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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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삶(P323)이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는 게 거의 없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은 있어도 잘하는 것은 딱히 없는 것 같다. 욕망 충천은 여전한데 사기는 세월의 잔인함에 무디어지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은 나에게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서 수없이 묻기만 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무작정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 버거운 삶이 끈덕지게 붙잡고 있을 뿐이다. 죽지 못해 사는 나머지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등바등하며 살 궁리를 해 본다. 그 와중에 평소에 좋아해서 주문은 했지만 오랫동안 묻어두었다가 이제 읽는다. 자기계발서에는 별로 감흥이 없었다. 인생이라는 것은 암묵적 지식으로 가득찬 시공간이기 때문에 활자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딱 막힌 골목길에 들어선 기분이라 익히 검증이 된 경우에는 한 번 쯤은 기웃거려도 괜찮다고 본다. 또한 이러다가 그냥 죽는 건 아닐까?’라는 시간의 불확실성에 목이 마르기 때문에 샘을 파야 할 입장이라는 게 한몫 했다.

 

이 책은 플로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줄기차게 훌륭한 삶, 품격 있는 인생에 관하여 청년과 불혹(不惑)들에게 고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자신과 그들에게 질문한다. 비록 디테일하지는 않아도 작가의 인생사를 두서없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두서없이 썼다는 것은 진정성 있으며 가식이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매우 다양한 신변잡기적이면서도 중후한 애기를 담고 있다. 때로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등장시켜 삶과 죽음의 철학적 의미와 생물학적 의미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특히 보편적 진리는 아닐지라도 지남차가 될 수 있는 자신만의 인생 비법은 담고 있어서 매우 좋았다. 말미에 숱한 고비를 넘기며 이어져온 가족사의 굴곡에선 나 자신의 가족사를 투영하며 가슴 뭉클하게 한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이나 넬슨만델라처럼 나이가 든 후에도 철학적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 발전시켜 품위 있게 나이를 먹을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젊은 사람들과 수평적으로 대화하려고 한다(P76 참고). 그의 인생철학을 듣고 있노라면, 그는 지극히 당연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마치 또 하나의 꼰대를 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전혀 그러지 않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성찰하려고도 한다. 아웃사이더같지만 아웃사이더와 인사이더 경계에서 신자유주의를 타파하고 민주국가의 공동체주를 통한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려는 실천적 지식인이다. 현실 정치에서도 끊임없이 민주당을 비판하면서도 마음적으로는 지지하는 자칭 어용지식인이다

 

작금에 쉰다섯에 이르기까지 그를 키운 것은 '행운(P299)'이라기보다는 8할이 호기심과 의심, 그리고 거리감이다.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론이다. 세상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다(p89). 삶뿐만 아니라 늙어감, 죽음에 대해서도 그렇다. 거리감은 때로는 냉소적이거나 회의적으로 비칠 수 있지만 그만큼 자신과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회적, 개인적으로 생활 사건이 주는 스트레스를 거리감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얽매이지 말고 지금 스스로 의미와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견고한 성을 쌓고 시간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그는 기존의 보편적 지식에 대해도 호기심으로 대면하고 끊임없이 회의하고 비판하면서도 결국에는 그리로, 왔던 자리로 간다. 하지만 본래의 그가 아니라 더욱 단단한 지식의 둑을 쌓은 상태다. 그는 주체사상을 읽었어도 주사파는 아니고 반민주 시대에 자유주의 교육을 받았어도 자유주의자는 아니라 민주주의자이고 진보주의의 삶을 추구한다. 찬 이성 더운 가슴의 소유자(p91)!

 

그가 거리감을 드러내는 초절정은 결과보다 과정에 이르는 방법론이다. 그는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나도 정답은 모른다.. 내 나름이 방법이 있을 뿐(276)이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독자뿐만 아니라 모든 대상과 모든 가치에 대해서 거리감을 주고 있다는 것을 더 보여 주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진보주의를 포함하여 어떤 가치도 절대적으로 옳다고 보기 어렵다. 심지어 자신의 말이 옳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절대가치의 상대성, 오류의 상존성을 항상 염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을 경계해야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어떤 훌륭한 가치도 과정 속에서 사람을 더 훌륭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그런 가치는 사람을 단지 수단으로 전락시킬 뿐이다. 멀게는 제너바를 죽은 도시로 만든 기독교 개혁가 장 칼뱅, 캄보디아 혁명가 폴포트가 그랬고 가깝게는 통진당의 비례대표 후보 선출과정이 그랬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그에게서 소크라테스와 헤겔의 방법론이 보인다.

