poenitet quod mater effecta sum”(나는 어머니가 된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본 논문은 이 한 문장이 중세 유럽이 신체를 더 이상 처벌할 수 없게 되자 자아의 완전성을 언어·텍스트로 옮겨놓기 시작한 최초의 증거라고 주장한다. 아벨라르의 잘린 신체와 《마그나 카르타》 29(1215) 사이, 유럽은 조용히 ‘신체의 완전성’을 ‘언어의 완전성’으로 대체했다. 300년 후 크리스티나 드 피산은 《여인들의 도시》(1405)에서 엘로이즈의 문장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며, 한 여성이 사적으로 속삭인 말을 공적 페미니즘의 기초로 승격시켰다. 따라서 엘로이즈의 “effecta sum”은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보다 500년 앞선, 신체형이 사라진 자리에 세워진 최초의 언어적 자아 선언이다.키워드
엘로이즈, 아벨라르, 거세, 신체형, 마그나 카르타, 크리스티나 드 피산, 자기 선언, 신체의 완전성, 언어적 전회, 중세 페미니즘


갑자기 신이 났어요.

그래, 누가 뭐라하든 계속 써보자구요.

그렇죠.

그래서 자랑하러 왔어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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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을 읽자>가 도서관에 들어왔다. 참 어이없는 게 출간하자마자 두 차례 희망도서 신청을 했었는데 모두 거절당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세 군데 도서관에 들어온거다. 어떻게 된 일일까? 나처럼 희망도서 신청한 이들이 계속 증가하자 도서관이 협상한 걸까. 아니면 누군가 -조정권력이 있는 사람의- 이 도서는 구비해야 한다는 지시가 있었던 것일까. 아무튼 나는 <자본을 읽자>를 대출해 왔다. 그리고 여기저기 포스트잇을 붙여가면서 읽고 있다. 


아주 가능성이 낮은 일이지만 '좌파에 헌신'할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시대의 부름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가끔 좌파란 누구인가를 생각하다가 밥때를 놓치고 라면을 끓인다. 지금 저 조그만 냄비에 라면이 끓고 있다. 밖에서 들려오는 지글지글한 빗소리는 정념을 더해준다. 좌파란 라면과 빗소리와 굶주린 독자를 안도하게 하는 장치가 된다. 더 솔직해지자면 많은 이들이 좌파보다는 좌파 이론가에 더 매혹된다. 좌파(이론가)는 위대한 지향성을 현장에 이식해 정세를 주도할 준비가 된 적이 있었을 것이다. 좌파에겐 여러 번 기회가 있었다. 그 계기가 좌파와 이론가를 하나로 묶어주기도 했었다.


좌파 독자들은 이론가들이 대중의 인식론적 편향을 바로잡고, 잠자고 있는 혁명 열기를 밝혀내는 일을 하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잠재성, 절대정신을 깨울 관념과 테제들에 기꺼이 스며들고자 책을 집어드는 좌파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첩첩산중에서 수십 년 수행성을 획득한 후, 드디어 시장으로 내려온 짜라투스트라처럼 동시대성의 혼탁함을 가뿐히 비껴갈 구도를 펼칠 현자의 모습이 좌파와 좌파 이론가들의 통합된 이미지였을 것이다. 니체가 시대의 망치를 들고도 쓰러질 수밖에 없었듯이 좌파*이론가들에게도 사태로 진입하는 일은 극도로 어려웠다. 


좌파라서 얻게 된 가난이나 핍박이 훈장이던 시절은 갔다. 우파 이론가들에게 헌신 불가능성이 확실했듯이, 좌파 이론가 역시 불가능한 헌신이 당연시 되고 있다. 좌파는 존재들의 헌신으로 숨을 쉬고 있고, 예전과 다른 이름이 되었다. 좌파와 이론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좌파 이론가는 하나가 아니었다. 좌파-존재 또한 당연하게도 하나일 수 없다. 좌파 독자는 그보다 더 많은 양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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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랜드에 있는 앨리스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너나 없이 활발하고 어린이'다운' 소녀를 떠올린다. 그런데 루이스 캐롤이 누구를 모델로 이야기를 썼는지를 들여다보면 조금 달라진 감각을 갖게 된다. 루이스 캐롤은 자신의 본명을 라틴어로 재해석하면서 만든 이름이고, 앨리스는 자신이 근무하던 직장 상사인 수학과 학과장의 둘째 딸을 그려낸 인물이다. 캐롤이 만들어낸 이야기 속 앨리스는 빅토리아시대에는 흔하디 흔한 순수한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에 다름 아닐 수도 있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게 죄는 아니지 않은가. 더구나 캐롤에 의해 표현된 앨리스는 학대자의 시선 아래 노출된 가엾은 인물이 아니다. 앨리스를 그리는 캐롤의 전개에는 탁한 욕망의 관점이라고 하기에는 또 다른 차원의 시선들이 있다. 앨리스는 하트 여왕이 목을 치라는 명령을 내릴 때 조차 강압에 맞서는 용기를 가진다. 시대는 순진무구한 덕목으로 치장된 소녀상을 요구하지만,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는 앨리스는 동시대의 비동시성을 표현하는 인물이 된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캐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원더랜드에서 마지막 하얀 기사의 등장은 예정되어 있었다. 하얀 기사는 앨리스를 돕고자 한다. 아니 구원하고자 한다. 앨리스가 여행 중 제일 먼저 떠올리는 장면이 하얀 기사의 부드럽고 친절한 미소였다는 사실은 뭔가 시사적이다. 그러나 캐롤은 수학자답게 혹은 현실주의자답게, 앨리스를 하얀 기사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지도록 만들지 못한다. 캐롤은 거꾸로 가는 세상에서 모험을 해야 할 앨리스를 위한 이야기를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누가 알 수 있을까. 어떤 세상에 서 있음이 다른 세상으로 가기 위한 장치라도 되는 듯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문학이라는 세계가 어떻게 삶을 흔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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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초코레트 2025-07-21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쓴 글은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아챌 감각이 동시대성인지 반시대성인지 헷갈리고
싸구려 글이 갖는 효용이 싸구려 커피만큼 있다면
 

