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말하는 사람
안규철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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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기 마련이다. 어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빛의 바로 옆에서 그림자라는 이름으로 있다.
모두들 빛을 먼저 보지만 간혹 그림자가 먼저 보이는 순간이 있다.

책머리에 저자는 사물의 그림자를 통해서 사물을 드러낸다는 의미로 파울 첼란의 시에서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 이라는 표현을 가져왔다고 했다.
사물의 뒷모습과 회색의 다채로움이라는 이 말을 보고 나는 '칼융의 그림자' 가 떠올랐다. 나는 나 이지만 '또 다른 나' 가 있다. 또 다른 나는 그림자로써 존재하며 내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한다.
일상에서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과 행위, 희노애락이 의식 하에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림자에게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저자는 조각가이자 미술가이다
조각은 단순함 속에 많은 것이 담겨 있고, 어느 방향에서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 달리 보이며 달리 해석되는 예술이다. 그런 특징을 저자는 이 책에서도 적용시킨 듯 하다.
내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는 에세이 장르는 나의 그림자까지 드러내는 작업일 테고, 독자는 그의 작품을 통해 그와 그의 그림자를 함께 보며 해석한다.

책에는 심플한 그림과 글이 어우러져 있는 데, 그 하나하나가 무척 잘 어울린다. 단순해서 한 눈에 잘 들어오고 다양하게 해석도 가능하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책이라는 하나의 대형 조각상을 조각하고 있었다. 독자가 한 페이지 ,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조각상의 형체는 점점 드러난다. 그러나 보는 이에 따라 최종작품은 다 다른 현신을 드러낸다.
그 조각은 읽는 이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도록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비오는 아침'. '감자', '담쟁이', '빗자루', '낙엽' 등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저자의 글과 그림이 되어 책에 조각되더니 각자의 방식대로 해석해보라고 던져준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림도 문체도 건조할 정도로 단순한 데, 오히려 어떤 감성적인 말보다도 더 힐링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독자에게 마음껏 해석하도록 여백을 던져주니 나는 내 그림자, 무의식, 잠재의식과 함께 글을 읽고 그림을 보았나 보다. 그래서 내게 필요한 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더니 세상 어떤 책보다도 감동적이다.

작가의 손을 떠난 책과 조각은 관람자의 손과 눈에서 재탄생되었다.
오늘따라 유달리 무채색의 단순한 그림이 눈과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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