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 미술관 - 그림으로 읽는 의학과 인문학
박광혁 지음 / 어바웃어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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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과 어울리는 것보다 더 그러하다. 그것은 감상(感傷)하는 것을 좋아하게 만들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미술관을 찾고, 그리고는 꼭 그 감상의 느낌을 적는 것은 필수가 되었다. 그래야만 생각의 깊이를 더 깊게 만들 수 있고, 그 날의 생각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요즘의 상황에서는 그 습관적 행위들은 더 많은 현실 공간을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의 의지가 요즘보다 더 다이내믹한 시절을 살아보지 못했던 이들에게 위기는 위험만이 홀로 오는 것이 아니라 기회와 동행한다는 진실 앞에서 더 나아가게 한다.

    

의학의 시선으로 그림을 보는, 책의 제목은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다. 히포포크라테스를 대표로 하는 그 후예의 관점에서 보이는 그림 속의 세상과 아는 것 만큼의 인문학을 보게 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영원의 문>으로 책의 문을 달았다. 비탄에 바진 노인의 모습에서 차이코프스키의 의문스러운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그림에서 봐야 할 것들의 무게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환자의 침대 곁을 떠나지 말라는 히포크라테스의 금언으로 마무리하며 의사의 무게도 보여 준다. 우리에게 익숙하거나 생소한 화가들과 그 속에 등장하는 신화와 역사적 인물들의 그림들에는 삶과 죽음과 질병이 있다. 그렇게 미술과 음악, 문학의 인문학이 의학을 관통하며 어우러지는 지적 향연을 만끽하는 가운데서 의사로서의 다짐을 다잡고 있다.

    

그림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때로는 이야기가 그림의 느낌을 바꾸기도 합니다.

 

예술은 현실을 투영하기 마련입니다(277페이지). 과거의 순간을 밟고 현재의 공간을 숨 쉬는 이들에게 시간의 흐름 속에 놓여 있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은 빼놓을 수가 없는 소재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이 겪는 늙어감, 질병, 죽음은 필요불가결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특히 의사에게는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가오는 소실점은 죽음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죽음은 현실 투영의 공간에서 맨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엄청 가난하여 삼순구식하기 힘들어 위생까지 고려하지 못하는 이들의 삶을 괴롭히는 머릿니[]와 서캐, 모나리자 절도 혐의를 뒤집어 썼던 기욤 아폴리네르의 짧은 생을 불러온 스페인 독감, 스페인의 거장 고야를 괴롭혔던 이름 모를 열병, 오스트리아 역사를 대표하는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씨시 황후의 어처구니 없는 죽음과 코르셋, 루이15세의 여인으로 신분적 딜레마를 예술적이고 지적인 이미지의 부각으로 극복해 나간 마담 퐁파두르를 평생 괴롭혔던 편두통, 프랑스의 대문호 에밀 졸라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데 이용된 일산화탄소, 안톤 체호프의 죽음을 불러온 하얀 페스트 폐결핵은 죽음의 인도자가 되었다. 세포로 이루어진 모든 생명은 유한하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것은 누구나 100% 예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항상 남는 누군에게는 슬픔을 불러 온 죽음이라는 것은 그림으로 남아서 생면부지의 또 다른 누군가에게 논리적 생각과 인문학적 상상력을 불러오며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의사는 우리 가슴에 직접 청진기를 대고 환자의 고통을 속속들이 알아내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이 아닐까요?(90페이지) 저승사자도 아니면서도 생과 죽음의 중간에 서 있는 이들은 절체절명의 아픈 사람들에게는 구원자나 다름없다. 고대나 중세에는 신이 하던 역할을 과학의 시대에는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들이 대신하고 있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풍경을 맞이해서는 원격의료와 AI가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 의사는 필요하다. 인간에게는 AI를 비롯한 과학 기술에는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수천 년 전에 알 수 없는 많은 사람에 덧붙여졌고, 많은 오류가 확인되었어도 여전히 거기에 남긴 정신은 유효할 수 밖에 없다. 그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 없고 그 누구도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 그건 바로 헤어 나올 수 없는 저 깊은 절망의 터널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것은 진심정성이라는 치료의 본질은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악마도 울 때가 있습니다. 그만큼 삶이란 눈물겹도록 힘겨운 것이니까요?(132페이지) 죽음과 삶 사이의 수많은 변수 사이에서 자신의 치역을 찾아가는 공간은 결코 만만치 않다. 유의하고도 무의미한 관계의 현실을 밟고서 피어나는 그림 속에서 우리 인간의 삶의 얘기, 사랑의 갈망과 그로 인한 고뇌와 눈물 속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보는 것은 유쾌하지는 않음에도 현재 자신의 정의역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준다. 법과 도덕 사이에서 갈등하게 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은 일상의 삶의 외연이 단순하지 않기에 많은 생각에 생각을 부른다. 사악함이 질병의 옷을 입고 형법에서 도덕으로 넘어간다는 현실 이야기를 들을수록 분개를 하면서도 어떤 행동을 남기기도 한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인간의 존엄의 가치보다 더 중요한 생의 가치는 살아남아야만 비빌 수 있는 최소한의 희망이라도 있다는 자연적 정의에서 멈추지 않을 수가 없다. 허무맹랑한 상상력으로 과대망상의 절정으로 만들어진 돈키호테의 엉뚱한 동문서답형 행동은 현재 자신의 삶에 위안의 쉼표를 주기에 부족하지 않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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