<브뤼메르 18일>은 워낙에 잘 알려진 역사가 반복된다는 문구로 자주 불려나온다. 그런데 '반복'이라고 말하지만 동일하게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다시 돌아오는 역사란 무엇일까. 이상한 문법인데 또 자연스럽다. 무엇이 반복인지 어떻게 반복인지 반복해 묻게 된다.


"영원한 재출발의 철학자" 마르크스는 "잘 팠다, 늙은 두더지여!"를 외치면서 끝없이 새로 시작하고자 한다. 자본주의 체제가 무력해지기 전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마르크스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마르크스'의 생명이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십 년 전의 내가 그랬듯이- 자본주의라는 무대는 사라지지 않을거고, 그래서 마르크스 변증법도 소멸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라는 조언을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십 년 후 내가 그럴 수도 있으리라고 믿는 편인데- 마르크스는 새롭게 시작되는 세계에서 잠들게 될 것이다.


마르크스는 계급을 담론의 질서 위에 올려놓으면서, 국가도 정치도 경제도 심지어 인간도 계속 갱신되어야 할 대자적 무엇에 집중하도록 유도했다. 마르크스가 다룬 특별한 서사로서 '혁명주체'는 역사와 사회 앞에서 성숙한 계급 구성원으로서 분열 모순을 극복해야만 한다.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을 통해 혁명적 국가를 구상한 사회개혁가였는가. 내 생각에 불과하지만, 비관적 역사 과정에서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들을 냉소적으로 채색하는 현실주의 연구자에 가깝다. 이런 생각 덕분에 <루이 보나파르트 브뤼메르 18일>은 하나의 궤로 읽혀지기를 거부한다. 그는 역사 기억을 무대 위로 옮겨 온 후 온갖 셰익스피어적 배우들을 동원한 인간극을 반복한다. 마르크스는 영웅의 역할을 수행한 보나파르트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시대 정세 속에서 사회적 관계들에 집중한다


P. 158 역사적 전통은 프랑스 농민들에게 나폴레옹이라 불리는 한 남자가 그들에게 모든 영광을 되찾아 줄 것이라는 기적에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어떤 자가 불쑥 나타나서 자신을 나폴레옹으로 칭했는데, 그 이유는 단지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말년의 한 인터뷰에서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마르크스는 '투쟁'이라고 답했다. 마르크스 당대의 현실을 볼 때 그 투쟁은 노동계급의 해방을 통한 자유를 향해 있었을 것이다. 유럽 내 혁명가들에게 공산주의란 하나의 국가정치체가 아니었다. 국제 연대는 그렇게 아슬아슬한 형태로 지속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마르크스와 투쟁가들의 혁명전은 짧았고 무참했다. 브뤼메르 18일을 쓰게 된 마르크스는 역사 발전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미리 말하고 싶었을까. 저 무수한 나폴레옹들이 싸워서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싸움을 투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들이 있을까. 


1871년 노동자 자치정부를 이끌고 끝까지 코뮌을 지키려다 살해당한 파리코뮌의 노동자들은 '투쟁-존재'를 실제로 증명한다. <프랑스 내전>에서 이러한 마르크스의 관점이 투명해 보인다. 투쟁-존재는 희망사항이 아니라 현실존재였다. 그런데 무수한 나폴레옹들이나 그를 지지했던 농민들은 어떤가. 자본주의적 부패를 끌어가는, 전쟁을 도구삼아 권력을 쟁탈하려는 세력들은 어떤가. 그들이 자신들을 위한 필연의 왕국을 세우려고 했다면 주장한다면 그들은 어째서 투쟁-존재가 아닐 수 있는가. 마르크스 입장에서 투쟁은 역사를 만드는 일이며, 그것은 추상적 인류애와 같은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에게 투쟁-존재는 역사를 세우는 실천 주체이다. 이 주체들은 인간 본질로서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반복되는 무엇을 찾으려면 자기자신을 찾으려는 무대가 필요하게 된다. 


더불어 '두더지'는 어떻게 투쟁-존재가 될 수 있는가. 무조건 실천하는 주체를 우선시 할 수도 없다는 숙고의 표현으로 사용된다. 말없이 땅을 파고 들어가는 두더지의 전진이야말로 투쟁-존재의 반성적 실천의 모습이다. 예니가 마르크스에게 보낸 편지에도 두더지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고 한다.  


“모든 곳에서 지진의 신호가 보이고 사원과 상점이라는 기단 위에 서 있는 사회의 와해 신호가 도처에서 보이지 않니? 나는 시대의 두더지(Der Maulwurf Zeit)가 더 이상 지하를 파지(wühlen) 않을 거라고 믿어.”


이 시대의 두더지들은 무수하다고 믿는 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출현하지 않는 듯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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