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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1 ㅣ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평점 :
베르베르의 상상력은 화수분 같다. 코로나19를 만나서 그 속도를 배가시키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공간에서도 그의 상상력은 여전하다. 상상력이 현실성이 있든 없든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다. 수십 년 동안 그의 상상력에 덕후가 돼서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매년 한 권씩 만들어지는 공간은 쫓기 바쁘게 하고 있다. 나 자신의 뇌 속으로 최대한 많은 것을 빨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의 상상력을 그냥 흘러가는 것 이상으로 만들기 위한 나만의 저수지를 만드는 것이 요원하다. 이번에 만난 두 권도 각 권에서는 예전의 방식처럼 줄거리 위주로 저장한다. 코끼리 머리만 만져 보고서는 전부를 그릴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지구의 일부에 지나지 않은 인간과 쥐가 대전쟁을 일으킨다. 고양이, 앵무새, 돼지도 인간을 전쟁에 참여한다. 다만 다른 동물은 이름만 얹은 수준이지만 고양이는 일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집트 여신의 이름인 바스테트는 집사와 연합하고, 전쟁을 고양이의 눈으로 바라보고, 인간과 대화와 토론의 가치를 평가한다. 103번째 부족이 되기 위해서 전쟁에 참여한다. 자신민이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며, 장차 인간의 여왕이 되어 지구를 통치하기를 꿈꾼다.
정수리에 USB 단자를 달아서 자그마한 검은색 동글을 끼우면 인간과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인터페이스라는 장치는 제3의 눈이 돼서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우리의 주인공 고양이와 아들, 파트너, 경쟁 상대와 인간 집사, 앵무새, 돼지가 파리에서 ‘티무르’ 쥐 군단을 피해서 35일 동안 ‘마지막 희망호’를 타고 뉴욕으로 왔다. 그런데 여기에도 ‘알카포네’ 쥐 군단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수도 더 많고, 우두머리의 힘도 더 쎄다.
인간과 쥐, 두 개체는 환경, 상대방의 반응에 적응력이 탁월하다. 이에는 이, 즉각적으로 서로의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인간은 DNA 변이를 일으키는 고성능 쥐약으로 박멸 작전을 벌이지만 쥐들은 격리를 통해서 생존한다. 이번에는 탱크 공격으로 압살하며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쥐들은 탱크 배기구를 막아서 옴짝달짝도 못하게 해서 반격한다. 더나아가 지하 주차장 통풍구에 불을 질러 프리덤 타워를 쓰러트리려고 한다. 하늘의 도움으로 불을 진압한 인간은 두 쥐 왕을 암살하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베르베르에게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있듯이 우리의 주인공 고양이에게는 <엄마>와 <지구>가 있다. 저자는 힐러리 같은 역사적 인물을 등장시키고, 주인공은 일상의 공간에서는 엄마의 가르침을 떠올리고 절대적 위기에서는 지구에 기원한다.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고 미래를 추론해가는 모든 존재는 반드시 절대적 존재를 배경으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런 존재는 스스로 만든 신화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고양이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들은 돼지, 개와 같은 지구상의 다른 동물에 비해서 전혀 우월하지 않다. 어떤 측면에서는 고양이나 쥐보다 못했다. 자신들이 얼마나 비합리적 존재인지도 모르는 존재이다. 수천 년의 역사에서 현재 완고한 형태를 갖고 있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정치 체제는 백해무익하다. 그저 자신의 자존심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였다. 미래를 지배할 수 있게 하는 상상력과 창의적 아이디어를 행복보다는 불행을 위해서 사용하는 존재이다. 어린아이 같은 존재는 단지 정신세계가 다르다는 이유로 지구상의 유아독존처럼 행세한다.
인간이란 존재의 문제가-----자신들의 상상력을 행복보다 불행을 위해 쓴다.---(P124)
미래는 권력을 쥔 자들의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자들의 것이다(P312).
시작도 끝도 없는 우리의 정신이 무한히 확장할 가능성만이 존재할 뿐이다(P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