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문재인의 운명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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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바다를 생성의 어머니라고 한다. 바다는 원시의 모든 생명이 시작된 곳이며 바다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녹아서 융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다는 선하고 악한 것, 온순하고 거친 것, 진실되고 거짓된 것을 포함하여 어떤 존재도 거부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바다를 향해서 가고 강물도 예외는 아니다. 강물은 육지에서 일어난 모든 것들을 보고 느끼며 껴안고 바다로 간다. 여기에는 인류의 오랜 세월 동안의 치욕과 영예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강물을 역사에 비유하기도 한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지만 그 흐름은 평탄하지만은 않다. 수면은 도도하게 조용히 흐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굉음을 내면서 천지를 요동치게 한다. 어느 순간에라도 깊은 곳에서는 소용돌이가 온갖 잡스러운 것들을 뒤섞여 놓고 갈등을 아우르면서 어떤 것도 강물의 위대함을 넘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강물의 진면목이다. 단재 신채호는 역사의 피상적인 면보다는 그 강물 속에 잠재된 측면을 통찰하여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고 하였다. 역사는 매순간이 정과 반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반목이 물결을 이룬다. 그  역사의 강물, 대한민국의 강물에 조각배 하나가 나타났다. 그 배는 기름이 있어야 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지지'라는 민주주의가 있어야 만이 앞으로 갈 수 있는 배였다. 돈과 권력을 배경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론조작이나 매수의 힘이 아닌 국민의 힘이 없는 경우에는 곧바로 침몰하는 배였다. 그 배의 선장, 노무현은 가난하여서 공부에 매달리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가고 온갖 고문과 인권 유린의 군부독재, 잔인한 기득권에 항거하였다. 그는 줄곧 아웃사이더였으며 매번 총선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셨으나 차차 그의 진정성은 세상에 알려지고 수많은 조그마한 노란 돼지 저금통이 모여서 참여정부라는 깃발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였다. 그는 '강물처럼'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p464) 그것은 말로만 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토론과 설득이라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었다.

강물은 아무리 굽이쳐도 결코 바다를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간다. 눈, 코, 입을 베어가는 겨울 바람이 아무리 세차게 불어도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간다. 그 곳에서 추위는 혹독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다가오는 감각은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다. 사람은 추위라는 감각을 항상 외적인 피부로만 느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 두 명의다. 감각적 현상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심리적 상태에 달라지는 경우가 흔하다. 예컨데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왔으나 봄이 왔다고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인 이상화는 온몸에  햇살이 내리쬐고 보리밭은 가뿐하며 나비, 제비가 깝치는 봄이 찾아 왔으나 들을 빼앗겨 봄도 빼앗겼다고 했다. 자연의 봄에는 꽃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지만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만은 그렇지 않다. 이런 기분이 들게 하는 역사적 사건이 이 땅의 역사에서는 비일비재 하게 일어났다. 30년 전에 독재자의 저승 행차로 정치적 봄이 온 것으로 생각하여 '서울의 봄'이라고 지칭하기도 하였으나 이것은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최근에는 정권의 교체가 이루어지고 민주 세력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여서 권력을 위한 권력이 아닌 국민을 위한 권력이 행사 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것은 일시적인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 역사의 시계는 거꾸로 가고 서민을 위한 권력자는 서민의 배신을 당하고 서민의 지지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자의 음모에 빠져서 갈귀갈귀 찢겼다. 그 때야 살아 있는 권력자의 본 보습을 보기 시작하였지만 기차는 이미 떠난 후였다.  

