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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 손솔지 소설
손솔지 지음 / 새움 / 2017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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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뇌리에 명확하게 박히게 하는 요소 중의 하나로 독특한 소재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와 극중 인물을 절망의 끝으로 떨어뜨려 대비효과를 뚜렷하게 나타낸다. 기발한 발상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의 탄탄함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손솔지 작가는 전작 <먼지 먹는 개>에서부터 자신의 작품세계가 가진 색깔을 나타낸 바 있다. <휘>라는 작품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어지는 것 같다. 휘, 종, 홈, 개, 못, 톡, 잠, 초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함축적인 의미를 알고부터 소름이 돋았는데 우리 주변에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보호받지 못한 채 소외된 사람들이 많다. 사회고발 프로그램이나 뉴스면에서만 봤을 뿐인데 작가의 나이를 뛰어넘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각 작품마다 독자들을 몰입시키는 흡입력이 남다르다. 오히려 <먼지 먹는 개>보다 더 능숙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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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평소에 가지고 있었기에 작품으로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작품의 소재 또한 다양하다. 가족, 연인, 친구, 학교, 불면증, 죽음, 세월호 참사 등 이를 아우르는 작가의 힘이 느껴진다. 특히 '종'이라는 작품에 이르러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잔혹함에 분노가 치밀었다. 같은 가족인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종 부리듯이 함부로 대할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집을 떠났고 집에는 아버지와 오빠, 누이만 있는데 화자 속의 '나'는 집에서 종 노릇을 하는 누이가 창피했고 그런 이유로 밖에서 따돌림 당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절정에 이르러 어머니에게 가라는 말에서 지옥같은 삶을 벗어나 교회 종을 치듯 해방된다는 결말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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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뒷표지를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삶에 붙잡혀 자신을 놓쳐버린 지금 여기, 우리 이야기. 그렇다. 안 좋은 소식은 꼭 남의 얘기처럼 들리지만 결국 모아보면 내게도 있었던 일이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세월호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든 분명한 것은 우리가 남의 아픔을 외면하는 순간 누구도 우리를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픔은 함께 나누고 공감할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너와 나의 일로 분리하며 생각할 수는 없다. 아직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있다. 어른들을 믿고 따랐을 뿐인데 그 댓가는 차가운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는 것이다. 분명 잘못한 사람은 있는데 나서서 책임지는 사람이나 기관, 정부는 없다. <휘>라는 작품을 보면 더욱 확신이 선다. 우리의 무관심이 배려심 없고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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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읽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 처절해서 차마 사실이 아니길 바라거나. 극중 인물이 결국에는 행복해지기를 바랬다. 왜 곧이 곧대로 순응하며 사는 사람들은 고통을 받아야만 할까? 가해자에 대한 비난보다 더 참혹한 것은 피해자에 대한 냉대어린 시선이다. 우린 알게 모르게 이를 반복해왔고 비극을 낳았다. 작가의 나이가 많지 않은데도 이런 소재를 썼다는 것은 앞으로 해줄 얘기가 많은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