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 의미로 '자살: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음' 인간은 본능적으로 살고자 하는 생명체인데 어쩌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태에 까지 이르렀을까? 자살하는 사람들이 남긴 유서의 내용은 거의 다 비슷하다고 한다. 자살의 언어가 따로 있는 건 아닐까? 이 책은 스웨덴의 정신과 의사의자 자살예방재단의 고문이기도 한 크리스티안 뤼크의 자살에 관한 통찰서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자살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왜 존재하는 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전 세계에서 매년 80만명 정도가 생을 마감하는 데, 이는 전쟁과 살인으로 인한 사망자 수보다 많다. 종교에서는 자살을 가장 큰 죄로 본다. 자살한 사람들의 주변인들은 그 일을 막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은 예측하지 못한다. 오히려 늘 자살징후가 있던 사람은 오래 살고, 징후가 전혀 없었던 사람이 갑자기 죽는 경우도 있다. 자살은 이상한 과정으로 전파되기도 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죽음' 이라는 작품이 나온 후나 유명인의 자살소식이 전해지고 나면 잇따라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 만큼 그 파장은 크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것임에도 본인 스스로가 죽음을 택할 만큼, 삶이 고통스럽다면 그래도 삶을 지속하는 것이 옳은건가? 우리는 자살이 무조건 옳지 않다고 보면서도 안락사는 일정 부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신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 중, 무엇이 더 힘들다는 판단은 누가 하는걸까? 정신적 고통의 상당 부분이 사회적인 관계와 상황에서 오는 것이라면, 사회적으로는 '자살제로' 프로젝트 같은 것을 실시할 수 있다. 간단하게는 다리의 난간을 높게 하여 시도를 할 수 없게 한다거나 상담의 문턱을 낮추거나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악(?)을 차단할 수도 있다. 어떠한 상황이든 생명은 소중하며, 설사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들 조차 살고 싶었을 것이다. 너무너무 살고 싶어 살기위해 죽었리라. 어디든 미약하게 나마 희망은 있다. 사회는 구석구석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그 희망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 작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일어설 만큼 삶이 유의미하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이 순간의 선택으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