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백가기행 조용헌의 백가기행 1
조용헌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어린 시절의 고향집은 허스름했다. 겨우 새마을 운동의 끝무렵에 초가집에서 쓰레트집으로 바뀌었지만 본래의 내용에는 큰 변화는 없었다. 엄마는 가끔 집 장만 방송프로그램에 신청하고 싶다는 정도였다. 볼 품 없는 함부로 만든 바라지 문, 흙 냄새가 진동하는 수토방, 허름한 말깡, 간간히 잡초를 뽑아야 할 정도로 넓은 마당, 밭으로 쓰일 정도의 뒤뜰이 있었다. 면적은 족히 200평이 넘었다. 몇 가구 안 되는 동네는 몇 집을 빼놓고는 지붕이 다 비슷했지만 텃밭이 있고 너른 뜰을 가진 집은 주인의 개성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집 주변의 환경을 이용하면서도 집을 지은 자의 개성이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집집마다 정감이 가고 모두 한 이웃처럼 지냈다. 지금 서울에는 사람도 많지만 집도 매우 많다.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서 외곽 순환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거기에도 집은 널리고 널렸다. 그래도 그 셀수 없이 많은 집은 집집마다 개성을 가지기 보다는 비슷한 점이 더 많다. 집에 사는 사람들의 개성은 공장식으로 막 만들어진 몰개성적인 특성을 갈하게 풍기고 있는 것이다. 이는 소수의 몇 사람의 계획 하에 무더기로 만들어진 집이기 때문이다. 단독 주택은 이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그들에게서는 자연 친화감에서 오는 인간다움을 느끼기는 어렵다. 즉 서울의 수많은 집들은 집에 거주하는 사람을 배려하기 보다는 집을 짓는 사람을 더 배려한 경향이 강하다. 순전히 집 장사꾼들이 마구잡이로 찍어낸 집은 인간미가 있는 집이라고 보기 어렵다. 어떤 경우에는 불량품이 많아서 위층과 아래층 간에 소음으로 다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또한 콘크리트로 지은 집은 아이들의 건강에도 좋지 않아서 호흡기와 피부의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면 어떤 집이 좋은 집일까?

강호동양학으로 불리는 사주, 풍수, 한의학에 해박한 지식을 갖춘 동양 철학자인 저자는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서울에 있는 22개의 집을 직접 찾아가서 집을 둘러 싼 산세와 물의 흐름, 집의 역사, 역대 집 주인의 인생, 건축적 특징, 정원의 조성 방법, 심어진 나무, 실내 장식과 가구 등을 꼼꼼히 살피면서 자신의 철학 사상에 맞추어서 설명하고 있다. 궁금한 것은 직접 집 주인과 대화를 통해서 풀려고 했다. 이 책은 직접적으로는 집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우리 인생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 것인가를 '집'에 포커스를 맞추어서 풍수학을 통하여 접근하고 있다. 누구나 갖고 태어나는 운명의 여덟 글자를 통해서 자신의 운명에 어울리는 집을 보여 주는 주역 풀이는 흥미롭다. 

우리가 사는 집은 단순히 잠만 자는 곳이 아니다. 해가 지면 들어가고 해가 뜨면 밖으로 나가는 공간이 아니다. 그 곳은 생활의 공간이다. 생활 공간은 우리의 생노병사가 함께 일어나면서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생각이 바뀌어야 업보와 운명이 바뀐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려면 우리의 바이오 리듬에 적합한 공간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의 조상들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서 자신과의 조화를 통하여 끊임 없이 공간의 변화를 추구하였다. 자신과 집 터의 궁합이 맞지 않는 경우에는 자신의 내공을 쌓아서 이에 대처하고자 하였다. 담담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여 평소에 욕심내지 않고 담담한 심정으로 매사를 대하면 터의 기운을 누를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지나친 욕심을 멀리하고 공동체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으면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으로 최대한의 행복을 만끽하고자 하였다.  
                                                                                                                                 