눈보라가 북방과 남방에서 세차게 몰아 치는 겨울 밤은 혹독하다. 남방에서 부는 신자유주의 바람과 북방에서 부는 '핵'을 통한 협박의 바람이 만나는 길목에 자리잡은 노무현은 한 나라의 지도자라로서 온갖 고뇌를 짊어지면서도 때로는 비분강개하는 마음으로 때로는 냉정한 마음으로 양날의 칼을 바로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가난한 민주주의에 부는 수구의 외풍과 진보의 내홍은 서럽게만 다가왔다. 사회 밑바닥에 흐르는 도도한 보수적 풍토와 여론을 주도하는 강고한 수구세력과 욕하고 외면하는 진보세력에 노무현은 망망대해에 외로이 떠 있는 외로운 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존재로 혼자 살아남는다는 것은 신체적, 정신적으로도 힘들 뿐만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는 것조차 어렵다. 특히 심리적인 극복 의지는 바람 앞의 초불처럼 나불거릴 뿐이다. 이 때는 정말로 온 가족이 함께 항 수 있는 따끈따근한 아랫묵이 절로 절실하다. 이런 때에 바로 옆에 자신과 함께 자신의 길음에 보조를 맞추거나 최소한 자신에게 응원을 보내 주는 존재는 전투에 임하는 장군에게 千軍萬馬의 가치 이상이다. 즉 친구의 존재는 치열한 경쟁과 어둠의 세력과 생사를 벌이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최소한의 존재이다. 공자는 인생에서 자신을 알아 주는 진정한 친구가 3명 이상이면 그 사람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정도였다. 바보 노무현은 자신 보다 여섯 살이나 어리고 고시 5년 후배인 문재인을 한치의 망설임 없이 '노무현의 친구'라고 불렀다(p31).

바보 노무현의 친구의 인생에서 노무현은 무엇인가? 또 하나의 30년 지기의 '운명'은 우리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외나무 다리에서 서성이고 있다. 친구의 눈에 비친 바보 노무현을 본다. 바보 노무현은 자서전 '운명'을 출간하였지만 자신이 직접 탈고한 것이 아니어서 정치적 현황이나 사건이 일어나고 있을 때에 그의 심적 상태나 마음가짐을 알 수 없어서 많이 아쉬웠다. 비록 친구의 눈이라는 간접적인 매개체를 통해서 비쳐지는 그의 모습이지만 지금은 이것만이라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노무현의 친구는 중, 고등하교 6년간 무척 많은 책을 읽었다. 학교 성적에 악영향을 끼칠 정도였다. 하지밤 독서를 통해 세상을 알게 되었고 인생을 알게 되고 사회 의식도 생겼다. 가난했던 시절은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대학 시절 그리고 시위 전력으로 사법 시험 차석으로 합격하고도 판사에 임용되지 못하고 변호사를 개업하였다. 변호사가 되게 한 모든 과정들이 결국은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기 위해 미리 정해진 운명적 수순처럼 느껴졌다.(p193.)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친구의 삶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운명이다.(p441) 동업자로 변신한 친구는 대우조선 사건과 탄핵 사건에서 그의 의뢰인이 되었고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을 거치면서 그의 영원한 동행자가 되었지만 그를 먼저 보내는 이별의 아픔도 맛보았다. 친구에게 좀더 가깝게 다가가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기도 하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너무 많았다.  

참여 정부는 시민사회의 힘으로 출범한 정부였다. 바보 노무현은 대선 때 소속 정당인 민주당의 뒷받침보다는 시민 사회의 지지에 힘입어 당선되었다.(p303) 바보 노무현은 모든 권력적 수단을 포기했다.(p279) 오로지 도덕적 신뢰 하나만이 국정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밑천이었다. 도덕적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참여정부의 생명을 유지하여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였다. 그런데 도덕적 가치라는 것은 모래알 같은 것이다. 모래는 언제든지 바람에 날리고 자취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국민의 믿음을 잃어버리는 순간에 도덕은 바람에 날아가고 마녀 재판 식의 비난의 목소리만 그 자리를 채울 뿐이다. 특히 그가 지역 구도 타파를 위하여 선거제도의 개혁을 전제로 한나라당에 제시한 대연정, 대북정책에서 6자회담 성사를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수용한 이라크 파병은 시민사회와의 관계를 소원하게 하였다. 거기에다가 보수언론의 무자비하게 언론을 자유를 악용하는 보도 행태와 재임 초의 다수당의 횡포는 그의 도덕적 자부심과 도덕적 기반을 붕괴시키기 위하여 온갖 음모와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자신이 기르던 똥개가 아파도 모든 것은 노무현 탓으로 돌렸다. 민주주의와 서민들을 위해서 개인의 영달을 뒤로 하였지만 깨끗하지 못하다는 누더기를 뒤집어 써야만 했다. 자신들의 모든 잘못을 전 정부 탓, 북한의 탓, 세계 경제의 탓, 탓, 탓으로 돌리는 현재의 정부와는 전혀 반대의 상황의 연출되었다.
 