 

삶의 위대한 세 영역은 사랑, , 놀이이다(p61).더 나아가 연대(連帶)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삶의 의미에 대한 확신! 늙어서도 품격 있게 나이를 먹는 비결이다. 특히 연대는 기쁜 삶을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이다. 연대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친우, 가정 내에서도 필요하다. 혼인한 후에도 구애는 계속되어야 한다. 자녀가 행복을 느끼는 능력을 지닐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 없이는 삶을 완성할 수도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도 없다(p62). 앞의 세 가지는 나 홀로나 소규모 관계에서도 충실히 이행할 수 있지만 나머지 하나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앞의 세 가지는 본능에 충실하면 해결될 가능성이 높은 개인적 가치이지만 마지막 것은 최고의 이성적인 이타적, 집단적 가치이다. 앞의 세 가지가 진화하는 것이 연대이다.  

 

연대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지금 이곳의 행복이 그들의 것이리라.”(P264)

 

  그의 삶을 관통하는 일관된 가치는 연대이다. 사회적 연대의 가장 차원 높은 형식은 정치이다(p189). 연대의 가치를 추구하는 정치 운동이 진보주의이다. 나눔, 봉사, 평등, 생태보호를 추구하는 정파가 진보정당이다. 진보주의에 대한 개념정의는 여러 갈래지만 그가 믿는 진보성은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타인의 복지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인 자원이 많은 부분을 내놓는 자발성’(p251)을 의미한다. 유전적으로 근친성이 없는 타인의 고통에서 함께 느끼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것으로 진보적인 것이다. 기나긴 생물학적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새롭게 나타난 행동방식이다. 진보주의는 사회문제를 주체의 계급 문제가 아니라 행위의 문제라는 것이다. 가령, 사형제 대하여 살인은 응징이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찬성하는 것은 보수라는 논리이다.  

 

보수주의가 엄연한 정치공간에서 (진보)정치를 잘하려면 다른 사람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는 비루함과 야수성을 인애하고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정치인 시절 분열과 갈등의 화신이라는 비난만 받았을 뿐이다(p92). 마흔에 박사학위 논문 집필을 그만두고 하고 싶어서 마음이 설레는 일로 인생대전환을 하였지만 정치의 일상이 즐겁지 않았다. 지금은 글도 쓰고 TV 연예프로에 나와서 많은 젊은이들의 귀와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지만 한때 그는 정치권에 몸담았다가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연대하기로 마음먹었다. 인생이라는 너무 짧은 여행에 그리 길게 남지 않아서 더 절실한 마음으로 자문하면서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글 쓰는 일로 돌아왔다. 1980년 초여름에 계엄사 합수부 조사실에서 맞지 않으려고 맹렬하게 글을 쓰다가 자신이 글 쓰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고서 태어난 글쟁이, 지금은 글로 먹고 산다

 

버나드 쇼처럼 지성적 자아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능력을 가진 마지막 시간까지 무슨 글이든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p228).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고 품격 있게 나이를 먹자. 이것에 비추어 보아, 내 인생의 가장 큰 잘못은 무엇인가? 그는 스무 살 무렵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p62). 그래도 그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고딩시절에 구체적으로 무얼 하면서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내가 세상에 온 데에는 무슨 특별한 목적이나 이유가 있는 걸까?(P68)’ 남은 삶은 어떻게 살 것인가?(P72) 나는 어떤 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의 나이 쉰다섯이 되었을 때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또다시 돌고 돌아 많은 인생 질문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자신이 일상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쪽으로 직업을 바꾸는 것은 언제나 바람직하다(p171)는 그의 말에 용기를 얻는다. 유독 잔인했던 무더위 등쌀에 더욱 성가셨던 여름을 벗어버리려는 즈음에 삶의 버거움에 대한 많은 질문을 던지며 하루하루를 넘긴다. 질문이 싸일수록 날마다 대면하는 라는 존재는 여전히 수캐마냥 헐떡이는 존재지만 복날은 무사히 피해 동장군이 설칠 때 쯤 이맘때를 얘기해 보고 싶다. 그 때가서 인생을 평가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헬렌 켈러와 설리반의 관계처럼 품위 있는 노년을 위한 내 마음의 바이블로 삼아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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