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 이어서 쓰기 2.


역사적 유물론과 유대 메시아주의를 결합되기 어려운 '이질성'으로 설명하는 학자들에게 실망하게 된다. 이 점은 나중으로 미루자. 논의를 더 듣자면, 그들은 정치적 메시아주의의 현실성을 현대성을 통해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중간하게 양자를 통합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를 '역사적 구세주'로 만드는 방식의 사고로 이어지게 된다면 그러한 이론은 선언적인 의미 이외의 현실적 설득력을 상실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접근 방식은 벤야민의 이론을 '세속화'라는 과제의 관점에서 이해해 보자는 것이다. 그것은 세속화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요구한다. 또 현대성을 세속성과 초월성 사이의 역설적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특수한 이해 방식을 요구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벤야민에게서 드러나는 새로운 세속화의 과제가 궁극에서는 억압 받는 자들의 자기해방이라는 역사적 유물론의 과제를 일관되게 사유하고자 했던 시도였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193)


이 단락에서 단연 두드러진 표현은 "역설적 관계 속에서"이다. "특수한 이해 방식"이다. 벤야민이 보기에 맑스주의에서도 그 특수한, 역설적 관계 흔적들이 있었다. 계급 없는 사회는 메시아적 시간 관념이 세속화된 시간이다. "벤야민은 이 세속화라는 과제가 그런대로 괜찮았다 das war gut so고 적어 놓음으로써, 자신이 세속화라는 맑스의 과제를 이어받고 있음을 암시한다."(195) 


말하자면 '계급 없는 사회'를 굳이 관념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배 신학의 교리와 어긋나지 않는다. 메시아적 시간은 유대주의에서 현실적 효력이 발생할 뿐이었다. 그러나 벤야민이 말하는 메시아적 시간과 계급 없는 사회 관념은 서구 전위대로 나서게 된다. 서양 역사에서 보자면 숱한 부침을 겪어 왔던 유대 메시아주의가 빛을 안게 된다. 그들의 원천은 변방에 있었다. 벤야민은 이 현실을 특수한 방식으로 역전시킨다. 계급 없는 사회는 이렇듯 벤야민에 의해서 메시아적 시간을 수월하게 끌어온다. 메시아적 시간의 현실성은 메시아주의의 실제적 구현이다.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나만 그래? 그렇다면 할 수 없고. 뭐가 그런대로 괜찮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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