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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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이 훌쩍 지났다. 옛말처럼 물질적인 많은 것들이 변했다. 특히 코로나를 업은 4차 산업혁명은 가히 상전벽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본질은 여전히 그대로다. 고전을 읽고 그녀의 글들이 전해주는 느낌들이 잊기 어려운 이유인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기억상으로는 삶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희로애락으로 가득한 삶이라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다. 그래도 잘 살아가야 한다는 일념만은 가득하다. 그 연유로 찾아가는 쥐구멍 중의 하나가 인생 선배이다. 이미 그들은 내가 고민했던 이 세상 온갖 종류의 문제에 직면해 봤었고, 자기들 나름의 대처법을 사용해 봤기 때문이다. 일종의 대리 경험을 통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이고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오래전에 손 내밀어 탐닉의 공간으로 이끄는 같이 놀래는 스테인드글라스 위의 모자이크처럼 다가온다. 가까이서 보면 조각들이지만 한 발치만 뒤로 가면 그림 같다.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61개 개를 하나로 연결하여 시대 변신 방법을 찾는다.

 

2001. 한여름 시작하여 3번의 코스모스가 피기 전 일간지에 연재되었던 것들이다. 일생동안 독자의 입장에서 소중하게 자신 안에 쌓인 책들에 자신의 감동과 삶을 엮어서 또 다른 독자들에게 손을 내민다.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려다가 몸짱 아줌마, 인간 시간표, 벤저민 플랭클린 그리고 나 자신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일상은 연상작용을 타고 관련 문학작품을 불렀다가 자신으로 마무리한다.

 

만나게 되는 문학작품은 이미 익숙한 것이다. 그러기에 초점은 단연 그녀를 거쳐서 한번 걸러진 그녀만의 공감 능력이다. 나도 오 헨리처럼 그래도 세상은 여전히 살만한 곳이라는 확신(p235)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문학의 숲을 거니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사랑이다. 누구에게는 최고의 행복으로 가는

죽일 놈의 사랑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죽음 이후에도 남는다. 사랑 없는 평화보다 평화가 없어도 사랑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현재의 고통이 아무리 클지라도 고통은 곧 사라지지만 남는 것은 사랑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삶의 모든 것이 사랑으로 관통하는 문학의 숲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죽음 이후를 향한다. 결국 숲속에는 모든 것을 걸러내고 순수한 자신이 남는다.

 

안타깝게도 그녀가 살아가고 바라본 세상은 우울하고 암울하기만 하다. 세상은 교과서 속에서 보았던 곳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서로 잘났다고 떠들며 요란하게 굴러가는 기찻길 같은 세상이다. 진리보다는 허위가, 선보다는 악이, 정의보다는 불의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곳이다. 기회주의, 한탕주의, 패배주의는 젊은이를 방황하게 만든다. 말보다는 무기로, 타협보다는 대결로 끊임없이 전쟁을 일삼아 어린 소녀를 2년여 동안이나 숨어 살게 하다가 결국에는 수용소에서 죽게 만드는 곳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이 무서워진다고 한다. 신체장애는 곧 가난과 고립을 넘어서 도덕적 결핍, 심지어는 악이나 공포를 의미하는 공간에서 무관심과 무감동으로 무장하고 악착같이 살았을 것을 생각하니 감정이입이 무겁기만 하다.

 

인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슬퍼도, 또는 상처받아도 서로를 위로하며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는가를 추구할 줄 알기 때문이다.----(p10)

 

어떻게 사랑하며 사는가(p69). 사랑 그 단어만으로 설레다 못해 봄 처녀, 총각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하지만 현실 세상은 아름다움도 없지는 않지만 누추함과 추악함이 더 가득하다. 순수한 사랑이 숨쉬기 어려운 음향과 분노의 시대라는 테제가 어울린다. 하루에도 수십 번 비분강개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역설적으로 미움에 대한 사랑, ‘모든 사랑과의 만남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p261)’에는 도통 접근하기 난해한 심오함이 느껴진다. 사랑이 공정한 룰을 넘어서 사치라는 생각이 절로 온다. 아주 고도의 심리적, 인격적 경지에 있어야 할 것 같다. 넘쳐나는 기분으로 하루하루가 버거운 소시민에게 그녀가 권하고 있는 것이 문학이다.

 

예순한 번째 모자이크 조각에서 문학의 힘으로 여정을 마무리한다. 문학을 통해서 등장인물의 치열한 삶, 투쟁과 승리를 통해서 삶의 용기, 사랑, 인간다운 삶을 배우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배운 사랑은 마음의 양식이 된다. 사랑은 부메랑 같은 것이어서 베풀면 언젠가는 꼭 내게 다시 돌아온다.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불편한 장애가 된다. 아인슈타인이라는 물리학자도 학문의 경계 너머로 통합의 말을 남긴다. 이제껏 인간이 성취하고 창조한 모든 것의 뿌리는 시와 사랑의 강 속에 있다(p92).

 

어차피 인생은 장애물 경기이다(p243). 하루하루가 신체장애, 인간관계 장애 또는 돈이나 권력이 없거나 너무 많은 장애의 연속이다. 매일매일이 눈물 없이는 보기 힘든 신파극이 줄기 줄기이다. 근근이 버티며 사는 것은 미니 시리즈 속의 이름 없는 행인1과 같을지도 모른다.

 

사랑을 근본으로 삼아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며 산다. 힘들다고 보란 듯이 삶을 포기하는 것은 남아 있는 사람들이 사랑할 수 있는 몫을 조금씩 앗아가는 수준을 넘어서 슬픔을 안길 수도 있는 것이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을지라도 남은 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왕에 살아야 한다면, 소극적으로 타인을 향한 것보다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향한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야 할 텐데(p249)’라는 명제에 더 진한 방점을 찍고 싶다. 그렇게 살아남으면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조연이 될지도 모른다.

 

내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본능으로 사는 벌레가 아닌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변신을 꿈꿔본다.----(p230)

 

어디로 가고 있는가?(p190) 나는 잘하고 있는가? 매일 나 자신에게 묻는다. 4차 산업혁명의 공간에서 변화는 변화를 부르고, 새로운 변화의 행진은 브레이크가 없는 상황이다. 고전 속의 위인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은 맨 처음 자동차와 컴퓨터를 보았을 때의 모습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잖아도 멀미에 취약한 존재가 코로나 엔진을 벗은 혁명은 또 다른 모습으로 급전환하는 환경에도 잘 적응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뉴노멀 속에서 잘 살아남는 자들은 많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다. 급격한 굴곡의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원칙과 좌표로 매진하기 위한 길에서 문학을 업은 그녀의 글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날마다 경제학과 사회학 서적을 수불석권(手不釋卷)하는 와중에도 문학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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