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오리까? - 조선시대 어전회의 현장을 들여다보다
김진섭 지음 / 지성사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시대 어전회의에서는 어떤 말들이 오고 갔을까?
이 책에서 정치외교, 지리풍속, 민생교육, 법률제도, 사회문화를 주제로 한 다양한 일화들을 통해 어전회의 현장을 살펴보자.

외교적으로는 조선이 중국 사신들의 과도한 요구에 난감해 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런 일들은 지금의 외교에서도 보이는 일이라 안타깝다.
조선은 한양을 수도로 정할 때 부터 풍수지리를 중요시 했다. 한양, 개경 다시 한양으로 3번의 천도를 했는 데, 당시 왕권과도 관련이 있다. 임진왜란 후, 천도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나오기도 했고 왕릉을 세우고 옮기는 이야기도 빈번했다. 기본은 정치를 바로 하는 것이겠지만 정치 세력들은 때에 따라 이것도 이용하곤 했다.

조선은 건국과 함께 금주령을 실시했었다. 그러나 사대부와 관료들은 잘 지키지 않았고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어서 종종 회의 주제가 되었다. 조선 후기, 영조는 금주령을 강화했으나 정조때는 다시 완화되었다. 금주령은 이상과 현실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과거 합격자의 신고식인 면신례에서는 술이 허용되었는데 이 의식의 폐해도 당시 과거장의 부정행위만큼 심했다.

조선은 계급사회였지만 간혹 노비에게 앙반이, 주민에게 고을수령이 구타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형조는 지금의 형사사건 집행기관으로 폭력. 살인 같은 사건을 다루고 벌을 주었다.
당시에는 나라가 백성들의 결혼과 이혼에도 관여해서 부마의 재혼, 양인과 천인의 혼인, 역적의 결혼 등이 어전회의에서 주제가 된 적도 있다. 결혼이 사회질서 유지에 근본이기 때문이다.

나라를 통치하는 공간이니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고 왕과 신하의 기싸움도 존재한다.
시대가 다르니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무의미해 보이는 것도 있다.
그럼에도 인상적인 것은 왕이 권위만 앞세워 명령을 내리지 않고 끊임없이 신하들과 회의한다. 왕은 절대 권력자이면서도 절대 권력을 휘두르진 못했다.
역사책에 나오지 않지만 당시 시대상을 볼 수있는 이야기들이 많아 재밌게 본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