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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기억 - 한국의 자본시장은 어떻게 반복되는가
이태호 지음 / 어바웃어북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아이유(IU) 노래를 좋아한다. 요즘 자주 듣는 그녀의 노래는 '블루밍(Blueming)과 'above the time(시간의 바깥)'이라는 노래다. 특히 후자는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매우 철학적으로 보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세월의 밖에서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어서 많은 매력 속으로 빠지게 한다. “과거를 밟지 않고 선다면 숨이 차게 춤을 추겠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거의 연속선이 삶 속에서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버무려짐 없이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짐작하게 한다. 현재는 과거를 밟고 미래 바라보며 채워가는 존재에게 과거의 기억은 기나긴 경험의 자산이 되어 오늘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하기에 과거를 그저 흘러간 시간으로만 내버려 둘 수가 없다. 시간의 밖에서 과거를 보면서 갈수록 버겁게만 느껴지는 시장의 기억에 나의 기억을 덮어 씌워 본다.
기차가 안다니는 시골 고향은 겨울 방학 때 처음 서울에 왔을 때에 고속버스가 없고 직행버스만이 다녔다. 그 당시에 용산에 직행버스 터미널이 있었다. 시골 촌놈이 서울에 오면 만남으로 눈을 휘둥그리게 하는 건물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국제빌딩이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서울역 앞에 있는 자주색의 대우빌딩을 보게 된다. 지금도 건물은 그 자리에 있지만 본래의 회사[대우]는 없어지고 회장은 얼마 전에 17조원 대의 추징금을 남기고 타계했다. 그 건물을 보기만 해도 20여 년 전의 IMF가 생각난다. 국제 구제 금융은 우리의 경제를 아주 많이 바꾸어 놓았고, 그 때 만들어진 구조와 질서 속에서 아직도 우리는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가고 없지만 남아 있는 흔적들은 여기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기억도 남기고 있다. 아는 기억과 모르는 남의 기억을 따라서 우리 자본 시장이 남겨 놓은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한국 경제의 타임 라인을 새롭게 펼쳐 보이고 싶다.(4페이지) 소망에 발을 담근다.
1921년 인천 ‘미두(米豆) 취인소’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2020년 제로금리까지 한국 거시경제 100년이 담겨져 있다. 끊임없이 사건만이 나열되기에 경제 이력서를 건조하게 한눈에 볼 수 있다. 그 속에는 한국의 증권과 채권의 자본 시장이 어떻게 형성되어 파고를 일으키며 오늘에 이르고 있는지가 훤하게 보인다. 거친 파동의 주기적으로 반복적인 현상을 보여 주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많은 기업들이 시장의 보이지 않는 탐욕과 정부 정책의 힘 사이에서 만들어졌다가 사라졌다. 거센 광풍과 항상 버블버블거리는 거품 속에 셀 수 없이 이름 모를 개미들의 슬픔과 환희가 쌓이고 허물어지고 쌓이기를 반복했을 존재가 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도 다른 나의 역사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미로의 정글 같은 난삽한 경제 흐름을 살펴보면서 한국 경제의 DNA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끼면서 미래 자신의 좌표를 설정할 수 있는 암묵적 지식을 찾을 수 있는 계기를 주고 있다. 다만 사건의 서술만 있을 뿐 배움의 미학은 독자의 몫으로만 남겨 놓았다는 데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수없이 반복하는 폭풍우 속에서 역시나 IMF의 상황을 보여주는 모습이 아주 인상 깊게 다가온다. 아니 빼놓을 수가 없다. 지금도 왜 그런 사태가 왔는지가 무척이나 궁금하기 때문이다.