인생을 뒤돌아 보면 원칙에 입각하는 선택이 가장 최선의 선택이다.(p99.) 그 땐 용기가 없어서 바로 눈 앞의 이익을 외면하기 힘들어도 나중에 보면 권칙에 충실한 것은 번번이 옳은 선택이었다는 것으로 드런난다. 당장 불리해 보인다고 하여 우리의 추구하는 가치까지 내버린다면 패배는 말할 것도 없고 다음 해에 오는 봄바람을 맞이할 수 있다는 희망조차 사라진다. 원칙의 충실함은 나의 빈 틈을 줄일 수 있기도 하다. 가치와 명분의 상실은 봄에 훨훨 나는 나비, 제비에게도 부끄러워진다. 봄이 오는 것을 싫어 하는 凍土의 세력은 따스한 햇살이 온 세상에 내리쬐는 봄을 싫어 한다. 돈과 권력이 있는 자만이 따스한 벽난로의 여유를 즐기기를 원한다. 날마다 피의사실을 흘리고 다니면서 정작 자신들의 잘못에는 눈을 감아 버리는 이들에게 권력은 나눌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봄날이 오는 것을 온몸으로 방해한다. 권력을 나누는 민주주의는 자신들의 우월감이 상실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그들에게 대항하여 봄날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깨끗해야 한다. 약점이 있으면 협박을 당하거나 자칫 잘못하면 신세를 망치기 십상이다. 人情에 치우쳐서 측은지심을 기대하는 것은 민주화 운동과 오랜 세월을 함계하는 인생의 벗에게도  누를 끼칠 수가 있다. 당장은 힘들거나 어려워도  원칙에 입각해서 가는 것이 나의 약점을 줄이고 장점을 살리는 인생의 정답 중의 하나이다.   

바보 노무현은 흐르는 강물을 따라 역사의 뒤안길로 흘러 갔지만 우리가 살아 가는 세상에 많은 교훈과 과제를 남겼다. 그의 정신과 가치는 '사람 사는 세상'이란 깃발 아래 남아 있다. 그 세상은 경제적 복지를 넘어서 빈부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똑같은 존엄한 세상을 의미한다. 그가 치열하게 꿈꾼 세상에는 아직도 봄바람은 불지 않고 있다. 우리가 운명처럼 살고 있는 세상은 기상 이변이 잦아지고 있으며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지구 온난화가 원인이라고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바닷물이 따듯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 또한 현상만 추구하는 책임 회피성으로 보인다. 그 원인은 외부에서 부는 바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 인간의 문제로 보인다. 해수면 온도의 상승은 남극과 북극의 얼음도 녹이고 있지만 인간의 탐욕은 사그러들 줄을 모른다. 북극해에는 바닷길이 생기고 시베리아의 영구 동토층도 녹고 있지만 소비자인 국민의 마음은 더욱 꽁꽁 얼고 있다. 한여름에 뜨겁게 내리 쬐는 태양도 수명이 있다고 하니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가 보다. 영원한 것처럼 보이는 자연의 세계가 이러할진데 인간의 세계는 두말할나위도 없다. 역사의 강물도 한층 더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예전에는 權不十年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權不五年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성싶다. 권력의 상실과 동시에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권력을 부리지 않고 진정한 민주주의자를 꿈꾸는 자에게는 정말로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말이다. 그런데 권력을 악용하여 남을 못살게한 동토층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통토층에 고인 물은 녹아서 강으로 모여들고 결국 진실은 드러날 것이다. 역사의 강물은 진실된 것과 거짓된 것을 토해내고 골라내서 바다로 흘러 갈 것이다. 다만 순수했던 한 청년의 운명이 5년의 순행과 4년의 퇴행이 만나는 시점에서 지나간 강물의 자취를 세겨보고 새로운 출발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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