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쿠데타 - 글로벌 기업 제국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가
클레어 프로보스트 외 지음, 윤종은 옮김 / 소소의책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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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후기입니다.


내용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받아들이기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어떻게 주권 국가의 법보다 국제법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지부터가 이해되지 않았다. 엘살바도르, 남아프리카공화국, 독일 사례들을 탐사보도 형태로 알려주는데 기업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는 이유가 바로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와 ISDS(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 때문이었던 것이다. 국가보다는 기업의 이윤만을 챙기려는 목적으로 생겨난 국제법이다. 50여 년 전 개발도상국들이 ICSID 설립을 반대하며 "투자자에게 법원을 거치지 않고 영토 밖에서 주권 국가를 제소하는 권리를 부여할 것이고 국내에서 인정되는 법 원칙에 반하며, 사실상 외국인 투자자에게 특권을 부여해 자국민의 지위를 격하할 것"이라는 우려대로 글로벌 거대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1990년대 말 이후 소송이 점점 늘어나더니 2014년 중반까지 총 500여 건이었다가 2021년 말 기준으로 총 소송 건수는 900여 건으로 급증했다. 이것이 암시하는 것은 기업들이 ISDS를 악용하여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패소하더라도 막대한 소송 비용의 상대 부분을 국가가 부담한다. 예전에는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면 최근 바텐폴이 독일 정부에게 소송 건 사례처럼 선진국을 대상으로 한 소송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국가가 올바른 정책을 잡아 추진하는 일에 외국계 기업이 소송을 걸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투자자와 국가 간 분쟁 과정에서 민주주의보다는 기업의 이윤 추구가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기이한 일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다고 보면 된다. 세계은행 총재였던 압스에 의해 만들어진 ISDS의 목적은 투자자 보호와 기업 이익이었다.


"준군사조직이 수천 명을 삶터에서 내몰아 대규모 광산, 석유, 농업 개발을 진행하도록 길을 터주면 다국적기업은 손쉽게 이익을 챙겼어요. 기업들은 암살 조직이 지역의 활동가와 노조원을 제거해 반대 의견을 탄압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곳에서 사업을 벌이죠."


책을 읽다 보면 권력의 흐름은 돈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세금 도피처는 모리셔스는 조세 회피 수단으로 기업들이 몰려드는 작은 섬나라다. 이미 알다시피 다국적 기업은 불법적인 탈세뿐만 아니라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세금을 회피해왔고,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합법을 가장한 편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운 기업들은 급기야 준군사조직에 자금을 대고 온갖 만행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세상이다. 공동저자인 클레어 프로보스트와 매트 켄나드는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국적기업과 투자자의 추악한 진실을 취재하였다. 국가 정책이 다국적 기업의 악의적 소송에 의해 주권 행위를 침탈당할 경우에 벌어질 일들은 끔찍하다. 수많은 사례가 알려주듯 자국 개발보다는 기업 이익이 우선이라 ISDS 협약을 경계해야 한다.


이것을 <소리 없는 쿠테타>로 규정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ISDS의 원래 목적에서 벗어나 기업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면 국가의 정책도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건 해당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다. 환경오염의 우려와 올바른 정책이 자리 잡지 못하고 소송에 가로막혀 고통 속에 지내야 한다. 기업들이 요구하는 대로 법안을 수정할 경우 환경오염이 발생한다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거대 기업에 맞서는 단체와 사람들이 있다. ISDS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국가 편에 서서 변호하는 사람들로 인해 그나마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세계적 관점에서 다각도로 문제를 짚어볼 수 있는 책이다. 기업과 국가, 기업과 노동자, 국가와 시민 등 여러 이해당사자가 얽혀 있는 문제이기에 심도 있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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