IMF 직전의 상황은 정책 담당자나 기업가는 말할 것도 없고 개인들을 비롯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계 경제 흐름에 무감각했는지를 보여 준다. 경제는 굴곡진 흐름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항상 일직선으로만 흐른다는 오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오판의 반복은 알면서도 모르는 듯한 흐름을 대략 10년 단위로 바뀌고 있었다. 1970년 석유 파동과 정부 실패, 1985년의 5G(미, 영, 프, 독, 일)의 플라자협의로 3저 호황(저금리, 저유가, 저달러)은 1995년까지 유지되다가 1995년에 정반대의 3고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런데도 우리의 기업과 경제 당국과 국민들은 경제 활동을 그대로 유지했다. OECD 가입과 국민소득 만 달러의 장밋빛으로 무리한 원화절상과 무리한 대출에 의존하는 종금사의 위험천만한 도박이라는 내부 환경은 멕시코와 태국에서 불기 시작하는 태풍과 태국 ‘똠얌꿍의 위기’, 일본 투자 자금의 회수라는 외부 바람에 경제를 도매금으로 넘어가게 했다. 그렇게 20세기 꽁지에 모든 삶의 방향에 대반전을 만들게 불어 닥친 바람은 모든 전조를 부정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간 모든 이들에게 씻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
2000년 이후 10년은 가히 희비가 극명하게 갈리는 두 개의 막장이 열리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IMF가 남긴 거대한 대우라는 거대한 시신 처리가 한창이었지만 한쪽에서는 1999년 현대증권의 바이코리아 펀드 열풍을 비롯하여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라는 유행어를 타며 대박의 꿈이 자라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닷컴 버블, 신용카드 사태, 펀드 열풍, 부동산 광풍 등 거푼 위를 걷는 사람들의 행진은 계속되었다. 그 속에서 중산층 몰락의 속도는 악셀을 밟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대박의 열풍은 200년 전 유럽에서 자본시장이 시작되면서부터 있었던 현상이라 전혀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쪽박을 보는 쪽도 항상 정해져 있는 것이기에 광풍의 후폭풍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그 꿈의 움직임은 2020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계속될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시장의 기억이 알려 주는 경험은 지식과 상식을 쫒는 제3자에게 그저 몇 시간의 옛날 얘기로만 다가온다는 생각이다.
100년이라는 시장의 기억이 알려주는 것은 무엇일까? 시장은 폭등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폭락은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자기 편향적 기억은 항상 극과 극을 만들어주는 끈이 되었다. 정부 정책은 이런 시장을 절대로 꺾지 못하였다. 또한 정책이 시장의 파동과 같은 방향이라면 시장이 일으키는 거품의 크기는 훨씬 커졌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뉴타운 사업으로 부동산은 폭등을 향해 내달렸고 노무현 정부의 판교신도시 공급 카드는 역부족이었다. 금융정책과 재정정책은 수많은 조치를 쏟아냈지만 시장을 따라 가기에만 바빴다. 정책 권력은 유한하였지만 시장은 계속된다는 아주 단순한 자연적 명제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권력은 새로운 권력으로 채워졌지만 깨진 대박의 흔적은 여전히 악몽으로 남아 있다.
지난 100 년간에 매우 빠른 성장이 있었다. 하지만 약소국의 경제는 한 위기가 끝나면 다른 위기가 왔다. 미국과 유럽, 중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때로는 시장이 이성을 잃어 지옥의 공간이 더 크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자기 시스템에 빈틈, 기업인의 모럴 해저드가 움틀 때에는 더욱 쉽게 무너졌다. 그런 시류에 휩쓸리는 개인들에게는 항상 폭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열풍은 대부분의 경우에 반복적인 거품이 터지기 전에는 모든 이에게 희망의 불꽃이 될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 주었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서 터진 거품은 많은 이를 절망의 늪으로 인도하였다. 장밋빛을 보여 줄 것 같지만 1년을 가지 못하고 여지없이 바닥을 보여 주었다. 대박의 꿈은 잠깐이었고, 깨진 꿈의 고통은 오래되고 있다. 한바탕의 희생양이 가고 나면 또 한바탕의 희생양은 어디에선가 등장한다.
다시 100년을 맞이한다. 그런데 완벽한 모습은 아니다. 정경유착과 버블 경제 속에 움튼 개인의 탐욕은 근본적인 모순의 그림자를 앉고 있다. 대기업의 지배구조는 현재 우리 경제의 커다란 최악의 난제 중의 하나이다. 계열사들끼리 순환 출자로 이루어진 기업들 간의 그물망 구조는 중소기업이 설자리를 어렵게 하며 기업 성장의 사다리가 만들어지는 먹고 있다. 700조 원대의 가계부채도 또 하나의 국가 경제의 아픈 발목으로 남아 있다. 폭등하는 부동산에 대한 대책으로 금리 인상은 엄두도 못나게 하고 있다. 문제는 아직도 그대로이고 지니계수는 작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오히려 코로나19가 불러온 불황은 재로금리 시대를 불러왔다. 그 다음의 새로운 막장이 열릴 준비가 되고 있다는 생각은 눈뜬 봉사도 할 것 같다. 기억이 그랬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희망을 줄 어떤 거품이 도사리고 있을지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그 상황에서 나는 어떤 스탠스를 취하고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엉키었던 시간을 견디어 미래를 쫓지 않을 두 발로 숨이 차게 달려가겠어” 노래가사는 무심하게도 귓가를 향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