 우리 조상님들은 '집'도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대보름날이나  추석같은 명절에는 조왕신과 성주신에게도 성심을 다하였다. 서로 모르는 남녀가 결혼을 위해서 만났을 때에 서로의 궁합을 보는 것처럼 '집'이라는 생명체는 그 곳에 사는 사람과의 조화, 즉 '궁합'이 맞아야 한다. 서로 간에 궁합이 맞는 경우에는 겉으로 보이는 운치가 일품이다. 가령 달밤에 비치는 달빛과 노란 창포의 궁합은 가히 환상적이다. 황금색이 주는 풍요에는 푸른색이 주는 젊음이 어우러져야 한다. 사물 간의 궁합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이는 집과 나의 음양 오행이 서로 넘치거나 부족함을 상호 보완적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집안의 실내 장식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집주인과 그 터가 지닌 강약에 따라 궁합이 달라진다.(p111) 주인이 타고난 기질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터 궁합이 달라진다. 사주팔자를 보면,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집을 알 수 있다. 물이나 불이 부족한 사람은 풍수의 이치에 따라서 물과 불이 충만한 땅의 기운을 찾아가면 된다. 사람의 병은 스트레스로 인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머리에 불이 올라와서 생기는 병이다. 이 경우에는 물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자면 효과가 좋다.(p106) 그런데 물의 기운이 강한 곳에는 불의 기운이 많은 사람이 살면 궁합이 맞다. 해남의 대흥사 수구에 자리잡은 유선여관에서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인생의 무상함과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체험하고픈 사람에게는 호젓하기만 하다. 불은 번뇌를 사라지게 한다.불의 따뜻함은 우울증과 부인병에도 좋아서 아궁이는 심신 건간에 일조했던 장치이다.

집은 사는 이의 인생 철학을 담는다.(p112) 우리는 집에 모든 정성을 쏟아 붇는다. 집의 위치, 구조, 실내 장식은 처음부터 지금의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집 안의 벽에 못을 하나 박는 경우에도 요리 조리 따지고 미관을 생각한다. 장성 축령산의 오두막 집은 건축 비용이 비록 2만 8천원에 불과하고 방 한 칸 크기에 지나지 않지만 마음과 통양이 서로 자연스럽게 소통된다는 믿음이 있다. 방이 작아서 우주를 생각하게 되고 자기 내면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무등산 자락에 자리잡은 허백련의 춘설헌은 예인의 풍류와 민족 사상의 숨결을 담고 있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배산임수로 하는 호쾌한 풍광 아래 자리잡은 쌍산재는 공동체에 대한 배려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마루가 특징인 나주 박장흥 고택은 좌우익의 중간에서 거중 조정을 했다. 자신의 치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정신이 배어 있는 집은 역사에 배신당하지 않고 격동의 100년 세월에도 살아 남았다. 그런데 소설 토지의 모델이 된 하동 조부잣집은 자연의 품 속에서 다시 자연을 품 안으로 글어들였지만 풍파를 못 이기고 현재 본채만 남아 있다.  

집은 사는 사람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집은 사는 사람이 편리해야 한다. 집은 건강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p81) 우리는 집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다. 집에서 자고 휴식을 취하고 외부의 존재로 부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할 수 최소한의 공간이다. 작은 우주라고 불리는 우리 인체는 화, 수, 목, 금, 토의 음양오행의 교감을 통해서 우주만물과 교감을 한다. 즉 인체는 자연과 상호 소통의 관계를 이룰 때가 가장 편안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런 논리는 이 세상에서 사람에게 최대한의 휴식을 줄 수 있는 공간은 '自然'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인간은 경쟁관계인 사회로부터 잠깐이나마 거리를 두면서 자연에서 마음을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 자연과 집이 최대공약수를 찾는 것이 중요한 미학으로 떠오른다. 자연을 집 안으로 끌어들여서 家內救援을 받는 것이다.(p38) 나주 죽설헌은 담양의 소쇄원처럼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같이 밥 먹고, 같이 놀고, 같이 정담을 나누는 집이자 정원이다. 양평의 땅 집은 실내에 빛이 환하게 내리쬐는 중정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의 고요함을 얻을 수 있다. 열린 소통을 만드는 회통적 공간, 인화당이 있고 얼, 흥, 정, 멋, 맛, 격이 있는 집으로 지어어진 창덕궁 옆의 은덕 문화원은 다기장이 마음에 든다. 계동 낙고재에서는 전통 한옥이 현대 한옥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부산의 조효선 씨의 아파트 다실은 단순함으로 편안하고 효율적인 경지에 이르렀다.  

마더 테레사 수녀는 '인생은 낯선 여관에서의 하룻밤이다'고 했다. 여관은 잠깐 머무르는 곳이다. 인생은 잠깐 머무르는 곳이기 때문에 머무르는 곳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생에서 행복했던 기억은 집착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집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집은 최소한의 행복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으로 여기는 시대는 과거 속의 이야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MB정부는 사활을 걸고 서민들의 시장 바구니는 아예 포기하고 어떻게 든 높은 부동산 가격을 유지하려고 올인하고 있지만 오히려 집 값은 떨어지고 있다. 높은 부동산 가격은 소수의 부유층에게만 행복을 느끼게 만든다. 집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념을 바꾸어 버렸다. 예전에는 집이라는 것은 경제적 여유를 나타내는 증표였지만 이제는 재테크의 수단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도 사람은 아무 데서나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행복은 아무데서나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이 살고 싶은 곳에 자기 손으로 집을 짓고 건강하고 화목하게 사는 것이 큰 복이다.(p2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