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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거기 있었다 - 경복궁 선원전의 명멸, 그 200일의 기록
김성연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10월
평점 :
역사에는 누군가는 꼭 해야하는 일들이 있다. 그것이 당장의 부와 명예가 따르지 않는 일이라도 자신도 모르게 발을 들이고 해내고자 애쓰는 일들, 그런 일들을 묵묵히 해낸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지금의 역사가 이어져 왔다.
경복궁 선원전의 명멸을 밝히기 위한 저자의 200일간의 발자취도 그렇다.
일본 규슈대학원에서 일본사회문화를 전공하는 저자는 아동문학가의 평전 작업을 하던 중, 많은 조선총독부의 자료들을 접하게 된다.
그중에서 일제 강점기 초대 총독 테라우치 마사타케의 아들이 철거된 경복궁 일부와 찍은 사진을 본다.
일제는 경복궁의 일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지었다. 그때 철거한 일부를 초대 총독 테라우치가 일본 야마구치 미야노 지역으로 옮겨갔는데, 조선 왕세자가 공부하던 비현각이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저자가 이 일을 밝히고 기록으로 남겨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시작.
당시 사람들이 '조선관'이라 불렀던 그곳은 일본 패전 이후 사라지고 없지만 1920년대 사진으로 모습을 확인하고 도서관으로써 또, 귀빈접대 장소로도 활용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언제 사라진 것인지 정확히 알 수없자 저자는 무려 100개의 건설회사에 문의하기 까지 했으니 엄청난 정성이다.
그리고 2016년 6월.
'선원전' 의 현판을 찾아낸다.
과거 건설회사 자리의 창고에서 두꺼운 천장 대들보에 양쪽으로 매달린 가로 4미터, 세로 2미터 검정 바탕에 황금색으로 새겨진 글자 '선원전' 이 있었다.
선원전은 역대 왕들의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지내던 곳이다.
경복궁의 건축물은 1910,1914년 공매로 근정전과 경회루를 제외한 대다수가 사라졌으나 조선궁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한 오쿠라 남작이 일부를 그대로 가져와 새로 짖기로 했다.
이를 원망해야 할까? 고마워해야 할까?
그후, 그곳에서 조선관으로 불리며 '선원전' 현판은 철저히 숨겨졌던 것이다.
조선의 정궁이었던 경복궁의 슬픈 역사이다.
조선의 마지막은 슬픈 이야기 뿐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가슴아픈 역사를 알게 되었다.
책에 실린 당시의 사진들과 자료, 조감도 들을 보면 저자가 얼마나 발로 뛰며 애썼는 지가 여실히 느껴진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정말 감사하다.
잊혀질 수도 있었을 역사 하나가 다시 살아 돌아왔다. 슬픈 역사가 또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