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카의 장갑
오가와 이토 지음, 히라사와 마리코 그림,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다. 루프마이제공화국 사람들은 엄지장갑을 만들 줄 알아야 영내에 살 수 있고, 결혼식은 물론 혼수용품으로 쓰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추운 지방이기 때문에 엄지장갑을 끼지 않으면 손에 동상을 입기 쉬울 것이다. 마리카는 늦둥이로 세 오빠와 뛰어놀며 자라느라 뜨개질에 별 소질이 없었다. 밖에서 뛰어놀고 그네를 타는 것이 행복한 아이였다. 다행히 할머니가 정성껏 가르친 덕분에 엄지장갑 만들기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고, 자신이 사랑하는 야니스를 위해 엄지장갑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어릴 적에 만나 사랑을 키운 마리카와 야니스는 결혼하여 서로를 아끼며 살아간다. 어떤 시련이나 어려움이 닥쳐와도 함께 하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나 꿈같은 행복도 잠시, 마리카가 서른 살 되던 해에 야니스는 연행된 이후 멀리 떠나가 버리고 이제 마리카 혼자서 두 아이를 키워나가야 했다. 마리카는 하루하루 엄지장갑을 뜨면서 지내는데 여전히 야니스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간직하며 살아간다. 양을 키우면서 직접 양털을 깎고 가정을 위해 힘차게 살아가던 마리카에게 한 통의 편지와 진흙투성이의 장갑이 배달되었는데 도리어 장갑을 보내준 얼음 제국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이 책이 묘사된 루프마이제공화국은 저자가 세 차례 방문한 라트비아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책 뒷부분에 나온 것처럼 라트비아의 풍습과 전통 생활 양식들이 고스란히 책에 녹아들었다.


루프마이제공화국은 마리카가 태어나기 한 달 전에 개국하였다. 야니스와 결혼해서 행복한 신혼생활을 하던 중 탄생한 지 22년밖에 되지 않은 얼음 제국에게 무력으로 점령당하여 식민지 생활을 해야 했다. 그들이 좋아하던 춤과 노래도 할 수 없고, 민속의상 입는 것도 금지되었다. 다만 유일하게 허락된 것은 엄지장갑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얼음 제국을 증오한 걸 보며 루프마이제공화국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랑했던 문화를 빼앗아갔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받은 상처와 비슷해 보였다. 많은 세월이 흘러 마리카가 일흔 살이 되는 해에 독립한 루프마이제공화국에서 마리카는 엄지장갑을 만들면서 행복하게 보냈을 것이다.


'마리카의 장갑'은 마리카의 전 생애에 걸쳐 여성의 입장으로 쓴 책이다. 자유롭게 뛰어놀며 살고 싶었지만 루프마이제공화국의 엄격한 풍습이 있었는데 12살이 되면 아이들은 수공예 시험을 받아야 한다. 남자아이들은 접시를 만들고, 바구니를 엮으며, 못을 박아야 할 줄 알아야 하며, 여자아이들은 실을 짓고, 수를 놓고, 레이스를 달고, 엄지장갑을 뜰 줄 알아야 한다. 이 시험에 합격해야 루프마이제공화국의 국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다들 합격하기 위해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수능 시험 보다 더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국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무조건 수공예 시험에 합격 받아야 한다니. 루프마이제공화국에 사는 12살의 모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치러지는 운명을 건 시험인 것이다. 그만큼 자신들이 지키고자 하는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번역가 이윤정과의 인터뷰에 그 궁금증을 저자로부터 들을 수 있었는데 그녀가 라트비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마리카가 그 광활한 호숫가에서 옷을 다 벗고 혼자 헤엄칠 때 지구와 하나가 되는 느낌에 사로잡히는 장면처럼 그 누구로부터 속박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연으로 돌아가 보내는 시간은 무엇으로부터 바꿀 수 없을 것 같다. 장갑에 많은 부여하며 한 여성의 생애를 따뜻하게 그린 이 소설은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단해도 일상에서 작은 기쁨, 잔잔한 감동을 발견하고 만들어나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저자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어려운 순간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이다.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단해도 일상에서 작은 기쁨, 잔잔한 감동을 발견하고 만들어나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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