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 위의 남자
다니엘 켈만 지음, 박종대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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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를 보면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에서 공길이라는 광대가 선보인 풍자 놀이판이 생각난다. 때론 줄타기를 하며, 가면 뒤에서 실랄하게 탐관오리의 비리를 풍자하는 공연을 펼치는 모습이 무대에서 틸 울렌슈피겔이 불쌍하고 어리석은 겨울왕을 비꼬는 발라드를 노래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된 시기는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신성로마제국과 중부 유럽에서 벌어졌던 30년 전쟁이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격돌한 인류 역사상 최대의 종교전쟁으로 무려 800만 여명의 사망자가 나온 처참하고 처절한 전쟁이었다. 또한 틸은 독일 민화와 구전으로 전해지는 조커이자 어릿광대로 뮐른에 비석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광대의 역할은 사람들을 상대로 장난질치고 귀족과 성직자 등 권력자를 비꼬면서 부조리한 세상을 조롱하고 희화화하는데 있는 이는 현실사회에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다. 30년 전쟁과 틸 울렌슈피겔이 활동하던 시기 사이에 300여 년이라는 시간차가 존재한다. 역사적 배경 위에 전설적인 광대를 등장시켜 종교전쟁으로 비화된 시대에 유랑극단으로 마르타를 영입해 도시를 이동하며 공연을 펼친다. 무엇 하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광대들의 풍자극을 보며 잠시라도 절망같은 현실을 벗어나고자 함이 아닐까.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며 책 잡은 손을 놓치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


8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이 책에는 여러 역할을 맡은 광대들의 삶과 마치 투영된 듯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민중들이 중첩되어 결코 녹록치 않았을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아냈는지 빠져들며 읽었다. 길고긴 전쟁이 이어질 때 끝도 보이지 않을 불안한 내일에 무슨 희망을 찾을 수 있겠는가.


"공연이 끝나고 박수갈채가 잦아들면 배우들은 원래의 볼품없는 상태로 돌아갔다. 관객에게 절을 할 때의 모습은 불 꺼진 양초나 다름없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과 이와 다를 바가 없다. 늘 현실은 이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법이다. 설령 사회에서 밑바닥인 광대들조차 무대에서 내려오면 화려한 의상을 벗어야 한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무대 뒤에선 그들도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랑극단에서 활동하는 광대가 때론 부조리한 현실에서 마치 우리가 바라는 모습 그대로 현실에서 이루어질 소망하는 간절함이 그 짧은 공연 동안 판타지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것 같다. 그 공연이라도 보지 않았다면 견디지 못했을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아마 유일한 낙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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