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나를 견디는 법 - 도망치는 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일일 테니
쑥 지음 / 빅피시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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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과 "견디는" 이 두 어휘가 마음에 와서 박힌다.
현대인들의 삶은 대부분 흐릿하고, 그 흐릿함을 하루하루 힘들게 견디고 있다.

한때 나도 비비드한 선명함으로 또렷했다. 나만의 생각이 있고, 가치관도 있고, 주장도 있었다. 그런데 너무 눈에 띄면 참 힘들어지더라. 그것도 모자라 어느 순간부터 내가 아닌 내가 아끼는 이를 빛내주려다보니 더 흐릿해야 했다.
흐릿해지면서 까지 나를 없앴지만 그럼에도 삶은 녹록치 않다. 매일매일을 버틴다는 느낌으로 견뎌내야 그날 하루가 끝난다.

그 마음을 잘 알기에 이 책의 유령같은 캐릭터는 정말 잘 만든건 같다. 큰 보자기로 가려져 얼굴도 몸도 묻혀있는 정체성.
이 책의 저자 "쑥" 은 표정조자 알 수 없는 캐릭터 안에 감정을 담아 흔한 일상을 표현했다. 얼굴이 안 보이는 데도 그 마음과 표정이 훤히 보인다. 모두가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모습과 반응들이라 친근하다.

그 모호함, 흐릿함이 좋다. 식단이 실패하면 영양소 보충에 성공한거고, 집중에 실패하면 멀티 태스킹에 성공한거다. 절약 실패는 경제에 크게 이바지한 것이고 외국어배우기 실패는 애국한거다.
이런 마음가짐들이 좀 부족하고 흐릿해도 날 사랑하고 믿으며 살아가는 방법이다. 안 그러면 자책하게 되고 자괴감이 든다.

모든 이들이 돋보이고 빛날 수는 없다. 안 보이는 곳에 그림자처럼 자기 자리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
보자기 쓴 캐릭터도 보자기 안에 몸의 형체가 있어야 씌울 수 있을 것 아닌가?
책을 보는 동안, 보자기 주인공이 꼭 나 같아서 토닥여주고 싶고 손 잡아주고 싶었다. 어깨가 축 늘어진 모습에는 눈물이 났다.
매일매일 잘 견뎌내서 기특하다. 잘 하고 있다. 잘 살고 있어. 남들이 몰라도 난 안다. 애쓰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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